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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리 Oct 01. 2016

틸버그를 추억하며-1

집으로 도착하기 까지.

 지금 이 글은 고종석의 <도시의 기억> 중 ‘나라-먼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읽다 즉흥적으로 쓰는 중이다. 나의 먼 고향 틸부르흐를 떠난 지 벌써 두 달이 넘었음에도 아직 이를 그리워하는 그 어떤 글도 쓰지 않았기에, 지금이나마 타자를 두드려 본다.     


 틸부르흐(‘흐’를 발음할 때 가래 끓는 소리가 포인트다). 반 오십이 넘는 인생 동안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조선 반도를 떠난 적 없던 이 뼛속까지 조선인이 처음 마주한 도시의 이름이다. 물론 뮌헨에 먼저 내려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으로 이동했지만, 그 도시의 거리도 한 번 나가보지 않고 감히 ‘마주하다’는 표현을 쓸 수는 없다.

     

 밤 여덟시 경 스키폴 공항에 도착해 버디 리즈의 도움을 받아 정신없이 버스로 향했다. 아마 모두들 틸부르흐로 가기 위해 우리(우연히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학우가 있었다)를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버스에 탑승하니 어디에 앉을 지가 고민이었다. 그렇게 많은 외국인 무리와 함께했던 적이 있었던가. 당시엔 영어울렁증이 있어(지금도 썩 잘하진 않지만) 그들을 피해 스스로를 뒷자리로 떠밀었다.

      

 한국의 중·고등학교에서는 소위 ‘좀 노는’ 친구들이 차지한다는 영광스러운 뒷좌석에 다다르니 나를 포함해 동양인 다섯 명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타이완에서 온 리마라는 친구. 발음에 특유의 억양이 상당히 묻어나지만 문장구사력이 좋았다. 틸부르흐로 가는 차 안에서는 생전 처음 장시간 비행을 경험한 몸이 피로를 견디지 못하고 스러졌다.

     

 밤 열시 조금 넘어 나의 집이 위치한 Bisschop ophoviusstraat에 도착했다. 한국에서는 한창일 시간이지만 소문대로 네덜란드의 밤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틸부르흐의 밤만큼이나 하우싱 메이트들과의 첫 만남도 어색했다. 이 불안정한 침묵을 깨기 위한 스코틀랜드 친구 라이언의 노력이 돋보였던게 생각난다. 그때는 아마 모두들 피곤해서 그랬을 게다. 우리는 그 후 너무나도 가까워졌다.  

    

다음 날 아침, ‘전형적인’ 네덜란드 날씨가 나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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