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랑이 Nov 27. 2022

애들도 포기해버린 선거공약

학강초 자치회 1기의 이야기


어떤 종류의 선거든지, 선거를 하고 나면 따라오는 필수적인 아이가 있다. 바로 선거 공약


일반적으로 국회의원이나 구, 시의원들은 공약 달성률이 보통 50-60% 정도라고 한다. 아무래도 그 직이 되고 나서 막상 상황에 닥쳐서 자기가 무언가를 바꾸려고 할 땐 현실적인 어려움에 많이 부딪힐 것이다. 그런 것처럼 아이들의 학생회장 공약도 그런 경우가 굉장히 많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아이들은 특별히 예산을 생각하거나 상황을 생각해서 공약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이런 게 있으면 재미있겠다!'인 경우가 많아서 무턱대고 공약을 받으면 달성이 어려운 경우가 무척 많았다. 2019년엔 그냥 공약을 받다 보니 공약 숫자도 어마어마했고 대부분 달성하기 매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아이들 수준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도 분명 있었다.


우리 회장님 공대여 사업


우리 회장님 (당시 아이의 별명이었다. 모든 아이들이 그 아이를 회장님이라고 불렀다.)은 정말 나중에 큰 사람이 되겠구나 라는 아이였다. 당시 회장이 되기 위해 낸 공약이 체육대회 실시, 공 대여사업, 칫솔소독기의 반마다 설치였다. 이 것을 위해서 그 아이는 아이들에게 자체적으로 설문조사를 했고, 실제로 이게 수행이 가능한지 선거 전에 자치 담당자인 나에게 와서  

"제가 이런 공약을 낼 건데, 이 정도 예산이 학생회에 있나요?"라는 걸 문의하기도 했다. 또한 자기가 생각하는 교실에 비치할 칫솔소독기의 모델들도 가져와서 올해 예산에서 안된다면, 내년 예산에서 수행하면 될 것 같다는 이야기까지 해서 이것이 공약을 실천하는 자세구나! 라며 나를 깨닫게 만든 아이 중 하나였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지만, 내가 학생회를 막 맡았던 당시 학교 선거공약은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선거 이후에 유권자였던 아이들도 잊어버리고, 심지어 당선된 아이들도 잊어버리곤 했다.

"부회장아, 너 선거공약 뭐였지?"

"어... 모르겠는데요? 선생님, 제가 낸 종이에 있지 않아요?"

라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우리 회장님은 회의 때 자신의 공약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걸 어떻게 실천하면 좋을지 대의원회의 안건으로 가져왔다. 사실 체육대회는 1회성 적인 행사였고 칫솔소독기는 당장의 예산으로 불가능한 터라 지속 가능하게 해야 하는 공약 중 하나는 바로 공 대여사업이었다. 많은 학교들이 그러겠지만,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보통 축구공을 가지고 다니기도 했지만 부분은 공이 없어서 공놀이를 포기하곤 했다. 회장님은 그런 아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축구공, 피구공 등을 빌려줄 수 있는 공 대여사업을 해야 한다고 하셨고, 나는 그것을 위해서 아이들이 움직이기 가볍고 보관이 쉬운 공 보관함과 공을 구입했다. 대의원회의에서 아이들은 그냥 두었다가는 공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으므로, 공 대여자는 장부를 작성하게 했고, 대의원들이 순번을 정해서 중간놀이시간마다 운동장으로 나가기로 했으며 공대여함에 비밀번호를 설정할 수 있는 자물쇠를 걸었다.

  

 여함은 이동이 간단했지만, 4층의 학생회 실에서 매번 내리기는 어려워서, 교무실에 비치했다. 덕분에 아이들이 매일 와서 공 대여사업을 잘 진행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다만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호기롭게, 매일 공을 내놓겠다며, 점심시간에도 내놓겠다던 아이들은 점점 지쳐갔다.




선거공약 지키기 너무 어려워!


