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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리 Dec 25. 2016

크리스마스.

오늘은, 역시, 그래도.

 눈을 떴다. 고요하다. 나는 이어플러그를 착용하고 있다. 얼른 그것을 귓속에서 빼냈다. 달라진 건 없다. 지독하게 고요하다. 내 귓구멍으로 주황색 스펀지를 밀어 넣게 한 이들의 수다는 사라졌다. 집으로 갔든지 술에 취해 뻗었든지 혹은 루돌프가 되어 사라졌든지. 새벽 내내 위층집 방 문을 뚫고 나왔던 그들의 시끄러움, 활기, 난잡함 등이 지금은 잔상조차 없다. 아무튼 그들은 없다.


 낮 열 두시. 햇빛으로 가득 찬 내 방이 너무나 청량하다. 투명하고 서늘하다 못해 시리다. 그리고 누군가가 비워 놓은 듯 텅 비었다. 방바닥에 머리카락과 양말이 나뒹굴고 있음에도 말이다. 2년 넘게 생활해 온 공간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질감마저 느껴진다.


 뭐가 이리 조용하고도 공허할까.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365일 중 하루에 불과하다고 합리화해도 내면화한 미디어의 언어를 극복하지 못한 걸까. 무슨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밖에 나가자.고 내 안의 작은 아이가 말했다. 요즘 <라라랜드>가 그렇게 재밌다던데.


 역시 크리스마스다. 집 근처 몇 개의 영화관들을 검색해보니, 스크린 맨 앞줄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이미 예약이 완료된 상태다. 집에서 편하게 예능이자 보자. 그런데 볼 예능이 없다. 종강 후 집에서 점심 먹는 날이 몇일 있었는데, 그 때 라디오스타와 썰전을 모두 다 봐버렸다. 공허가 방 안을 답답하게 채워간다.


 남은 건 ‘쿨한 척’ 밖에 없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데 이보다 유용한 기술이 또 있을까. ‘쿨한 척’은 자본주의의 본질과 맞물려 있다. 타인을 쿨하게 대하려면 그를 인간이 아닌 ‘사물’로 대하면 된다. 상황을 쿨하게 인식하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무엇을 관조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건 그 대상과 감정의 접점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혼자 지지리 궁상을 떨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 진동이 울린다. “안녕하세요, 중앙일보 청춘리포트 팀입니다. 내일 신문콘서트 참석 가능하신가요?” 얼른 “네 가능합니다!”라고 보냈다. 게스트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 김윤아가 참석한다. 그래도 크리스마스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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