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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리 Jun 28. 2017

여행

청춘시대를 보다가.

난 집에서는 하루종일 공부할 수 없는 몸이다. 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엔 내 의지에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어쨌든 오전, 오후, 저녁 내내 집에서 공부해 본 적이 없다. 식사를 한 번할 때마다 무언가 영상을, 이를테면 예능이라던지 유튭을 틀어놓는데 보통 분량이 한 시간은 되기에 식사 시간보다는 훨씬 길다. 긴 영상을 보는 내 의식은 늘어지고, 영상을 다 보고는 더 늘어진 상태가 된다. 이 마음가짐으론 보통 바로 공부를 못하게 된다.


그래서 오전에 신문을 읽고 책을 조금 본 뒤 점심을 먹고는 바로 학교로 향한다. 학교에서도 오후엔 도서관 3층, 저녁을 먹고는 도서관 4층에서 공부한다. 이 편이 나에게 맞다. 그런데 어찌됐든 점심은 집에서 먹고 학교를 가야 용돈을 절약할 수 있다. 즉 일주일을 기준으로 최소 5회 이상은 무언가를 시청해야 한다는 말이다. 즐겨보는 예능으로는 라디오스타, 썰전이 있었는데 대선이 끝나고 루즈해진 감이 있어 썰전은 요즘 자주 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라디오스타 하나 만으로는 모든 점심 시간을 책임질 수 없다. 필요에 의해 냉장고를 부탁해, 해피투게더, 아는형님까지 나의 예능 스펙트럼을 넓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조차도 모든 점심 시간을 메우기란 역부족이었다.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 때 떠오른게 ‘청춘시대’다. 이미 친구들로부터 ‘갓’드라마라는 평을 꽤 들었다. 도깨비처럼 환타지 요소가 있지 않은 일상물이기에 별 생각 없이 점심을 먹으며 보기에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일상물은 그 일상에 담긴 통찰을 느끼는 맛에 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재밌을 것이란 확신이, 그리고 한 시간이라는 적절한 한 회 분량이 마음에 들어 오늘 점심부터 청춘시대를 보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아마도 다섯 여자. 중심 화자가 유은재인지, 아니면 첫 회의 화자만 유은재인지는 모르겠지만, 스무살이 되어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그녀의 모습에 6년 전 내 모습을 대입시킬 수밖에 없었다. 보통 픽션을 읽으면 등장하는 인물과 자신과의 유사성을 발견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가. 차이가 있다면 그녀는 나보다 훨씬 내성적이라는 점. 나도 아주 어렸을 땐 분명 내성적인 면이 있던 것 같은데 어느새 그 부분은 점점 작아져 이제는 존재하는지 알 수 없게 됐다. 무튼 나와 같으면서도 다른 유은재에 최대한 나를 이입해 드라마를 시청했다.

 

신입생. 또 다시 딱히 풋풋하지 않았던 나의 새내기 시절을 떠올리며 후회했다. 아마 이 후회가 가장 극대화됐을 때는 2015년도 사회학도의 밤 때였을 것이다.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어우러져 촌극을 했던 사회학과 학생들의 모습은 대학교 3학년의 끝자락에 서있는 나로 하여금 대학생활, 특히나 신입생 시절, 과행사에 자주 참여하지 않았던 때와 그들의 모습을 비교하게 만들었다. 당시 친했던 선배들이야 지금도 친해 종종 만나지만, 공식적인 과행사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기에.


그럼에도 1학년은 분명 내게 풋풋한 시절이었다. 대학을 1, 2년 늦게 들어왔다고 해도 다르지 않았다. 신입생은 신입생이다. 나는 충분히 어리숙했고 모르는 게 많았다. 지금도 그만 그렇지 않은 체 한다. 사실 1학년 때도 순진하지 않은 체를 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 때는 나의 인상관리가 정말 어수룩했고, 이에 대해 동기들과 얘기하기도 했지만 지금도 그럴지는 모르겠다.


그렇다. 나에게도 풋풋함은 있었다. 귀여운 체를 안했을 뿐이지. 귀여운 체를 안하려는 그 모습이 오히려 더 풋풋했다. 사춘기 소년의 치기라던지하는 미숙한 반항심이, 어른인 척하는 오만함이 말이다. 신입생 시절을 떠올리면 언제나 노오랗고 미지근한 봄날의 햇살이 배경으로 떠오르는 것도 당시 나의 풋풋함을 증명하는 요소일 것이다.


드라마를 보다 그때의 풋풋함에 취해버렸다. 지금은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녀야만 찾을 수 있던 그 느낌을 미디어라는 중재자를 통해 손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확신이 생겼다. 여행을 가자. 비행기를 타고 조선반도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도 좋다. 유은재처럼, 버스를 타고 혹은 기차를 타고 어디든 가자. 나의 풋풋함을 찾을 수 있는 여정이 되게끔, 아니 찾을 수 없어도 일단 가자. 그렇게 내일로 티켓 5일권을 끊어버렸다. 출발은 이번 주 일요일. 아직 어느 도시를 갈지도 정하지 않았다. 확실한 건 이를 취소할 생각은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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