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깃발 아래

by 이윤수

외국에서 등산여행 관련 일을 하다 보니 외진 곳의 숙소에서 묵을 때가 많다. 그런데 이렇게 먼 나라 시골의 호텔 방에 설치된 TV가 대부분 삼성이나 LG인 경우가 많아 내가 예전에 삼성에서 근무했던 일이 생각나서 사뭇 감개가 무량하다. 내가 삼성전기에서 처음 일을 할 때만 해도 한국의 자본과 기술력이 형편없어서 일본 마쓰시다 전자의 기계를 들여다가 일본 부품을 사서 일본인 기술자의 지도를 받으며 제품을 조립해서 완성품을 수출하는 것이 많았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이 어느 날 밤 수원 공장에서 불량품이 쏟아져 나오는 데 그 원인을 몰라 숙소에서 자고 있는 일본인 기술자를 불러서 급하게 해결을 한 일이다. 그때 젊은 혈기와 애국심에 넘치던 나는 한편으로는 도움을 주는 일본이 고마우면서도 걸핏하면 연장근무와 철야 근무를 하는 여공들의 고생이 제대로 대가를 못 받고 알짜 수익은 일본이 챙긴다는 억울함에 언젠가는 우리도 노력해서 반드시 일본을 따라잡으리라고 다짐을 했었다.

사실 그랬다. 그때 우리는 단순히 돈을 벌려고 일을 하지는 않았다. 신입사원 연수 때 아침마다 용인 연수원 운동장을 돌며 그리고 전국의 삼성 사업장에서 현장 실습을 하며 부르던 '삼성의 깃발아래 새 역사의 바퀴를 떠밀고 나가자'던 사명감과 경제개발로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애국심으로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밤낮으로 주말에도 미친 듯이 일을 했다. 그러다 보니 토요일 밤늦게 퇴근을 하다가 난생 처음 현기증을 느껴보기도 하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밀린 업무처리를 한다고 야근을 해서 새벽에 잠깐 옷 갈아입으러 집에 갔더니 아내가 밥상을 차려놓고 밤새 기다리다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를 보고 눈물을 뚝 떨구던 그 미안한 순간도 잊을 수가 없다.

이렇게 직원들도 열심이었지만 삼성이라는 조직과 문화도 이를 뒷받침해주기도 했다. 우선 신입사원 선발 때에도 (관상가가 면접을 보좌한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사실인지는 모르겠고 아무튼) 아무런 배경도 없고 유명대학 출신도 아닌 나 같은 사람이 뽑힌 걸 보면 학벌이나 지역보다는 능력과 열정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처음 배치를 받은 현장에서도 사장에서부터 부장, 사원, 라인 여직원까지 모두 같은 작업복을 입고 같은 식판을 들고 같이 줄을 서서 배식을 받아서 같은 테이블에 선착순으로 앉아서 밥을 먹었는데 식사의 질도 나쁘지 않았고 원한다면 아침, 점심, 저녁 모두를 회사 식당에서 먹을 수 있었고 기숙사도 있어서 시골 출신인 나는 그런 점도 좋았다. 한마디로 아무 걱정 없이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분위기였다.

또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는 그 해 입사한 대졸 신입사원 10명 중 1명을 서울 사무소로 발령하고 9명은 수원공장으로 발령해야 한다며 지원을 하라고 해서 나는 수원을 지원하고 다른 동기들은 모두 서울을 지원했는데 결과는 거꾸로 내가 서울로 나고 나머지는 수원으로 발령이 난 것이었다. 그래서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동기들이 인사과장을 찾아갔더니 과장이 하는 말이 "아니 그럼 내가 9명 중에 누구 1명을 서울로 선발하리? 그러면 나머지 8명이 불만일 거 아니야? 하지만 지금은 10명 모두가 원치 않는 곳에 발령이 났으니 이게 제일 공평하지 않니?"였다. 우리는 아무 대꾸도 못하고 돌아섰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만큼 인사도 투명했던 것 같았다.

