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너무 TMI라고 생각이되지만 갈피를 못 잡는 분들께 나침반이라도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조심스레 적어봅니다. 저는 군대를 조금 늦게 갔다 와 제대를 하고 나머지 1학기 3개월을 교환학생으로 중국에서 학업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전 중국 경험이 3개월 남짓하니 국내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졸업 후 회계사 세무사가 되기 위해 2년 정도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돌연 아버지께서 쓰러지셔서 경영하시던 회사에 공백이 생긴 상태였습니다. 기계부품을 만들고 납품하는 회사라 제가 관심 있는 분야도 제가 가고자 하는 길도 아니었고 제가 이루고 싶은 꿈도 따로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형제 역시 커리어에서 중요한 순간에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더 마음 놓고 정진하길 바랐고 소중한 가족인 아버지를 외면할 수 없어 그때부터 회사에 출근하며 아버지 빈자리를 대신하려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매일 공장문을 가장 마지막으로 닫고 나갔고 주위에서 일을 그만하라고 할 정도로 열심히 했지만 이미 재정적으로 기울어져가던 그 흐름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회사는 파산하였고 저는 아무것도 준비 안된 상태에서 홀로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연금과 형제의 뒷받침으로 살 수 있다고 하시면서 제가 제일 걱정된다고 했습니다. 저는 삶을 살아가다 보면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 걱정마시라 위로하며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당시에 집에서 머물며 부모님 시야에 제가 보이면 항상 마음에 걸려하실 것 같았고 그것때문에 속상해 하실까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저도 마땅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요.
무작정 상경한 후 집세를 내고 나니 수중엔 13만 2천 원 정도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정말 내가 이렇게 돈이 없었나 싶어 예비군복까지 뒤져보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집세도 내고 생활을 하려면 조금 자금이 있어야 했고 알바 구하기는 3년 전 정도만 해도 정말 어려워 편의점 알바도 대기자가 많고 여러번 면접을 통해 선발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되는대로 서울 전역 편의점을 돌아다니며 이력서를 넣고 기다리는 동안 알바몬에 올라오는 여러 가지 일용직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푼이라도 돈을 더 버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거리와 수입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정말 일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일자리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회기에 살고 있었지만 모란역 부근 쿠키 공장까지도 출근하며 밤새 쿠키 컨베이어 벨트로 전해져 오는 쿠키 트레이를 닦거나 무대 철거, 콘서트 보안, 공사장 철거, 호텔 뷔페, 김치공장, 떡갈비 공장, 티브이 포장 많은 일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힘든 일을 하는 가운데 당연히 식비를 최대한 아껴야 했기 때문에 고래밥 하나를 사서 하루 종일 나눠먹곤 했습니다. 당시 고래밥이 700원으로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음식이 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궁상이 아니라 말그대로 돈이 없었고 수입이 불안했기에 살기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물론 가끔 점심이 나오는 곳에 일용직이 잡혔을 때는 다행히 밥을 해결할 수 있었지만 위에 열거한 일용직 중에 식사가 제공되는 일자리는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3개월이 지나 23킬로가 빠져 통통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지하철에서 앉았다 일어나기만 해도 시야의 절반이 캄캄해져 어지러울 지경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넘어지지 않으려 주변에 붙잡히는 것을 붙잡고 내 시야를 가리고 있는 그 까만 반점이 사라질 때까지 이를 꽉 깨물고 기다리곤 했습니다.
사실 너무나도 힘들었지만 가족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이런 사실을 그때 말한 적은 없었습니다. 억울하지도 분하지도 않았고 누구든 살다 보면, 겪을 수 있는 일이고 누군가는 이보다 더 심한 일을 겪기도 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모든 상황이 그 누구의 탓도 아닌 내 선택, 내 행동이 빚어낸 결과이기 때문에 내가 내 삶에 정면으로 맞서는 게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지는 태도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힘든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평생 살아선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일을 하다 여의도 한 병원 앞 gs 편의점에서 내일부터 일을 해도 좋다고 연락이 와서 저에겐 나름 이제 안정적인 수입기반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물론 야간 새벽 아침 알바라 힘들긴 하겠지만 계획을 세우고 점차 이 어두운 굴레에서 조금 벗어날 희망이 생긴 것 같아 기뻤습니다. 편의점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바로 제가 일하는 편의점에서 밥다운 밥, 그동안 진열하면서 너무 먹고 싶었던 삼겹살 김밥을 바코드 찍고 제 카드로 결제해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동안 잊혔던 미각이 하나하나 깨어나는 맛이었고 그때 느꼈던 감사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참 맛있고 감사하게 먹었던 생각이 나네요.
