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은 현대인의 상호작용을 연극에 비유했다. 우리는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뿐 그 역할 자체는 아니기에, 철저히 그 역할을 연기해 타인을 속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본모습은 ‘무대 뒤’에서만 드러난다. 속인다는 게 꼭 나쁘지만은 않다. 어쩌면 사회가 유지되는 비결이 자신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는 ‘거짓말’에 있을 지 모른다.
반면 은희는 거짓말로 최악의 하루를 맞이한다. 선후관계가 불분명한 전남친, 전전남친에게 했던 거짓말이 들통나 난처한 순간에 빠져 현기증까지 찾아온다. 은희는 왜 이토록 ‘잔인한’ 상황에 빠졌을까. 이 남자 저 남자를 만나고 싶은 욕망에 충실했기 때문일까. 거짓말을 했기 때문일까. 그럼에도 은희는 ‘한예리로서’ 꽤나 진실한 모습을 보인다. 극 중 여배우 역할을, 그리고 과거에 무용까지 했다는 점은 실제 ‘배우 한예리’와 같기 때문이다. 영화라는 무대에 올려진 은희와 사회라는 무대에 올려진 한예리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어쩌면 은희는 한예리일지도 모른다.
료헤이 역시 거짓말로 최악의 하루를 맞이한다. 한국의 출판사에 속아, 준비도 안된 출판기념회를 위해 바다 건너 한국에 왔다. 료헤이의 직업은 소설가. 그리고 아름다운 매거진 에디터와의 인터뷰가 복선으로 나왔듯 영화 스토리 전체의 설계자다. 그래서인지 화면에 료헤이의 얼굴이 자주 나오진 않는다.
은희와 료헤이의 하루 중 둘이 만나는 순간은 ‘최악’이 아니었을 것이다. 은희는 료헤이에게 당신과 이야기하는 이 순간도 거짓말이라고 했지만, 누가봐도 은희의 하루 중 가장 진실된 순간은 료헤이와 함께 있을 때다. 둘은 불이 꺼진 ‘무대의 밖’을 걸었다. 은희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일본말을 료헤이에게 부탁하며, 자신은 춤으로 화답했다. 거짓말이 가능한 경우가 ‘말’이 통할 때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언어적 단절이 오히려 모순적으로 진실된 소통을 가능케 한다는 뜻이 담겨 있을까 싶기도 하다. 아니 진실된 것은 소통을 하고 싶은 마음일 뿐, 그 소통 자체는 또다른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면에서 료헤이는 새로 떠오른 이야기가 해피엔딩을 맞이할 것이라 했다. ‘어둠 속에서’ 길을 걷던 주인공이 말이다. 역시나 료헤이는 영화 스토리의 창작자였고 은희는 주인공이었다. (이 부분에서도 은희와 한예리처럼, 영화 내부와 외부 상황이 혼재됐다.) 그런데 어떻게 주인공에게 행복한 결말이 다가올까. 둘이 ‘무대 밖’에서 나누었던 진실된 모습을 통해? 진실된 모습이란 게 과연 존재할까. 영화가 끝난 뒤 가장 진하게 남은 건 고프만의 말이었다.
*인디 영화는 그 특성상 많은 배우가 출연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화면에 배경으로만 비어있는 공간이 많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특히 걷는 씬이 많이 나왔다. 그럼에도 인물의 빈틈을 노래가 메웠기에 산뜻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주인공에 집중할 수도 있어서 좋았다.
**은희와 료헤이가 처음 마주한 순간에 비해 카페에 앉아서 얘기할 때 영어 말하기 실력이 확 늘었다. 처음 만났을 때도 영어를 더 못하는 척 연기했던 것일까.
***은희 전 남친, 전전 남친이 너무 이기적이고 찌질하게 나와 보는 내가 짜증났다.
****이혼남과의 과거 씬은 루즈했다. 처음에는 은희와 이혼남이 카페에서 얘기하는 것도 은희가 이혼남을 떨궈내기 위한 연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울더니, 과거를 회상하고 분위기가 진지해졌다. 이 씬에서는 은희의 감정선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특히나 이혼남이 육교로 올라가는 은희를 바라볼 때 나오는 경쾌한 노래가 나오는 의도까지 생각한다면 더욱 더. 은희의 행동이 ‘진짜’인지 ‘연기’인지 헷갈리게 하는 것이 감독의 의도였다면 성공이다.
*****료헤이를 인터뷰하던 에디터께서는 어디로 갑자기 사라진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