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다시 음악을 듣게 됐다. 엄밀히 말하면 가끔 집에서 듣기도 하고 코인노래방은 특히나 자주 갔지만, 이런 문제가 아니다. 예전처럼 ‘다시’ 지하철에서 이어폰 줄을 달랑거리며 걷게 됐다는 뜻이다. 생각해보니 참 오래됐다. 지하철 창문으로 비치는, 이어폰을 꼽은 나의 모습이. 적어도 군 생활 정도의 시간은 흘렀을 게다. 그렇다고 듣는 음악이 달라지진 않았다. 여전히 내 음악 폴더의 최대주주는 자우림이다.
자주 고민했었다. 왜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음악을 멀리하게 됐는지. 시기로 유추해 보아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인 것 같다. 뭐 무슨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냐고 하면 내세울 건 없지만, 그간 쌓아온 지식의 양이 너무 적었기에 뇌의 빈자리에 무엇이든 채워 넣으려 애썼다. 예전에는 지하철에서 음악을 들으며 멍하니 창문을 바라봤다면, 2015년부터는 텍스트를 읽었다. 신문 기사든 누군가의 글이든 가리지 않고 읽었다. 이 상황에서 음악 듣기는 정보 수집, 정리를 방해하는 부차적인 활동이 돼 버렸다.
2012년 이등병 시절, 친했던 형과의 통화가 생각난다. 우리는 인디밴드 공연 및 각종 락 페스티벌을 여러 차례 다녔는데, 내가 형에게 말했다. “형, 저 플럭서스 뮤직이나 파스텔 뮤직에 들어가고 싶어요. 제가 음악을 못해도 그곳들도 회사니까 어떤 사무적인 일을 할 사람은 필요하지 않을까요?” 실상은 모르지만 순전히 열정과 동경만으로 망상을 펼치던 때였다. 무료한 주말, 할 일이 없어 몸이 비틀어질 때면 자우림 노래의 가사를 일기장에 적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음악 없는 삶을 살았으니 스스로도 쉽사리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 신기한 건 다시 음악을 듣게 됐다는 것이다. 마음의 여유가 생긴 건가. 이제 본격적인 취업 준비를 할 시점인데, 또 쉽사리 이해할 수가 없다. 사실 음악을 듣지 않으면서 멀리하게 된 몇 가지가 더 있다. 옷, 영화, 사진. 사진을 빼고는 엄청나게 많은 관심을 쏟았었다. 패선 잡지 구독은 물론이고, 군 생활 중에도 외박이나 휴가를 나오면 첫 날의 오후는 모두 쇼핑으로만 보냈으니. 영화를 좋아할 때는 서울아트시네마, 시네 큐브를 자주 갔었다.
셋의 공통점은 모두 이미지로 구성돼있다는 점이다. 찰나에 타인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다. 사고하지 않아도 이미지는 뇌리에 그대로 박힌다. 반면 긴 텍스트의 경우 능동적으로 문장의 호흡을 따라가야 한다. 약간(?)의 노력을 요구하지만 상상력은 훨씬 자극된다. 정보 전달의 깊이도 이미지는 텍스트를 따라올 수 없다. 모든 걸 빨리 빨리 처리하고 참을성이 부족한 경향이 있는 한국인의 경향을 고려해보면, 왜 이미지로 이뤄진 카드 뉴스가, 짧은 영상이 유행하는지, 텍스트를 읽는 사람이 줄어드는지 알 법도 하다.
글이 쓸데없이 길어졌는데 오늘 일기를 쓰는 이유는 방금 다짐한 나의 결심 때문이다. 2011년 스마트 폰 노예 인생을 시작으로 햇수로 7년 간, 나의 배경화면은 조디 포스터였다. <양들의 침묵>에서 고혹적인 눈빛에 반해, 지금껏 3번의 기기변동 와중에도 그녀의 자리는 굳건했다. 아마 군 생활을 제외한다면 하루에 가장 많이 본 게 그녀의 얼굴이었을 게다. 그런 내가 이제 배경화면을 바꾸려 한다. 사그라졌던 음악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타오르는 시점에 이런 결심을 내린 건, 분명 ‘이미지-텍스트’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도 어떤 변화가 왔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