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멜 컵이 깨졌다. 선반에 놓인 주전자를 들어올리다 옆에 있던 초코멜 컵이 밀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고꾸라진 모습은 처량했다. 노란색 파편은 차가운 현관 위에 흩어졌고, 두 번 다시 일어날 수 없어 보였다.
이렇게 네덜란드의 추억이 또 하나 사라져 버렸다. 작년 8월, 귀국한 지 1주일도 지나지 않아 암스테르담에서 샀던 동전지갑을 잃어버렸다. 카키도 초록도 아니면서 무언가 깊은 어둠을 담고 있을 것 같은 색이 매력적이던 지갑이었다. 유럽에서 현금 결제를 하면 동전을 쓸 일이 많기에 그 지갑은 정말 유용했다. 그보다는 지갑에 얽힌 추억들이 훨씬 중요했지만.
초코멜 컵도 단순히 컵 이상의 것이었다. 초코멜이란 네덜란드의 초코 우유 상품으로 지금껏 먹어본 초코 우유 중 가장 맛있었다. 그런데 생활비를 최소화해 더 많은 여행을 가고 싶었기에 최대한 아껴 먹었다. 한 번 마시면 3컵 씩 마시곤 했지만 마트를 갈 때마다 사오진 않았다. 하우스메이트 모두가 나의 초코멜 사랑을 알았기에 당연히 이에 얽힌 추억도 많았다. 그 추억을 손에 잡히는 물질에 고스란히 담고 싶어 플리마켓에서 저 컵을 산 것이었고.
그런데 오늘 그 토템이 부숴져 버렸다. 내 기억 속에서 초코멜과 그에 얽힌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겠지만 그 당시를 그리워하는 의례 행위는 전보다 확실히 덜 하게 될 것이다. 당시의 기억과 현실의 나를 매개했던 존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며칠 전 하우스메이트였던 동생과 통화를 했다. 네덜란드의 추억을 곱씹느라 한 시간 이상이 흘렀는지 몰랐었다. 그 시절은 영원한 노스탤지어다. 절대로 돌아갈 수 없으나 언제나 그리운. 막연하게 다가오리라 믿는 밝은 미래가 아닌, 실제 경험이었기에 더욱 아련하다. 그런 의미에서 초코멜 컵은 아편과도 같았다. 하나의 목적을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는 지금과 다른, 그저 자전거가 이끄는 곳으로 페달만 구르던 편안한 때를 불러일으켰으니 말이다. 한국에서도 물론 저렇게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용기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