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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리 Sep 26. 2016

동자동 스케치

거리의 일상.

 비둘기가 삼삼오오 몰려 다닌다. 노숙인도 둘 셋 무리를 지어 앉아있다. 비둘기의 부리가 바닥에 떨어진 과자부스러기를 두드린다. 노숙인의 손도 말라 비틀어진 오징어포로 향한다. 비둘기는 1초에 두 번 꼴로 고개를 흔든다. 그런데 노숙인은 떨군 고개를 쉽사리 들지 않는다.


 서울역 근처 동자동의 항시적 풍경이다. 이 곳에 상주하는 두 집단의 모습은 묘하게 닮아있다. 생의 거친 불꽃에 그을린 노숙인의 피부와 정돈되지 않은 채 사방으로 뻗쳐있는 비둘기의 털이 그렇듯 말이다.

 

 노숙인은 고립됐다. 수많은 고층빌딩들에. 저 멀리 죽은 자의 온기가 남아있는 알파벳 ‘STX’도 보인다. 비둘기는 하늘을 잃었다. 그들의 날갯짓은 빌딩을 끼고 있을 때만 성립한다. 하늘도 온전하게 하늘이 아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정면으로 마주해도, 시야의 사각엔 경계하는 미어캣마냥 빌딩의 대가리가 빼꼼 튀어나와 있다.


 

 그 대가리들 사이 놀이터에서 노숙인들이 술판을 벌이고 있다. 위의 안전수칙을 보고 그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뭣이 중헌디?’ 노숙인들이 흘린 과자 부스러기를 따라 비둘기들도 모여든다. 이들의 모임은 중요하다. 중요한 건 먹고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숙인들이 소주 가득한 종이컵을 부딪히며 건배를 한다. 비둘기들도 과자 부스러기를 향해 부리를 부딪히며 건배를한다.

 

 평일의 점심시간이 되면 거리의 단조로운 풍경은 깨진다. 그들을 둘러싼 빌딩에서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쏟아져나온다. 이 거리에 상주하지는 않지만, 점심시간 마다 모습을보이는 제 3세력, 회사원들이다. 그들은 활기차다. 비둘기와 노숙인들에서 볼 수 없었던 활력이 죽은 거리를 감싼다. 그들의 등장으로 무기력하게 타던 태양마저 기운을 되찾은 듯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금새 사라져 버린다. 거리엔 또 다시 노숙인과 비둘기뿐이다. 노숙인은 여전히 고개를 떨구고 있다. 비둘기는 날기를 포기하고 사람처럼 걷기로 했다. 여기는 동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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