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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리 Dec 27. 2016

행복

중앙일보 신문콘서트.

 솔직히 어색하다. 기쁜 마음으로 글을 쓰는 일이. 단 두 문장을 타자로 두드렸는데 벌써 마음이 가라앉는다. 웃긴 일이다. 브런치에 일기 비스무레한 것들을 쓸 때 대게 감정은 배제됐다. 넣어봐야 약간의 아쉬움이나 우울함 뿐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글도 푸석푸석할 지 모르겠으나, 26년 짧은 인생 동안 오늘 하루만큼 멋진 날은 없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어제는 무기력한 크리스마스에 ‘중앙일보 신문콘서트 당첨 소식’이 생기를 불어 넣었다. 오늘은 바로 그 날이다. 콘서트 가는 날. 점심에 친구들을 만나고 오후 여섯 시쯤 홍대로 향했다. 콘서트는 롤링홀에서 열렸고 일곱 시부터 시작했다. 도착하니 여섯 시 반이었다. 듬성듬성 보이는 빈 자리를 찾아 맨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았다.

 

 롤링홀.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2011년 대학교 1학년 시절, 나는 그 곳에서 공연을 봤다. 지금은 이름조차 잊어버린 어느 인디밴드의 공연. 하지만 공연이 끝나고 “여러분 앞으로도 우리가 계속 음악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를 연이어 말하며 90도 인사를 멈추지 않는, 그들의 모습은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있다. 뜨지 못한 인디밴드의 삶 그 자체를 압축한 듯 보였다.

 

 당시의 기억이 롤링홀에 앉아 있는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김윤아를 만난다는 긴장과 설렘도 한몫 했지만. 어느덧 7시가 됐고 Jtbc 정강현 기자가 MC로 무대에 섰다. 1부는 MC와 청년들의 대화로 진행됐다. MC는 “그냥 발언하라고 하면 아무도 손을 들지 않을 것이니, 발언자에게 김윤아 사인시디를 주겠다.”고 했다. 관람석이 술렁였다. 작은 환호도 들렸다.


 첫 질문은 “청년들에게 정치란?” 이었는데 손 들지 않았다. 너무 많은 생각들이 떠올라서. 그러다 “대한민국 사회에 한 마디 해야겠다. 하는 사람 손들어 주세요.”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을 번쩍 들었다. 지금껏 브런치에 써온 내용을 조합해 말했다. 발언 자체는 썩 만족스럽지 못했으나 사인시디를 갖게 된다는 사실이 나를 위로했다.를 넘어 흥분시켰다.


 


 그리고 갓윤아가 등장했다. 갓윤아의 외모를 길게 묘사하거나 평가할 마음은 없지만 윤아 누나의 미소는 언급해야겠다. 보는 순간 저절로 <Hey Hey Hey>가 들렸다. 오바하는 게 아니다. 윤아 누나는 표정이 다양하다. 표정이 바뀔 때마다 그와 어울리는 자우림 혹은 김윤아 솔로 곡들이 떠오른다. 정말 매력적인 아티스트다.

  

 2부는 김윤아와 MC 그리고 참석자들의 대화로 진행됐다. 곡에 자신이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아왔던 윤아 누나다. 당연히 MC는 청년들에게 하고픈 말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누나는 “본인 고민의 답은 본인이 가장 잘 알 것. 20대라면 맘껏 연애하라.”고 했다. 나도 얼른 새 연애를 시작하고 싶다. 하하.


 2부는 약간 얼빠진 채로 보냈다. 시간의 흐름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음악 선생님이 윤아 누나에게 꼭 성악과에 가라며 성악을 가르쳤단다. 생각해보니 윤아 누나 특유의 창법에 성악의 특징이 묻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윤아 누나의 골수팬들은 기본적으로 ‘어둠’이 있다. 어떤 시절과 환경에서 비롯된. 3명의 참석자가 윤아 누나에게 질문을 하는데 모두 자신의 어둠을 먼저 말하고 "윤아 누나 노래 덕에 힘든 나날을 이겨낼 수 있었다." 고 했다. 본인도 마찬가지다. <샤이닝>에 의지했던 많은 날들이 떠오른다.

 

 대화가 끝나고 윤아 누나는 노래 세 곡을 불렀다. <야상곡>,<Going home> 그리고 <꿈>. 작은 공연장에서 노래를 들으니 큰 공연장에서 보다 울림이 좋았다. 몸과 마음 모두에.

 

 준비된 행사가 모두 끝났다. 사인시디를 받아 밖으로 나갔다. 무대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롤링홀 앞에 우두커니 서있었는데 옆에 앉아 계셨던 분이 노트를 들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발언에 감명을 받아 내 모습을 그리셨단다. 정말 고마웠다. 딱히 착하게 살아온 것도 아닌데 과분한 선물을 받았다. 연예인이라도 된 듯 했다.

 


 우연히 신문콘서트에 당첨됐다. 우연히 발언권을 얻어 사인시디를 받았다. 우연히 내 옆에 앉은 분께서 나를 그렸고, 나에게 건넸다. 뜻하지 않게 찾아온 행복은 기대했던 행복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살아있어 감사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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