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2-4시 나은글방에서 글을 씁니다.
어디든 봄이면 꽃이 많겠지. 하지만 꽃시장은 조금 달라. 일단 차를 타고 가야해. 큰 도로와 건물이 드문드문해지면 붉은 글씨로 ‘꽃’ 한글자만 써진 비닐하우스 꽃시장이 늘어져있지. 난초향이 가득한 꽃시장을 좋아하지 않아서 나는 별로 흥이 나지 않았어. 대신 자동차 뒷자석에서 일기장에 날씨를 적당히 그려넣었어. 내일이 개학인데, 일기가 밀려있어서 약간 초조했어. 나는 비밀 일기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가 볼 일기장에는 날씨를 적지 않았으니까 6월 15일은 흐림 이렇게 지어내야만 했지.
난초는 아빠의 취향이지. 키우기도 쉽지 않고 물도 조금만 줘야 하는 식물. 화려하고 강한 향을 내는 식물. 내가 돌보는 시간보다 그냥 그대로 둬야 하는 게 긴 오브제 같은 것. 내가 좋아하는 식물은 손으로 툭 건들면 오그라드는 미모사, 부들부들한 레몬향이 나는 율마, 입을 다물지 않는 식충식물과 물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부레옥잠, 꽃들이 하나의 꽃처럼 피는 수국이었어.
폭신폭신한 인조 잔디길로 비닐하우스를 헤매며 이름도 모습도 낯선 식물들을 보면서 나는 식물의 이름표를 모두 뽑아버리고 싶었어. 아무도 율마를 율마인지 모른다면, 율마는 없는 걸까? 율마가 아니라 다르게 부르면 달라지는 걸까? 나는 율마를 강아지처럼 쓰다듬어서 손에 밴 레몬향을 킁킁거렸어.
겨울이 지나고 우리는 꽃시장에 가지 않았어. 식물은 아무도 돌보지 않았어. 잊힌 식물들은 겨울에는 하얗게 얼었고 봄이면 다시 초록색의 싹이 났어. “이게 죽은 줄 알았는데 봄이 되니까 다시 나오네.” 엄마가 산 식물을 다시 따뜻한 집 안으로 들어왔을 때, 나는 조금 안심하면서 학교를 다녔어.
지상을 달리는 기차에서 벽에 길게 늘어진 가지들이 보였어. 앙상한 가지들이었지만 죽은 건 아니었지. 살아있는 식물이었어. 나는 저게 뭘까, 숨을 몰아쉬면서 생각했어. 가지에 꽃망울이 맺히고 펑 터진 날에야만 그게 개나리인 걸 알게 됐어. 잎은 꽃이 다 떨어질 때쯤 무성해지더라.
아주 익숙하고 친근한 노란 개나리. 하지만 꽃이 피기 전에는 네가 개나리인 줄 몰랐어. 꽃이 피기 전에 너는 개나리가 아닌걸까? 이렇게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운동화 끈을 굳게 매고 다시 뛸 준비를 했지. 다음에 올 전철을 생각해서 도착 시간을 계산하는 대신
개나리 노란 꽃그늘 아래
가지런히 놓여있는 꼬까신 하나
아가는 사알짝 신 벗어 놓고
맨발로 한들한들 나들이갔나.
가지런히 놓여있는 꼬까신 하나.
이렇게 노래를 입안에서 흥얼거리면서. 그러게, 아기는 신도 벗고 어디로 갔으려나.
글감: 운동화
2022.01.1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