그리고 이때부터 무엇을 해 나가야 할지 생각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에 아무리 막을 수 없는 흐름에 의해 내가 실패를 맛보더라도 스스로의 능력을 통해 해나가는 일이라면 굶어죽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되어 고민하던 중 어려서부터 좋아하던 외국어를 해보며 살아가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여러 고민을 거쳐 회사에 있을 때 난징에서 거래를 성사한 경험을 가지고 있어 중국어로 정하였고 통대 입시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회기역에서 여의도까지 출근해 저녁-새벽-아침까지 편의점 일을 하고 아침에는 아침반 수업, 낮엔 스터디 및 복습 숙제, 2시간 정도 자고 다시 출근 이런 일상을 반복하였습니다.
현대 기업 故 정주영 회장은 "4시간만 자고 일한다는 사람은 거짓말쟁이다"라고 한 적이 있다는데 저의 체력을 과시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가 그렇게 나왔을 뿐입니다. 물론 뇌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했고 틈만나면 졸았습니다. 몸에 정말 무리가 많이 갔습니다. 목표를 위해선 커피를 마시든 뺨을 때리든 어쩔 수 없었습니다. 꼭 목표를 이뤄 일단 이 어두운 순간으로부터 한 발짝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면 부족 영양부족 과로에 정말 몸에 무리가 많이 갔고 어쩔 수 없이 직종을 바꿀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는 배달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평생 오토바이는 타본적이 없었지만 그때 당시엔 그게 최선이라 생각했습니다.그렇게 일반 대행 배달 사무실에 들어가 일을 시작해 공부했고 합격하여 지금까지 일하며 번역 업무/학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제가 굳이 앞서 드리는 이유는 여러분들도 저마다 어려움이 있어 주저하실 수 있겠지만 제 경험을 보고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어서 쓴 것입니다. 통대 입시가 아무리 어렵다 해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이고 이 글을 쓰는 저도 그리고 이 글을 보는 여러분 모두 사람이기 때문에 못할 것 없다는 용기를 드리고 싶어서 쓰기도 했습니다. 통대 입시가 무슨 세상을 구하는 위대한 일도 아니고요. 그냥 사람들이 하는 많은 일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본인의 삶에서 주도적으로 질문을 던져보고
그게 옳다고 생각하며 그 결과가 실패로 끝나든 성공으로 마무리가 되든 그 결과에 온전히 스스로가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결심이 섰다면, 그리고 그 일이 남을 해치는 일이 아니라면 지금 바로 시작하시길 추천드립니다. 그 과정에서 가족과 멀어질 수도 친구와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결과로 증명할 때까지 온전히 스스로 외롭게 나아가야 할 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세상 무슨 일을 하든, 또 무언가를 이루고자 한다면 이런 과정은 필연 따라온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렇게 보면 뭐 하러 그렇게까지 살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고 봅니다. 사실 삶과 자신의 선택엔 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도 의미가 없고 우리도 무슨 의미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저 의미를 부여할 뿐이죠, 자연의 섭리, 신의 뜻이 있다고 한들 유한한 인간의 지능으로 모든것을 이해하는데는 무리가 있습니다.그리고 삶에 의미가 본래 없기 때문에 그 의미를 찾아 스스로 부여해야만 진정으로 그 의미가 생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작에 앞서 이 길에 본인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나아갈 것인지를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위해 남들이 보기에 바보 같을 정도로 진지하게, 최선을 다할 준비가 되었는지 먼저 자문해보시길 권합니다. 이러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시작한다면 무슨 일을 해도 해 나가는 과정에서 허무하고, 무료하며, 무기력해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30초반에 어려운 환경속에서 시작해 30중반이 되어서야 합격하였습니다(어려보이지만 나이가 많아요 ㅜㅠ). 너무 늦은 것도, 너무 나쁜 환경도 모두 내 마음과 의지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무슨 일을 하시든 그 속에서 의미와 가치를 잘 생각해보고 찾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모두 함께 열심히 노력해 더 나은,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가길 희망합니다.
글을 쓰다 보니 정말 별것도 아닌 놈이 무슨 위인전 주인공이 된 것 마냥 글을 써 내려간 것 같아 화끈거리긴 하지만 본인이 나름 이뤘던 경험을 공유하다 보면 그런 부분은 감안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ㅋㅋ
이제 본격적으로 입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