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철로 건널목을 건너려는데 갑자기 멀리서 '빠앙'하는 경적 소리와 함께 바로 코 앞에서 빨간 점멸등이 번쩍이고 '딸달 딸랑' 경고음을 내면서 빗살무늬 차단기가 내려온다. 지나가던 자동차가 다 멈추어 서고 잠시 후 '철거덩 철커덩' 요란한 쇠바퀴 소리를 내면서 열차가 지나간다. 컨테이너가 이단으로 잔뜩 실린 객차들을 끌고 가는 화물열차다. 아마 밴쿠버 항에서 짐을 적재하여 내륙 쪽으로 운송을 하는 중인가 보다. 5년 전만 해도 한국의 컨테이너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현대상선이 망한 이후로는 중국과 덴마크 상선의 컨테이너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코로나 이후로 선가가 많이 올랐다는데 조금만 더 버텼으면 좋았을 것을... 아쉽다. 아무튼 여기 기차는 엄청나게 길어서 보통 기관차 4대에 객차 100량 정도가 연결이 되어있고 도심에서는 속도도 느려서 한 번 건널목에서 걸리면 10분 이상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성질이 급한 사람들은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어차피 우회로도 없고 또 나는 어릴 때부터 기차를 좋아해서 이렇게 가까이에서 기차를 구경할 기회가 온 것을 오히려 즐긴다. 엄청난 크기의 기차가 굉음을 내면서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그 웅장한 크기와 무게감 그리고 그 쇠덩어리가 주는 차갑지만 강력한 질감, 거기에 속도감이 더해지면 기차의 강한 에너지와 활력이 그대로 느껴져서 약간 흥분이 된다. 가까이에서 보면 무슨 군인들이 행진을 하는 것도 같고 멀리서 긴 열차가 황야를 가로질러 가는 모습은 이국적이고 낭만적인 나그네의 쓸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100 miles'라는 기차의 우수가 어린 노래를 좋아하고 기차나 비행기 같이 큰 물체가 육중하게 움직이는 장면을 보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만일 기차나 비행기가 없었다면 세상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아마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지구 반대편 먼 곳에 가보거나 이주를 해서 살지를 못하고 자기의 고향 근처에서 살다가 죽을 것이다. 그만큼 지금처럼 삶이 다채롭지는 못했을 것이고 경제적 풍요도 훨씬 덜했을 것이다.
이렇게 세상과 삶을 획기적으로 바꾼 발견과 발명은 그 외에도 참 많다. 인터넷, 스마트 폰, 삼각돛, 바퀴, 전등, 자동차, 페니실린, 증기기관, 합성섬유, 단추, 바늘 등등 아마 다 열거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데 얼마 전 하버드 대학교 학생들이 뽑은 인류 최고의 발명품은 칫솔이었다니 좀 의외이다. 하지만 치통의 고통과 치아상실이 가져오는 건강과 삶의 질 추락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선택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할 것 같다.
그리고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기술과 과학적 연구에 있어서도 왓슨의 DNA 이중나선 구조 규명, 전기 문명을 태동시킨 페러데이의 전자기학, 뉴튼과 아인슈타인의 물리학 이론, 돌턴의 원자론, 파스퇴르의 세균학과 제너의 종두 예방접종 등등 인류가 지금의 장수와 풍요와 건강을 누리게 한 눈부신 업적들이 무수히 많다.
한편 역사를 바꾼 책도 많이 있는데 그중에는 성경과 코란을 포함해서 미국 남북전쟁과 노예해방에 영향을 미친 'Uncle Tom's Cabin'과 공산주의 사상과 혁명 전파의 도화선이 된 마르크스의 '자본론', 생명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근본적 시각을 바꾼 다윈의 '종의 기원' 등을 우선 꼽을 수가 있겠다.
나 역시도 (모든 책들이 조금씩은 다 그렇겠지만 그래도) 내 가치관 형성과 삶에 결정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책들이 좀 있는데, 문제는 나중에 좀 더 성숙해서 다시 보면 그 책들이 잘못됐거나 부분적인 진실이거나 편견에 사로잡힌 면이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는 점이다. 그럼 그 책에 영향을 받은 내 삶도 미숙했고 수정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적 결론에 도달하는데 그것을 인정하기가 쉽지가 않다. 사실 나는 좀 순진해서 책 내용을 그대로 의심 없이 많이 믿었는데 지금 보면 인간의 모든 책과 이론과 제도와 존재 자체가 일시적으로 그리고 상대적으로 진실할 뿐이라는 엄청나게 중요한 사실을 좀 더 일찍 깨달았어야 했다. 물론 아직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영원한 진리라고 착각하고 완고하게 믿는 사람들에 비하면 지금이라도 '모든 것은 변화 한다'는 유일한 진리를 깨달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아무튼 그런 책 중의 하나는 클라이브 폰딩의 '녹색 세계사'이다. 인류의 역사를 환경 파괴와 관련한 문명의 흥망으로 보는 이 책을 읽는 순간 나는 눈이 번쩍 떠지는 것 같았다. 그동안 학교에서 배운 역사와는 완전히 다른 시각이었다. 이스터 섬 문명의 붕괴를 다룬 내용도 흥미로웠다. 그래서 환경운동단체에 기부도 막 하고 그랬다. 하지만 나중에 다른 논문에서 이스터 섬의 몰락이 석상 조성을 위한 환경 파괴 때문만이 아니라 그 후 백인 정착민의 목축 때문이었다며 기록을 들이미는 연구를 보고 내가 속았다고 한탄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도 끝이 아니었다. 그 후에 읽은 또 다른 책에서는 두 번째 논문을 반박하면서 목축이 아니라도 백인이 섬에 도착했을 때 이미 원주민들은 식인을 하고 절벽 동굴에 숨어 살 정도로 문명이 몰락해 있었다는 것이고 나름 설득력 있는 문헌기록을 제시해서 이번에는 그 책이 맞는 것 같았다.
