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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리 Oct 08. 2016

셀카와 나

셀카 찍기와 셀카 올리기에 대해.

 중 2때 처음으로 나의 핸드폰이 생겼다. LG CYON, 모델명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으나, 카메라를 360도 돌릴 수 있다는게 특징인 제품이었다. 즉 카메라 렌즈와 액정 화면을 바라보는 내 얼굴이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이건 나름의 혁명이었다. 이전까지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나오는지도 모르는 채 셀카를 찍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핸드폰에는 내 얼굴이 나온 사진이 단 한 장도 없었다. 두 번째 핸드폰인 샤인폰도 마찬가지였다. 사진은 많이 찍었으나 내 얼굴은 남기지 않았다. 사진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나도 맘에 들지 않아서. 물론 남들이 나를 찍는 것도 싫어했다.

 

 당시 내 실제 얼굴과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나의 모습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눈이 더 크길, 턱은 더 갸름하길 바랐다. 그런데 사진에 찍힌 얼굴은 항상 눈두덩이가 퉁퉁 부어있었고 턱은 둥그스름했다. 스스로 못 생겼다고 여기지는 않았지만 성형수술을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최상위의 무언가에 도달하고 싶어서. 나르시시즘의 과잉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후 얼굴에 대한 나의 인식은 많이 달라졌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좋고 지금의 얼굴이 내가 가질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조합을 이루고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인지 처음으로 셀카를 찍어봤다. 사진 속 얼굴이 예전보단 나아진 것 같지만 무언가 맘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첫 셀카를 찍고 내리 두 시간 동안 계속 사진을 찍었다. 찍으면 찍을수록 마음에 드는 사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셀카를 즐겼다.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페이스북 계정은 군대 가기 1주일 전, 사회에 남아있는 사람들로부터 잊히지 않기 위해 만들었다. 빡빡머리 군인 시절에 가장 많이 셀카를 올린 이유도 이와 맞물려 있다. 여전한 나르시시즘의 과잉에 관심 구걸이 추가됐을 뿐이었다.


 전혀 사적이지 않은 페이스북 공간에 나의 글 혹은 사진을 업로드한다는 건 타인에게 나의 관념, 감정, 즉 자아를 표출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을 너무 고려하면 왜곡된 자아가 형성되기도 한다.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사진들만 보면 이 세상 사람들 전부 행복한 것 같다.”는 왜곡된 자아들이 이룬 세계를 비판하는 표현이다.

   

 글을 쓰며 돌이켜보니 최근에 셀카를 찍었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난다. 핸드폰 갤러리를 뒤져봐도 네덜란드에서 귀국한 뒤에는 셀카가 없다. 어느새 셀카는 내 일상과 멀어져 버렸다. 나와 소원해졌다고 셀카 찍는 행위 자체를 부정적인 것으로 낙인 찍을 마음은 없다. 사진 찍히는 일 자체를 기피했던 대학 입학 이전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그 후가 정신적으로 더 건강했다. 하지만 과한 셀카 찍기와 사진 업로드가 나약한 자아의 표상이라는 점은 모두가 참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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