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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리 Feb 26. 2017

결심

2017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다시 음악을 듣게 됐다. 엄밀히 말하면 가끔 집에서 듣기도 하고 코인노래방은 특히나 자주 갔지만, 이런 문제가 아니다. 예전처럼 ‘다시’ 지하철에서 이어폰 줄을 달랑거리며 걷게 됐다는 뜻이다. 생각해보니 참 오래됐다. 지하철 창문으로 비치는, 이어폰을 꼽은 나의 모습이. 적어도 군 생활 정도의 시간은 흘렀을 게다. 그렇다고 듣는 음악이 달라지진 않았다. 여전히 내 음악 폴더의 최대주주는 자우림이다.

     

자주 고민했었다. 왜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음악을 멀리하게 됐는지. 시기로 유추해 보아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인 것 같다. 뭐 무슨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냐고 하면 내세울 건 없지만, 그간 쌓아온 지식의 양이 너무 적었기에 뇌의 빈자리에 무엇이든 채워 넣으려 애썼다. 예전에는 지하철에서 음악을 들으며 멍하니 창문을 바라봤다면, 2015년부터는 텍스트를 읽었다. 신문 기사든 누군가의 글이든 가리지 않고 읽었다. 이 상황에서 음악 듣기는 정보 수집, 정리를 방해하는 부차적인 활동이 돼 버렸다.      


2012년 이등병 시절, 친했던 형과의 통화가 생각난다. 우리는 인디밴드 공연 및 각종 락 페스티벌을 여러 차례 다녔는데, 내가 형에게 말했다. “형, 저 플럭서스 뮤직이나 파스텔 뮤직에 들어가고 싶어요. 제가 음악을 못해도 그곳들도 회사니까 어떤 사무적인 일을 할 사람은 필요하지 않을까요?” 실상은 모르지만 순전히 열정과 동경만으로 망상을 펼치던 때였다. 무료한 주말, 할 일이 없어 몸이 비틀어질 때면 자우림 노래의 가사를 일기장에 적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음악 없는 삶을 살았으니 스스로도 쉽사리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 신기한 건 다시 음악을 듣게 됐다는 것이다. 마음의 여유가 생긴 건가. 이제 본격적인 취업 준비를 할 시점인데, 또 쉽사리 이해할 수가 없다. 사실 음악을 듣지 않으면서 멀리하게 된 몇 가지가 더 있다. 옷, 영화, 사진. 사진을 빼고는 엄청나게 많은 관심을 쏟았었다. 패선 잡지 구독은 물론이고, 군 생활 중에도 외박이나 휴가를 나오면 첫 날의 오후는 모두 쇼핑으로만 보냈으니. 영화를 좋아할 때는 서울아트시네마, 시네 큐브를 자주 갔었다.     

 

셋의 공통점은 모두 이미지로 구성돼있다는 점이다. 찰나에 타인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다. 사고하지 않아도 이미지는 뇌리에 그대로 박힌다. 반면 긴 텍스트의 경우 능동적으로 문장의 호흡을 따라가야 한다. 약간(?)의 노력을 요구하지만 상상력은 훨씬 자극된다. 정보 전달의 깊이도 이미지는 텍스트를 따라올 수 없다. 모든 걸 빨리 빨리 처리하고 참을성이 부족한 경향이 있는 한국인의 경향을 고려해보면, 왜 이미지로 이뤄진 카드 뉴스가, 짧은 영상이 유행하는지, 텍스트를 읽는 사람이 줄어드는지 알 법도 하다.  


글이 쓸데없이 길어졌는데 오늘 일기를 쓰는 이유는 방금 다짐한 나의 결심 때문이다. 2011년 스마트 폰 노예 인생을 시작으로 햇수로 7년 간, 나의 배경화면은 조디 포스터였다. <양들의 침묵>에서 고혹적인 눈빛에 반해, 지금껏 3번의 기기변동 와중에도 그녀의 자리는 굳건했다. 아마 군 생활을 제외한다면 하루에 가장 많이 본 게 그녀의 얼굴이었을 게다. 그런 내가 이제 배경화면을 바꾸려 한다. 사그라졌던 음악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타오르는 시점에 이런 결심을 내린 건, 분명 ‘이미지-텍스트’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도 어떤 변화가 왔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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