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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리 Nov 27. 2016

옆 방 아저씨와의 대화

그들이 느끼는 분노.

 파편화된 현대인의 삶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이웃과의 관계다. 닭장 같은 아파트 속에서 우리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아파트는 아니지만 2년 반 이상 살아온 원룸의 옆방에 누가 살고 있는지 몰랐다. 기침이 많고 아침 일찍 일을 나가는 분이 있다는 사실만 알았을 뿐.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방문을 들어설 찰나 한 중년의 남성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이런 날이 얼마나 있을까 싶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이웃사촌인데 얼굴 뵙기가 힘드네요.” 이 짧은 한 마디로 10분 이상 대화가 이어졌다. 간단한 안부부터 과거 및 현 정권에 대한 비판까지.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가까스로 대화를 끊고 방에 들어왔는데 마음이 개운치 않다. 아저씨의 얘기를 다 들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얼른 집 앞 슈퍼에 내려가 음료수 한 통을 산 뒤 옆 방문을 두드렸다. 처음 만났지만 오랜 친구처럼 맞아주는 아저씨께 감사했다.


 아저씨는 55세로 일용직 노동자다. 현재 건설 하청 업체에서 일을 하고 있다. 1차 하청업체가 아니라 몇 계단 더 아래에 있는 업체 팀장에게 일감을 받는다. 그는 현재 역차별을 느끼고 있다. 브렉시트에 찬성하고 트럼프를 찍었던 그들과 같은 감정 말이다.



조선족에 대한 분노


 아저씨는 하청 업체 노동자의 8~90%가 조선족이라는 사실에 큰 불만이 있다며 대화를 시작했다. "그들이 우리와 완전 다른 민족이라고 할 순 없지만 상당수가 중국에 돌아갈 생각으로 한국에 온다." 즉 그들에게 주어지는 임금이 내수 진작에 딱히 도움이 안 된다는 얘기다. 조선족 중 상당수는 삶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비용만을 한국에서 쓰고 나머지는 중국으로 보낸다.(그러나 검색 결과, 한국에 정착하는 조선족도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도 조선족이 한국에서 임금 차별을 받지 않냐는 질문에 아저씨가 답했다. "조선족 노동자가 적던 시절에 그들은 3만원 정도의 임금을 받았다. 한국에서 생활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하지만 그들의 수가 늘고 일용직 노동을 하는 한국인의 수가 줄어 상황은 역전됐다. 특히 젊은 한국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인이 비운 자리는 대부분 조선족이 차지했다. 이제 한국인과 조선족의 임금은 같다."


 아저씨는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조선족이 중국에서 일용직 노동을 할 때와 한국에서 노동을 할 때의 임금 차이는 10배 정도다. 한국에서 일당 10만원이면 중국에서는 만 원인 셈이다. 한국에서 최소한의 비용만을 쓰는 그들은 10만원이라는 일당이 적지 않은 돈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는 상황이 다르다. 10년 동안 임금이 거의 오르지 않았다. 업계 노동자의 상당수가 조선족이고 그들 수준에 10만원의 일당은 큰돈이기 때문이다."


 아저씨는 조선족을 '메뚜기 떼'와 비슷하게 여긴다. 한국인이 아닌 '인종'이 한국인의 땅에 넘어와 한국인의 삶을 파괴하고 사라져 버리는. 특히나 "막말로 전쟁나면 그 사람들이 어쩔거야. 다 중국으로 도망갈 사람들 아니야?"란 말에서 조선족과 한국인을 엄격히 가르는 아저씨의 모습과 분노를 엿볼 수 있었다.



건설업계의 나쁜 관행과 구조적 문제


 아저씨의 두 번째 불만은 너무나 복잡한 하청관계다. 하청에 하청에 하청을 거듭하며 실제 시공 노동자들의 임금은 최소한으로 줄어든다. 그들에게 건물의 안전성에 대한 책임의식이 있으리라 기대하는 건 오만이다. 보통 설계업체가 시공업체의 시공 과정을 관리감독 하는데 이마저도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변질됐다. 결과는 부실공사로 이어진다.

  

 "국가가 책임지고 노동자를 육성해야해." 아저씨의 바람이다. 지속적으로 일감도 보장함과 동시에 지금보다 근무여건과 환경을 개선시키면서 말이다. 하지만 3D 업종으로 낙인 찍힌 산업에 정부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또 대한민국은 육체노동을 천시하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대학진학률이 80%를 넘는 상황에서 대학생 대부분은 화이트 칼라를 꿈꾼다. 그들은 한 줌의 모래보다 적은 '신의 직장'에 입사하려 발버둥친다.


 모두가 최상위 직업만 바라보기에 경쟁에서 밀려난 다수의 '소수자'는 그대로 소외된다. 이는 비정규직 문제에 그대로 나타난다. 현재 대한민국 5차 6차 하청업체 직원들은 원청업체의 감독 아래 노동을 함에도 복지는 커녕 산재보험 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다. 적은 임금은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같은 노동을 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다른 곳에서 식사하도록 강제하는 회사도 있다. 독일 같은 경우 비정규직임에도 원청 직원과 같은 복지 혜택을 받는다. 당연히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도 지켜진다.


  

생각해 볼 문제


 임금 문제에 관해 노조에 가입해 싸울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물론 있단다. 심지어 단체를 조직하려다 몇 번이나 쫓기는 생활까지 하셨단다. 그럼에도 현재 가입한 단체가 없다길래 서울일반노조를 아냐고 물었다. 몰랐지만 이를 민노총 산하 단체라고 설명하니, 바로 거부감을 드러냈다. 아저씨는 민노총에 불신이 있었다. 대한민국 노동운동사에서 그들의 공을 무시할 순 없지만, 현재 비정규직을 대하는 민노총의 태도는 용납할 수 없단다. 그래서 앞으로도 서울일반노조엔 가입하지 않을 것 같다.


 아저씨와의 대화는 두 시간 이상 지속됐다. 그의 말에는 허점도 많았다. 사실관계가 불확실한 부분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그가 느끼는 분노의 감정이다. 특히 서경석 목사가 조선족 교회를 세웠던 일을 설명할 땐 목에 핏대가 서고 얼굴이 붉어졌다. 이 분노는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축적됐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 조직되지 않은 채 착취당하는 일용직 노동자는 많다. 미국처럼 이들의 마음을 낚아채는 포퓰리스트가 등장한다면, 그들은 언제든 일사분란하게 투표장으로 갈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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