아, 이쯤 되면 뭐가 옳은 건지 확신을 할 수가 없다. 나름 객관성을 갖춘 학술논문과 책도 이러한데 하물며 근거도 없는 가짜 뉴스나 선동, 영상 매체들이 난무하는 지금은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그럴수록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이 절실히 필요한데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지성은 찾기가 어렵고 오히려 영상 조작 등 속이는 기술만 더 발달하고 있어 걱정스럽다. 하긴 이런 현상이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미야자키마사카츠의 '세계사를 뒤바꾼 가짜뉴스'와 양젠예의 '과학자의 흑역사'에 따르면 마녀사냥지침서가 지식인의 인기 필독서였던 적도 있을 만큼 동서양의 역사가 이런 헛소문과 속임수에 의해서 움직여진 사례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또다시, '진리는 상대적, 일시적일 뿐만 아니라 주관적이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Michael Sandel이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정의란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추구하는 과정일 뿐이라고 했듯이, 진리도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추구하고 수정해 가는 과정 그 자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고 진리에서 멀어지지 않으려면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항상 겸손한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두번째로 나를 '속인' 다음의 책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속은 게 아니라 절대적으로 믿고 내 인생의 청년기와 돈과 정열을 바친 나와 이런 ‘순진한’ 열정을 ‘이용’하여 마침내 권력을 잡고 한국의 현대 역사를 뒤흔들고 아직도 그걸로 세상을 다 알았다고 절대적으로 믿고 행동하는 소위 386 운동권 세대와 세력의 독선과 어리석음이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그 옳고 그름에는 아직도 논쟁의 소지가 있고 민주화에 대한 功과 남한 체제 폄하의 過는 역사의 판결을 더 기다려야 하기에 여기서는 핵심적인 책만 소개하고 넘어간다.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와 '8억 인과의 대화',
송건호 등의 '해방전후사의 인식',
백낙청의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박현채의 '민족경제론'
강만길의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김영환의 '강철서신'과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이태의 '남부군'
김지하의 ‘오적‘과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등
세 번째로는 푸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과 로버트 어틀리의 '시팅불' 그리고 팔스 이스터먼의 '바람이 전하는 인디언 이야기'이다. 이 책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자연관과 전래 이야기를 소개한 책인데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고 나름 의미도 있지만 다만 그 미화한 내용이 원주민 사회의 객관적 전모라고 착각한 나의 낭만적 오류가 문제였다. 이런 책의 영향으로 (류시화가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에서 인도를 마치 정신세계의 이상향인 것처럼 묘사했듯이) 나도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삶과 정신세계가 엄청나게 고귀하고 백인들의 물질문명이 사악하고 천박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캐나다 도서관에서 Ulrich W Heisinger의 'Indian Lives' 같은 원주민들의 삶에 대한 실증적 기록을 보니 부족 간 영역분쟁에 따른 전쟁과 살인, 모욕에 대한 개인적 복수, 폭력, 음주, 절도, 샤머니즘이 만연한 미개한 수렵채집 부족사회의 전형적인 궁핍한 삶이었기에 (이 책 속에는 미대륙 원주민 중 하나가 자기 영역을 실수로 침범한 이웃 부족의 소녀를 창으로 찌르고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즐기는 장면과 아웃의 담요 하나를 훔친 일 때문에 다툼과 복수와 살인이 반복되는 사건, 경쟁적으로 재력을 과시하는 잔치로 자산을 낭비 탕진하는 서부 해안 부족 전통 등의 충격적인 목격담이 기록되어 있다.) 백인들의 법체계와 언어 농경 등 생활방식을 전파 동화하고 교육하는 것이 그 당시 ‘신실하고 합리적인’ 백인들의 가치관으로는 ‘올바른’ 선택일 수도 있었고,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 따르면 (원주민에 대해서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낭만적인 착각과 달리) 실제로는 자연 파괴와 무분별한 사냥도 만연하여서 원주민의 이주에 따라 대형 포유동물이 멸종하고 토종 말(馬)조차 사라져서 결국 백인들의 우월한 문명에 정복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의 내 생각과 판단은 또 언제 어떤 책에 의해 무엇에 의해 다시 뒤집어질지 두렵기까지 하다. 하지만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포식자들이 기다리는 살벌한 세상으로 들어가야 하듯이, 바로 알고 살기 위해서는 불확실한 진리의 세계에도 용기 있게 뛰어들어야 한다.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자 가자 이제. 진리가 숨 쉬는 자유의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