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중천인 건 커튼을 보고 알았다. 노랗게 빛나고 있는 커튼이 외부 세계의 날씨를 짐작하게 했다. 특별한 일은 없나보다. 반쯤 열어 놓은 창에선 공기가 걷는 소리가, 어쩌면 기계가 뿜어내는지도 모르는 웅웅거림이 스며온다. 아주 조용하지는 않지만, 거슬리지 않는 정도의 소리가 고요함을 만들어낸다. 약간의 소리 덕분에 시간의 흐름이 느껴진다. 내 몸뚱이는 시체처럼 가만히 누워있지만, 지금 이 순간은 멈춰있지 않고 계속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귀를 통해 깨닫는다.
아마 창을 조금이라도 열어 놓지 않았다면 나는 영원의 세계에 갇혔을 것이다. 안경을 쓰지 않아 모든 것이 흐릿한 나의 눈에 세상은 멈춰보였기 때문이다. 시야에 들어온 것들이 무엇인지도 확실치 않다. 분명 선반인데 초록인지 노랑인지 모를 자국들과 주황색 혹은 붉은 계통의 색이 퍼지고 있다. 저것들이 라면 봉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는 중요치 않다. 나는 보고 있지만 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선은 고정돼 눈알에 미동조차 없다. 그럼에도 마음에선 갖가지 의미들이 솟아오른다. 눈에 들어온 이미지가 불확실하면 불확실할수록 머릿속은 더 바빠진다. 의미의 연쇄작용은 끊이지 않는다. 계속해서 뻗어나간다. 동시에 하나의 스토리를 형성한다. 망상이다. 그러나 신화가 될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이 왜 이리 편할까. 매일 마주하는 순간인데도 단지 오늘인 공휴일이라는 사실 때문에 다르게 느껴지는 것일까. 어짜피 9학점 밖에 안 듣는 취준생인데 말이다. 반복되는 새소리는 청량함을 더한다. 불을 켜고 싶지 않다. 내 방에 앉아있는 희미한 어둠이 떠나는 순간 나의 평화도 사라질 것이다. 안경도 쓰기 싫다.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이는 순간 나는 망상에 빠질 수 없다.
하지만 안경을 집은 손은 이윽고 등의 스위치를 누른다. 똑같은 하루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