공대여장부를 쓰지 않고 가져가서 공 하나 때문에 친구랑 싸웠다는 아이도 등장했고, 공을 빌려가 놓고 뻥 차 버리고 나서 반납을 안 하는 친구들 때문에 공 찾아다니느라 수업에 늦은 아이들도 나왔다. 또한 대의원 중에서는 의욕 및 개인 사정이 달랐기 때문에 아무래도 열심히 안 하는 아이들도 나왔다.

"선생님! 공대여를 왜 안 해요?!" 하면서 씩씩거리며 교무실로 찾아온 학생도 있었다. 알고 보니 공대여 사업의 단골고객이었는데, 그 주 담당이었던 아이가 자기도 놀고 싶어서 중간놀이시간에 공대여를 며칠간 안 해서 참다 참다 화가 나서 찾아온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그 대의원을 불러다가 하기로 한 일은 하자.라고 설득했고 대의원 아이는 입이 댓 발 나와서 자신의 소중한 중간놀이시간을 할애해서 공 대여함을 드르륵드르륵 끌고 나갔다.


많은 아이들이 회장님을 뽑아주었고, 회장의 공약을 학생회에서 실천을 하는데, 아무래도 잡음이 계속 들리니 이게 공약 실천의 어려움인가 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학생회 아이들에게 고생한다며 회의 때 간식도 사줘보고, 달래보기도 했지만 지속 가능한 사업을 한다는 건 좀 힘들었다. 회장도 학생회 친구들과 일반 친구들 사이에서 종종 갈등이 있는 듯했다. 나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거나 힘들다고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지만,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회장도 공 대여 사업으로 지쳐가는 듯했다.


그러던 중, 출장으로 인해 내가 학생회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일이 생겼다. 금까지 회의를 할 때도 나는 사실 거의 뒤에 서있고, 아이들이 회의를 진행했었다. 그래서 나는 큰 고민 없이 장과 부회장에게 회의록을 넘겨주면서, 오늘 회의를 잘하고 회의록을 써오라고 이야기한 후 출장을 나갔다.

그러고 나서 다음날

내 책상 위에 놓은 회의록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학생회 내 자체 안건으로 "공 대여 사업을 중단하자."라는 의견이 나왔고, 이미 몇 달 동안 힘들었던 대의원들은 그것에 대해서 적극 찬성하며 모두 중단을 하기로 결정했다는 점이었다. 회장은 자기가 막아보려고 했지만, 이미 애들이 너무 힘들어해서 역부족이었다면서 기운 없는 목소리로 그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 아이가 이렇게 결정된 것을 나름 홀가분해한다는 것도 느꼈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새삼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것의 쉬움과 그것을 지켜나가는 것의 어려움을 새삼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내가 학생회 아이들을 불러다가 [혼]을 내고, 앞으로도 무조건 하라고 할 순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는 게 과연 학생회를 잘 이끌어나가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 역시 들었기 때문에 섣불리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나는 학생회 회의 날 지난번 회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결정이 난 게 놀라웠고, 앞으로는 한번 결정한 사항은 최소 1학기 (5개월)은 지속해보고 그 이후에 평가회를 개최하여 지속 여부와 바꿔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였다.


그 이후 학교 내에선 수 없이 많은 공약이 나왔고, 그 공약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들이 있었다. 나는 3년간 학생회를 시작할 때 저 이야기를 해주면서, 공약이라는 것은 너희가 하기 힘들다고 그만하면 안 되고, 학생들과의 약속이므로 어떻게든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잘 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었다. 일회 성적으로 해보고 사라진 공약도 있고, 한번 나온 공약을 2년 넘게 지속하고 있는 것도 있다. 그러는 한편, 3개월도 지속 못하고 지금도 학생회 실 한쪽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공 대여함을 볼 때마다 그때가 생각이 난다.


이렇게 약속 지키는 게 참 힘들다. 애들아.


매거진의 이전글 토론회, 망해도 해봐야 망할 수 있잖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