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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리 Jun 22. 2017

교환학생과 수료생.

아직 끝나지 않은.

2016년 6월 중순, 네덜란드의 햇살도 강렬해질 쯤이었다. 5개월 가량을 우중충한 날씨로 보내다 이제 좀 맑은 하늘이 당연하다 싶어질 때 학기가 끝나 버렸다.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일 교환학생으로서의 생활이 말이다. 그럼에도 무언가 끝났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던게 애초에 이 곳에 머물렀던 이유가 학업보다는 유럽 여행에 있었기 때문. 유럽 땅을 밟고 있는 목적에 비춰봤을 때 학기가 끝나자마자 떠나야 할 17일 간의 독일 여행이며, 친구들과의 스페인 여행, 휴가를 내고 올 엄마와의 여행, 이후 체코 여행까지 무려 한 달 반 동안이나 유럽을 떠돌아야 했기에 네덜란드 학생으로서의 종강은 내게 큰 감흥을 안겨주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어제 현대사회학 시험을 끝으로 나의 대학생활 8학기가 모두 끝나 버렸다. 이제 좀 사회학 공부를 더 깊게 파볼까 하는 시점에 끝나서 그런지 네덜란드의 맑은 하늘을 못 보는 것보다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크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해 내가 대학에 온 목적은 취업때문이니까. 학교를 다니며 취업에 대한 강박은 많이 희석되기도 했지만, 졸업할 쯤 되니 부모에 대한 부채의식이 다시금 저 원래의 목적을 선명하게 만들었다.

 

비슷하지도 않은 두 사건의 결말을 억지로 묶어내려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 8학기 후의 그 다음 미지의 시간을 살아갈 내게 안도를 주기 위함인 것 같다. 인간은 은유를 통해 새로운 것을 파악하지 않는가. 수료생으로서의 생활도 교환학생을 마치고 여행했던 때처럼 별 일 없이, 정해진 끝(아마도 취업)을 향해 그저 묵묵히 걸어갈 뿐이라는 자위가 필요한 시점이다. 말이 수료생이지 백수다. 지금의 상황에 유럽의 순간을 끌어들인 것은 백수로서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생활의 큰 틀은 이미 짜놓았다. 6학점 정도를 청강하고 학교에 꾸준히 나가며 스터디 과제를 하는 것. 이번 학기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일상이다. 이렇게 정해놓고 나니 공식적인 대학생활이 끝났다는 게 더욱 실감나지 않는다. 내 의도대로 교환학생을 마친 후의 상황과 같아진 것이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 여행은 8월 4일에 끝나기로 네덜란드에 가기 전부터 정해졌지만, 지금 도달하려는 끝은 기약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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