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끄적끄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래리 Apr 08. 2017

이사.

2017년 4월 8일. 오늘 이사를 간다. 지금은 새벽 6시가 조금 넘은 시각. 새벽 이슬이 아직 마르지 않았을, 그런 푸르름이 창밖에 잔상으로 남아있다. 이른 아침의 청량함을 느끼는 게 얼마만인지 아득하기에, 방 안의 등도 켜지 않은 채 타자를 두드리는 중이다.


눈은 30분도 더 전에 떠졌다. 본능적으로 손은 휴대폰으로 향했고 페이스북에서 좋은 포스팅을 몇 개 봤다. 읽고 싶은 책들이 생겼다. 지금도 많이 쌓여있건만. 사실 노트북은 어제 열었어야 했다. 문득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솟아올랐던 그 때 글을 썼어야 했다. 그럼에도 나의 게으름 덕분에(?) 일정이 늦춰진 것에 딱히 불만은 없다. 글을 쓰고 싶었던 어제의 감정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제 어제 얘기를 해볼까 한다.


처음 이 방에 이사왔을 당시 나는 두 개의 열쇠를 받았다. 그런데 초반에 열쇠를 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다 하나를 잃어버렸다. 복사를 했건만 또 잃어버렸다. 방을 나가기 전, 이전과 같은 상태로, 즉 두개의 열쇠를 새로 이 방에 머무를 사람에게 주기 위해 다시 한 번 열쇠 복사를 하러 갔다.


그런데 나의 열쇠고리가 눈에 들어왔다. 빨간 하트 속에 하트가 하나 더 들어있는, LOVE라는 글자가 박힌, 전 여자친구가 선물해 준 것이었다. 선물 받을 당시엔 뒷면에 무언가 글씨도 써서 줬는데 그건 시간이 지나며 지워졌다. 아무튼 그 열쇠고리를 열쇠와 분리하는 순간, 지난 이곳에서 생활했던 지난 3년이 하나 둘 흘러나왔다. 1년 단위로 세월을 돌아볼수록 난 참 많은 변화를 겪었다. 지금도 변하는 중이다. 그럴 수 있을 만큼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배웠다. 감정적으로는 슬픈 일도, 기쁜 일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무지갯빛 추억들이 모두 하얗게만 보일 뿐이다.  


사실 과거의 일들을 모두 '추억'으로 뭉뚱그리는 일은 개별 사건들에 대한 무책임일 수도 있다. 보통 추억이란 단어가 풍기는 뉘앙스는 긍정적이라,  이는 안 좋았던 일, 좋았던 일 모두를 같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지금 나는 3년 간 경험했던 모든 것들을 똑같은 감정으로 대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앞으로 내가 살아야 할 곳은 방문이 도어락이라 열쇠고리가 필요없기 때문. 당연히 존재해왔던 열쇠고리가 기능을 잃는다고 생각하자, 이에 매개됐던 많은 추억들을 잃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분명 착각이다. 이 방을 떠나도 방에 얽힌 추억은 가져갈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저 아련함은 소화되지 않은 채 제 자리를 강하게 지키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