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나발레 특별전 Parisiennes citoyennes!
Parisiennes citoyennes! (파리지엔, 여성 시민들)
백인 남성이 주도해 온 문명의 역사 속에서 관념의 경계를 넘어 투쟁한 그녀들의 이야기. 지나치게 성별을 분리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페미니즘은 남성을 배제한 채 논의될 수 없는 개념이다. 남성들이 여성과 함께 어우러져야 존립할 수 있는 생각이며 움직임이다. 인류의 역사 내내 여성은 열등 시민으로 낙인 되어 살아왔지만 때로는 별다른 이유 없이 혐오받는 페미니즘이 언급되기 시작한 건 고작 백 년 남짓한 시간에 불과하다.
파리 역사 박물관 까르나발레는 지난 2022년 9월부터 ‘파리지엔, 시투와이엔(Parisiennes citoyennes, 파리지엔, 여성 시민들)’라는 특별전을 운영 중이다. 시민으로서의 여성 투쟁 역사를 보여주는 일종의 기록물 나열이고, 무료가 아님에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달 말이면 종료되는 이 전시를 보러 비 내리는 날 프로모션 친구 두 명과 부랴부랴 다녀왔다. 학기 바캉스까지 겹쳐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매 30분 단위로 입장객을 제한하는 사전 예약 전시임에도 인파에 밀려 느긋함은 포기하고 관람했다.
페미니즘이 발현하기 시작한 19세기말부터 본격적인 투쟁의 20세기 초, 그리고 지금까지도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여성 시민으로서의 기록들. 이 활동이 사그라들지 않고 꾸준하다는 사실은 감격적이지만, 결국 아직도 바뀌어야 ‘만’ 할 것들이 차고 넘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벅차오름과 여전히 막막한 마음이 관람 내내 공존하며 어수선했지만 쉽게 볼 수 없는 사료들 덕분에 즐겁기도 한 복합적인 전시였다.
라벤스브뤼크 수용소로 보내졌다 살아 돌아온 레지스탕스 활동가 르네 알트쾨르 Renée Haultecoeur가 파리 시민으로서 투표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
파리지엔(을 비롯 모든 프랑스 여성, Française 프랑세즈 )들이 겪어 온 믿을 수 없는 불평등 역사 중 가장 충격적인 사례를 말하고 싶다. 물론 내 기준일 뿐이지만, 프랑스인이 아닌 다른 국적의 친구들은 모두 놀라워 한 이곳의 규범이다. 여성이 바지를 착용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으로 법으로 제정되어 있었으며, 미혼 여성은 아버지, 기혼 여성은 남편의 동의가 있어야 운전면허를 획득하고 은행 계좌를 열 수 있었다. 프랑스 여성은 의복의 자유, 이동의 자유, 경제적 자유가 제한되었다. 이는 68혁명의 시대, 1960년대까지 유지되었다는 게 난 아직도 믿을 수가 없다. 미개에 가까운 불평등을 유행 지난 농담처럼 웃으며 입 밖으로 뱉어내는 프랑세(Français, 프랑스 남자)에게 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머리가 멍해진다. 종종 마주한 우리의 엄마 뻘인 그 시절을 보낸 프랑세즈들도 ‘그땐 그랬지’ 하고 웃어넘겼다. 이 말도 안 되는 규범은 혁명과 다양한 문화유산을 가진 나라라는 진보적 이미지만 갖고 있던 외국인들이나 배신감을 느낄 뿐, 그렇게 살아온 살아온 그들에게는 추억의 파편 같은 거다.
파리의 지린내 나는 지하철, 길거리의 개똥과 쥐, 몸으로 와닿는 더러움 보다 더 괴롭던 ‘파리(프랑스) 증후군’이었다. 당시 나는 프랑스 도착한 지 2년 차의 초짜(?) 외국인이었으니까. 충격을 넘어 내게 휴머니즘 개념을 완전히 무너트린 사실이다.
프랑스 여자들이 할 수 없는 것
투표권 행사, 여권 발급, 주식 거래, 고위 공무원, 남편 허락 없이 집을 떠나는 것, 남성처럼 옷 입는 것, 재판관 되기. 하지만 기요틴에 세워지는 건 할 수 있지...
오데트의 사진만평 중
전시를 보며 알게 되었는데, 프랑스의 여성 투표권도 50년여를 투쟁해서 겨우 1945년에서야 획득할 수 있었고, 프랑스혁명 이후 초기 공교육도 남자아이들에게만 열렸었다. 한 세기가 지나고서야 비로소 여자아이들도 입학할 수 있었다니. 승자의 기록뿐인 역사 속에 모여진 가냘픈 목소리들의 절박함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이 전시는 시민으로서 지금은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것에 대한 그녀들의 투지의 기록들이다.
문명의 주체라며 으스대고, 다른 민족을 은근히 업신여기는 오묘한 태도는 그들에게 일상에 새겨져 있다. 하지만 내가 태어나고 자란 극동의 반도국에서는 적어도 역사상 첫 투표, 첫 공교육은 남녀로 구분하지 않았다. 누가 미개하고 누가 야만스러운가.
페미니즘, 여성 권리 운동은 짧은 역사일지라도 선배들의 노력을 바탕으로 지금의 자매들은 쉬지 않고 의문을 던지고 꿈틀거리며 해결책을 찾아가고 있다. 그러한 지금, 여러 분야의 노력들을 보여주며 전시는 끝이 난다. 비록 프랑세즈는 아니어도 프랑스에 사는 외지인으로서, 여성이라고 주눅 들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