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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리 Oct 23. 2016

학교를 마치고.

 ‘학교를 마치고.’란 문장은 필자의 26년 인생 중 7할 이상을 관통한다. 의무교육을 거쳐 대까지 왔 삶은 아직 저 문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심지어 군 복무 기간 중에도 후임들에게 “나는 군인이 아니라 휴학생이니, 군바리 일은 군바리들이 알아서 해라.”라는 식의 농담도 했었다. 초-중-고-재수-삼수-대학생-휴학생의 신분을 거치면서 한 번도 ‘학생’을 벗어난 적이 없다는 뜻이다.


 ‘학교를 마치고’란 강제된 시간의 종결을 의미한다. 그 뒤 찾아오는 건 일종의 자유 시간. 자유의 깊이와 넓이는 학력에 비례하여 증가했다.

 

 초등학생 때는 과장 조금 더해 ‘저녁’이 없었다. 요즘 한국의 사원들이 퇴근을 못해 ‘저녁 없는 삶’을 살고 있다지만, 나는 무조건 집에 일찍 들어가야 했기에 저녁이 없었다.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 없었다.


학교를 마치고 바로 제민천(냇가)으로 향했다. 당시 초등학생은 핸드폰이 거의 없었다. 나는 시계도 불편해 잘 차지 않았다. 내 시계는 석양이었다. 개구리 잡고 물고기 잡다 하늘이 붉게 물들 즈음이면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갔다.

 

 중학생 때는 자유시간이 꽤 길어졌다.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적어도 밤 열 시 늦게는 열두 시까지도 나는 집 밖에서 나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자유시간의 활용도 달라졌다. 중학교 3년 간의 자유시간은 크게 세 공간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오락실, 피시방, 만화방. 초등학생 때는 원초적(?) 삶이 지배적이었지만, 중학생부터는 현대인으로서 생활을 했다. 중학생 당시 학교를 마친뒤의 하루는 위 세 곳 중 어딘가에서 ‘소비’되고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니 더 많은 자유가 생겼다. 학교는 강제로 밤 열 시까지나를 속박했지만, 그때까지의 삶 중 가장 공부를 열심히 했던 시절이었기에 생긴 이점도 있었다. 부모님께 ‘공부를 핑계로’ 모든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시험기간 이니까 공주대 도서관에서 밤새 공부하고 올게요.” 처럼. 학교를 마치고 한밤 중에 대학교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자유로운 새벽을 누릴 수 있었다.


 대학생 시절은 자유 그 자체였다.(아직도 대학생이긴 하지만)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동안 나는 나의 모든 시간을 스스로 통제해야 했고 이는 즐거운 일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하는 일들도 너무 다양해졌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공연도 보러 다니고, 술도 마시고, 미팅도 하고, 소개팅도 하고. 내 생활이 이렇게 변칙적이었던 적은 없었다.


 나의 자유는 ‘시간의 자율성’ 측면에서 확대되어왔다. 그런데 중요한 건 특정 시간에 무슨 일을 하던지, 원초적삶이 아니고서는 자본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나는 부모님께 용돈을 받으며 생활했다. 자유시간이 확대되는 만큼 용돈도 액수가 커졌다. 알바를 해서 용돈을 충당할 때도 있었지만, 경제적 자유의 증가는 시간의 자유가 늘어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취업을 하면 부모님께 받는 용돈은 끝이다. 아마도. 팽창해왔던 시간의 자율성은 바람이 빠질 것이고.


 ‘학교를 마치고’가 ‘하루를 마치고’가 아닌 ‘학생을 마치고’가 되는 순간 다가올 내 삶이 설레기도 하지만 조금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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