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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리 Aug 09. 2017

덩케르크

잔교에서 일주일, 바다엣 하루 그리고 하늘에서 1시간. 덩케르크는 이에 대한 서사라기 보다 묘사에 가까운 영화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극적인 전개 과정을 보여준다기보단 그 3개의 시간 속에서의, 전쟁 속에서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소설을 읽을 때도 서사보다는 묘사에 집중하기에 영화에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이러한 보여줌으로 인해 다큐같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지만 곳곳에서 들려오는 한스 짐머의 음악때문에 덩케르크는 분명한 영화라고 확신했다. 그의 음악 덕분에(?), 특히 민간인 배들이 덩케르크 해안에 다다랐을 때는 짭짤한 것이 목구멍에서부터 끓어오르기도.


묘사가 영화의 주를 이루다보니 생각할 시간도 많았다. 자연스럽게 전쟁의 잔인함과 불안정함을 떠올리다가도 확실한 적을 상대로 한 민족의(마지막에는 나아가 프랑스까지 챙기지만) 내부 결속력이 강화되는 모습을 보니 모순적으로 안정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독일군이라는 타자를 상점함으로써 영국의 개인들은 새로운 주체가 되고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타자를 만드는 작업은 같은 민족 내부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배가 물에 잠겨 무게를 줄이려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그들은 깁슨을 배 밖으로 내보낼 명분을 만들기 위해 그를 독일군으로 몰아부치기도 했다. 정말로 연대는 적대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일까.


덩케르크에서 독일군은 확실한 타자다. 그럼에도 독일군의 얼굴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이 영화의 또다른 특징이다. 독일군은 오직 전투기로만, 마지막 장면에선 파리어의 조종사를 포획하는 모습만으로 등장한다. 영화에서는 지극히 영국인들만 나타날 뿐이다. 약간의 프랑스인들도 나오긴 한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의 평처럼 영국뽕이 심하다고는 느끼지 않았다. 영국의 민족적 색깔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은 소재 자체와 국기 정도. 뭐 마지막에 처칠의 연설을 신문에서 읽기도 했지만, 전반적인 영화의 묘사는 연합군과 독일군의 민족적 대립을 드러냈다기 보다는 전쟁 일반에 대한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다.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본 영화라 그런지 더 애착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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