아쉬움은 없었다.
날짜마다 예약하려는 방의 여분이 달라, 3일을 모두 같은 호스텔, 다른 방에서 잤다. 즉 매일 체크인-아웃을 새로 했다. 예약 당시 마지막 금요일 밤 가격이 30유로가 넘는 걸 확인했다. 이 가격이면 한인 민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저 때쯤이면 한식이 그리울 것이기에, 여행의 마무리는 한인 민박에서 보내기로 했다. 센트럼에서 트램으로 20분거리에 위생상태가 엄청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와우호스텔보다 침대가 훨씬 편하다. 방도 따뜻하다. 하룻밤 자고 나니 4일간 쌓였던 여행 피로가 꿈 꾼듯 사라졌다. 지금껏 호스텔을 고를 땐 가격대비 조식수준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는데, 오늘의 경험을 통해 잠자리를 최우선 순위로 올렸다.
한인 민박답게 아침도 한식이다. 소고기무국에 각종 나물들로 양껏 배를 채웠다. 빵과 시리얼로 구성된 아침 식사는 항상 아쉬운 감이 있었으나, 쌀밥으로 차려진 아침은 포만감이 다르다. 게다가 뜨끈한 무국에 밥을 말아 먹었기에, 몸 속 깊은 곳에서부터 열기가 온 몸에 퍼졌다. 사실 어제 스테이크를 한 입 베어먹었을 때도, 가장 먼저 떠오른건 고슬고슬한 쌀밥이었다. 스테이크의 짭쪼름함을 해결함과 동시에 포만감까지 가져다 주는, 밥이 없어서인지 식사 후에도 포만감이 한참은 부족해 KFC에서 트위스터를 사 먹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 동안 너무 기름진 음식만 먹어, 그 느끼함을 칼칼한 된장찌개로 달래고 싶었다. 어느샌가 전형적인 대한민국 사람 입맛이 되어 버렸다.
몸도 개운해졌고, 밥도 든든하게 먹었겠다, 상쾌한 걸음으로 플리마켓에 갔다. 원래는 트램을 타고 IJ-Hallen에 갈 예정이었으나, 암스테르담 센트럴 직원께서 친절하게 무료 페리의 존재를 알려주셨다. 센트럴 역 뒷편으로 10분 정도 물길을 가로지른 뒤 페리에서 내리면 바로 플리 마켓이다.
암스테르담 플리마켓은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로 열린다.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며 인터넷에서 미리 30유로를 내고 상점 자리를 빌릴 수 있다. 즉 누구나 상인이 될 수 있다! IJ-Hallen이 공적 소유물인지 사적 소유물인지는 모르겠지만, 큰 돈벌이가 되는 것은 확실하다. 당일 상인의 자리세 말고도 일반 손님들의 입장료로 5유로 씩 받기 때문이다. 입장료 2유로의 틸버그 플리마켓이 줬던 실망을 뒤로하고, IJ-Hallen에 입장했다. 바람이 거셌지만, 나의 구매욕을 날려버릴 순 없었다. 단지 넓게 펼쳐진 노점들 중 어디부터 들러야 할 지가 문제였다.
제품의 퀄리티는 역시 틸버그 플리마켓보다 훨씬 높았다. 예쁜 물건들이 꽤 있다. 옷부터 장신구, 식기, 화장품까지. 아쉬웠던 건 옷의 80%가 여성용이다. 사이즈가 문제가 아니라, 아무리 새로운 시도를 좋아하는 내가 입기에도 벅찬, 과하게 레이스가 달리고 현란한 옷들이 많았다. 이탈리아에 들고 다닐 크로스백을 사기 위해 가방에 집중해서 돌아다녔는데, 꽤 예쁜 가방들이 눈에 띤다.
열심히 가방을 찾던 중 왠 가죽 코트가 시야에 들어왔다. 레옹 느낌이 물씬 나는. 한 번 입어봤는데 딱 내 옷이라는 느낌이 왔다. 사이즈는XXL다. 여자옷이면 어떠리. 몸과 마음에만 잘 맞으면 된다. 가격은 30유로였지만, 주인과의 흥정 끝에 27유로에 구입했다.
플리 마켓 내부에 감자튀김, 햄버거 등을 팔기도 하나 가성비는 떨어져보인다. 그냥 쇼핑 끝내고 센트럼에 가서 맛있는 걸 먹는 게 낫다. 대충 플리 마켓의 모든 물건들을 한 번씩 스치는데만 3시간 이상이 걸렸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아이템들이 많다. 매 달 오고 싶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3시. 기차값 40% 할인을 받으려면 오후 4시 이전에 카드를 찍어야한다. 얼른 센트럴로 돌아가 근처 파스타 집에서 밥을 먹었다. 피자, 파스타가 5유로라고 강력하게 홍보하는 가게다. 심지어 직원들이 입은 반팔의 등 뒤에도 5유로라는 가격이 써 있는데, 정작 5유로짜리 메뉴는 파스타, 피자 중 한 종류씩밖에 없다. 알리오올리오와 마르게리따. 나는 7유로짜리 뽀모도로를 시켜 후루룩 먹고 기차에 탑승했다.
창밖을 바라보며 4박 5일간의 암스테르담 여행이 끝나는구나. 에서 오는 아쉬움보다는 만족감이 훨씬 컸다. 5일 간 하루도 빠짐없이 친구들과 너무 즐거웠으며, 암스테르담이 이토록 매력적인 도시란 걸 이제야 알았기 때문이다. 틸버그에서 기차로 한 시간 반 거리.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올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이번 Period는 수업도 3개만 듣는다. 평일에 훨씬 여유가 있으니 반드시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은 암스테르담을 방문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