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끄적끄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래리 Oct 02. 2016

틸버그를 추억하며-2

두서없이 쓴 글.

 네덜란드에서 6번째로 크다는 이 도시에서 고층빌딩을 찾기란 정말 어려웠다. 건물들의 평균적인 높이만을 비교해보면, 틸버그는 나의 고향 공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맛이 있었다. 줄줄이 이어진 2층 집들 위로 넓게 깔린 하늘을 보며 자전거를 타는 일이란. 틸버그의 하늘은 그간 서울의 고도화된 근대성 속에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길 원했던 나의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실제로 여행 중 가장 매력 없던 도시로 기억되는 곳은 밀라노였다. AC밀란 팬으로서 10년 동안 그 곳 땅을 밟고 싶었던 열망을 포함하더라도 도시 자체의 매력은 딱히 느끼지 못했다. 합리성으로 무장된 ‘근대성’이란 그렇게 도시의 정체성을 죽인다.


이 거리는 고급스러운 집들의 거리는 아니다.


 하루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너무 지루해 무작정 자전거에 올라타 페달을 구른 적이 있었다. 목적지도 없이, 그저 ‘구글맵이 있으니 길을 잃지는 않겠지’란 생각을 품고 발이 가는 곳으로 향했다. 길쭉한 나무들에 싸인 길을 지나니 너무나도 고급스러운 집들이 계속됐다. 넓은 마당에, 다양한 디자인의 집들이 촌락을 이루고 있었다. 지금껏 봐왔던 대부분의 집들은 마당없이 서로 오밀조밀하게 붙어있었는데 말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네덜란드 집의 ‘일반적인’ 형태라는 사실을 알았다.


 고급스러운 동네를 빠져나오니 본격적인 숲이 펼쳐졌다. 나는 숲길로 갔지만 옆은 고속도로다. ‘틸버그란 도시를 빠져나왔구나.’ 싶었다. 멕시칸 룸메이트 ‘다니’는 자전거를 타고 벨기에 국경을 넘었다던데, 확인해보니 나는 서쪽 방향의 도시 브레다로 향하고 있었다. 당시 내가 남쪽을 향하고 있었다면 벨기에까지 다녀왔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러지 못한 것들. 하니 채식주의가 떠올랐다. 교환학생을 가기 전 진지하게 네덜란드에서 비건으로 살아볼까.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나는 그곳에서 하루 두 끼씩 종류별로 다양한 고기를 먹었다. 네덜란드의 마트 물가는 정말 싸기 때문이다. 무려 삼겹살 1kg에 한화로 만원정도한다. 이 가격에 익숙해져 귀국 후 김치찌개를 끓이려 목살 400g을사러 갔다가 8천원을 내고 분노했던 일도 떠오른다. 뻔뻔하게도 아직 ‘비건으로서의 삶’을 머릿속에서 지우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틸버그를 추억하며-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