아무튼 세상 일이 대부분 뜻과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듯이 나도 이렇게 해서 우연히 얼떨결에 서울 사무실 외환관리과에 배치를 받았는데 다시 돌이켜보면 이것도 내게는 엄청난 행운이었다. 사실 그 자리는 미국에서 MBA 정도는 해야 갈 수 있는 인기 직인 외환 딜러 직이었고 삼성 전략기획실의 알짜 정보도 좀 접할 수 있는 엄청난 자리였는데 (나중에 눈치 빠른 옆 부서의 홍 대리는 그 정보로 1차 IT 버블 때 새롬 정보통신에 투자해서 거액을 벌기도 했다) 내 전임이 외국은행으로 스카우트가 되어서 갑자기 사직을 하는 바람에 나 같은 시골 촌놈이 끌려가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외환 과장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실무책임을 맡기고 고졸직원들도 나를 무시하지 않고 업무에 협조적이었다. 그래서 수출대금 회수시간 단축과 선물환, 스왑 등 선진 금융 기법 도입을 이용한 해외 자금조달 등으로 불과 일 년 만에 수십억 원의 이익을 창출하는 성과를 낼 수가 있었다. 다음 해에는 깐깐한 외환관리법과 해외투자 허가절차를 뚫고 삼성전기 최초의 해외사무소인 삼성재팬 설립에도 성공하여 우리 과장을 초대 소장으로 보내드리고 나도 홍콩과 필리핀에 연수를 갈 기회도 얻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이 외환 쪽에서는 후진국이라 내가 계속 그 일을 했더라면 배우는 것과 경험할 기회도 더 많았을 텐데 어느 날 아침 우연히 신문에 난 교사모집 광고를 보고 '아참 내 어릴 때 꿈이 교사가 되는 것이었지'하는 생각에 갑자기 이직을 하게 된 것이 좀 아쉽긴 하다. 그 결정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 같이 일하던 동료가 이제는 외국투자 전문가로 성장하여 최근에 '해외사업 디벨로퍼의 세계'라는 책을 낸 것을 보고 그동안 한국 기업들의 눈부신 세계화 실적들을 감안하면 어쩌면 나도 그 분야에서 더 큰일을 할 수도 있었겠다 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하긴 나도 한몫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로 내가 학교로 이직하기 직전에 우리 부장님이 미국 출장을 다녀오시더니 갑자기 '우리 MLCC 사업을 해야겠다.'며 TF를 꾸리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그 다층기판이란 게 무언지도 몰랐지만 지금은 삼성전기가 세계최고의 기술력을 가지고 반도체와 더불어 전자산업의 쌀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여 4조 원 이상의 연간 매출과 수천억의 순이익을 창출하는 효자품목이 되었다. 아무튼 그때는 MLCC가 중소기업 고유 업종으로 분류되어 있는 규제 때문에 삼성은 사업을 시작할 수도 없었는데, 미래를 보면 반드시 대규모 투자로 기술개발을 해야겠고 영세 중소기업 하청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난제를 해결하는 것이 내 퇴사 전 마지막 과제였다. 법을 당장 바꿀 수는 없으니 정부를 설득하여 고유 업종 변경을 할 때까지는 우선 비자금을 조성하여 현금으로 청주에 있는 한 중소기업을 실질적으로 인수하는 우회와 편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런 내 행태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지금 생각해도 아니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여 한국 경제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한 것이 더욱더 자랑스럽다.

사실 삼성 같은 대기업과 소위 재벌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시각은 참 모순적인 면이 많다. 외국에서 기아나 현대 같은 차가 많이 팔리고 삼성과 LG 같은 전자제품이 최고급 제품이 되었고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아져서 방탄소년단의 한국 노래나 한국 문화가 인기를 얻는 경제적 배경이 된 것은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또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끌어 수많은 하청업체와 직원들을 지탱하고 한국의 국가재정, 수출과 GDP의 절반 이상, 사실상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기업의 낙수혜택을 누리며 대기업에 입사하기를 바라고 또 국민 상당수가 대기업의 주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기업주를 부패하다고 비난하고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서민을 착취한다고 욕을 한다. 이 같은 한국 대기업 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일부 대기업 소유주의 비리가 언론의 주목을 받은 면도 있겠지만 이론적으로는 아마도 송건호 등이 펴낸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읽은 이들과 경제학계의 소위 '학현학파', 그리고 자칭 재벌사냥꾼이라는 김상조 등이 득세를 한 영향이 클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상업 자본이든 산업자본이든 금융자본이든 그 자본이 형성되던 시기와 과정에서 산업 구조 개편과 기술발전, 기계화 및 자동화와 노동인력 수요 변화 등으로 기존 경제체제에서 살아가던 농민과 노동자와 서민들이 일부 희생이 되는 것은 피할 수가 없었고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그 부작용이 크다고 해서 자본주의 체제의 효율성과 기술진보가 낳은 경제성장 그리고 그에 따른 근대 자유 민주 시민 국가 사회 체계 성립과 보편적 교육, 복지, 인권, 문화, 의료, 여가생활의 확대 발전과 전반적인 삶의 질 개선 등 서구 선진 문명 주류의 성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 또한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와 타락 그리고 계획경제를 강행하기 위해 필수적인 일당독재의 압제와 악행과 폭력성을 반면교사로 보아도 이는 논쟁의 여지가 없이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현 체제에 대한 점진적 개선이 아닌 전면 부정을 하는 이들이 상당한 것은 참 의아한데 사실 해외에서는 주주들과 스톡옵션의 이해관계, 그리고 노조와 여론 눈치 보기 등 때문에 임시변통과 단기적 이익실현에 열중하는 소위 전문경영인 체제보다 일본과 한국의 대기업 집단(소위 재벌)의 소유주들과 중국의 국영기업이 더 장기적 투자와 경영에 유리한 결정을 내리고 힘 있게 실천함으로써 이 세 나라의 경제발전에 유리했고 후발주자로서 서구 선진 경제대국들을 따라잡는데 한 역할을 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으며 실제로 Walmart, Ikea, BMW, Cargill 등 많은 대기업이 기업 공개조차 하지 않고 가족기업으로 장기간 번성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또한 나 개인적으로는 일본 경제의 몰락원인이 1985년 플라자합의에 따른 엔화절상과 가격 경쟁력 하락이 촉매가 되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일본 기업이 대부분 주인 없는 경영인체제로 전환하여 변화하는 세계시장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탓도 크다고 보며 저출산과 더불어서 한국이 일본의 그 경제적 부흥과 몰락의 전철까지 그대로 밟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비록 개인적 인연과 경험 때문에 조금은 객관적이지 못한 분석도 있고 정치경제학적으로 논쟁의 소지도 있지만 삼성을 포함한 대기업이 경제, 사회, 문화, 안보 등 한국의 많은 부분에 기여하는 소중한 자산이며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실체이므로 이념에 편도 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이들을 해체하고 죽이려고 하기보다는 좀 더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시각으로 개선하고 키워나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실 대기업이 없다면 당장 그리고 미래에도 한국인이 지금처럼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풍요를 누리며 살 길이 달리 거의 없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임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부디 뿔이 좀 삐뚤어졌다고 소를 때려잡는 矯角殺牛의 어리석음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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