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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리 Apr 08. 2017

이사.

2017년 4월 8일. 오늘 이사를 간다. 지금은 새벽 6시가 조금 넘은 시각. 새벽 이슬이 아직 마르지 않았을, 그런 푸르름이 창밖에 잔상으로 남아있다. 이른 아침의 청량함을 느끼는 게 얼마만인지 아득하기에, 방 안의 등도 켜지 않은 채 타자를 두드리는 중이다.


눈은 30분도 더 전에 떠졌다. 본능적으로 손은 휴대폰으로 향했고 페이스북에서 좋은 포스팅을 몇 개 봤다. 읽고 싶은 책들이 생겼다. 지금도 많이 쌓여있건만. 사실 노트북은 어제 열었어야 했다. 문득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솟아올랐던 그 때 글을 썼어야 했다. 그럼에도 나의 게으름 덕분에(?) 일정이 늦춰진 것에 딱히 불만은 없다. 글을 쓰고 싶었던 어제의 감정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제 어제 얘기를 해볼까 한다.


처음 이 방에 이사왔을 당시 나는 두 개의 열쇠를 받았다. 그런데 초반에 열쇠를 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다 하나를 잃어버렸다. 복사를 했건만 또 잃어버렸다. 방을 나가기 전, 이전과 같은 상태로, 즉 두개의 열쇠를 새로 이 방에 머무를 사람에게 주기 위해 다시 한 번 열쇠 복사를 하러 갔다.


그런데 나의 열쇠고리가 눈에 들어왔다. 빨간 하트 속에 하트가 하나 더 들어있는, LOVE라는 글자가 박힌, 전 여자친구가 선물해 준 것이었다. 선물 받을 당시엔 뒷면에 무언가 글씨도 써서 줬는데 그건 시간이 지나며 지워졌다. 아무튼 그 열쇠고리를 열쇠와 분리하는 순간, 지난 이곳에서 생활했던 지난 3년이 하나 둘 흘러나왔다. 1년 단위로 세월을 돌아볼수록 난 참 많은 변화를 겪었다. 지금도 변하는 중이다. 그럴 수 있을 만큼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배웠다. 감정적으로는 슬픈 일도, 기쁜 일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무지갯빛 추억들이 모두 하얗게만 보일 뿐이다.  


사실 과거의 일들을 모두 '추억'으로 뭉뚱그리는 일은 개별 사건들에 대한 무책임일 수도 있다. 보통 추억이란 단어가 풍기는 뉘앙스는 긍정적이라,  이는 안 좋았던 일, 좋았던 일 모두를 같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지금 나는 3년 간 경험했던 모든 것들을 똑같은 감정으로 대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앞으로 내가 살아야 할 곳은 방문이 도어락이라 열쇠고리가 필요없기 때문. 당연히 존재해왔던 열쇠고리가 기능을 잃는다고 생각하자, 이에 매개됐던 많은 추억들을 잃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분명 착각이다. 이 방을 떠나도 방에 얽힌 추억은 가져갈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저 아련함은 소화되지 않은 채 제 자리를 강하게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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