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며 배우며

by 이윤수

오늘 또 Vishal이 교장실에 불려 왔다. 이번에는 스쿨버스에서 음식물을 다른 아이에게 던지며 싸우다가 지적을 당해서 부모님 호출하고 자습실 근신처분을 받게 되었는데도 좀처럼 시정이 되지 않는다. 흥분이 된 상태로 급하게 학교로 온 어머니는 오히려 관리를 못한 기사를 탓하며 반성이나 사과는 고사하고 부당한 처분이라고 항의를 한다. 기분이 씁쓸하다. 반면에 Maria는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다 외우지 못한 나를 위해 오늘도 자진해서 출석 점검을 도와준다. 갑자기 일할 맛이 막 생긴다. 이렇게 착한 아이와 못된 아이들이 섞여 있는 것은 한국이나 외국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그래도 미워하거나 편애를 하면 안 되는 데.. 뭔가 오해가 있을 수도 있고 아직 어려서 그렇지 언젠가는 좋아질 거라고 믿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교사도 사람인지라 겉으로 표현은 안 할지라도 아무래도 마음속으로 더 이쁜 아이도 있고 화가 나는 아이도 있을 수밖에 없다.

사실 대다수 교사들은 단순히 가르치고 월급을 받는 직장인을 넘어서서 자신이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고 학생들의 삶과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마치 많은 부모들이 자식의 성공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원하듯이 교사들도 자랑스럽고 훌륭한 제자들을 배출해서 교직의 성취와 보람을 찾고 싶은 은밀한(?) 소망도 가지고 있다.

나 역시도 교단에 있을 때 수업과 학생지도에 열심을 다하긴 했으나 전혀 사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어서 좋은 평가도 받고 싶고 내세울 만한 멋진 성공사례도 만들고 싶은 욕심도 좀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잘하려는 욕심이야 동기부여도 되기에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특별한 날 하루 보다도 평범한 나날이 더욱 소중하듯이) 특출한 아이 하나보다 보통 아이들 전체가 더 귀하다는 가치를 깨닫고 실천하지 못한 그 미숙함이 부끄럽게 느껴지면서, 한편 반대로 큰 성공사례도 없지만 엄청난 실패사례도 없었다는 것은 그나마 잘한 게 아닐까 하는 위안도 생긴다. 하지만 20년 교직생활에, 대단한 사건은 아닐지라도 소소하게 기억에 남은 아이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 명희(모두 가명임) 가출사건-

학기 초, 봄 햇살이 따스하게 운동장을 내리쬐던 체육대회 날, 부반장 명희가 결석을 했다. 집에 전화를 해 보니 어젯밤에 나가서 아직 안 들어왔다며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 봐 어머니도 걱정이 태산이었다. 우선 각자 수소문을 해보고 다시 연락을 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제 체육대회는 뒷전이고 반 아이들을 모아놓고 명희에 대해 아는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다그쳤다. 아무도 말은 안 하는데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정말 아는 게 없다면 아이들도 놀랄 텐데 몇 명이 고개를 숙이고 발로 땅을 툭툭 치는 것이 이미 예상을 하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중에 한 명을 따로 교무실로 불러서 물어보니 "아마, 오빠랑 있을 거예요."라고 순순히 불었다.

"오빠라고? 오빠 없는데.."

"아니 사귀는 오빠요."

"아니 중2가 오빠를 사귄다고?"

"예. 얼마 전부터 고등학교 오빠를 사귀었어요."

"그게 어느 학교 누군데?"

"무슨 공고라던데 지금은 학교 안 다녀요."

아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오빠 어디 사는지 알아?"

"몰라요."

"그럼 잘 가는 데는?"

"터미널 앞 당구장에서 명희랑 같이 한 번 만난 적은 있어요."

"그래 알았다. 명희 소식 들으면 나나 명희 엄마한테 꼭 연락해라. 바로. 알았지?"

그 후 사흘 동안 방과 후에 매일 명희 부모님과 함께 마치 형사처럼 탐문수사와 잠복근무와 정보 수집을 한 끝에 드디어 나흘 째 되는 일요일 아침에 그 '오빠'네 집을 '급습'하기로 했다.

그 집은 약간 허름한 전형적인 농가로 야트막한 담장과 철재대문을 지나 마당에서 쳐다보면 좌우로 방이 하나씩 있고 가운데 대청마루 그리고 앞으로 두 뼘 남짓 되는 툇마루가 이어져 있고 왼쪽으로 기역자로 꺾여 있는 큰 문은 아마 부엌인 것 같았다. 그리고 꽤 큼직한 창고도 하나 본채로부터 동떨어져 서 있었다. 우선 툇돌 위 어지럽게 늘려진 신발 들 중에서 자그마한 여자 신발이 하나 보였다. 어머니께 눈짓을 하니 명희 것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 다짜고짜 '명희야!'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잠시 후에 마루로 이어지는 방문이 열리더니 명희가 부스스한 차림새로 나오고 곧이어 꽤 덩치가 있는 머스마 하나가 따라 나왔다.

"가자!" 나도 조금은 기가 막히고 화가 나서 바로 신발을 신은 채로 마루로 올라가서 명희 손목을 잡아끌었다. 명희가 엉덩이를 뒤로 빼고 끌려오지 않으려고 뻗대었다. 그러자 그 '오빠'가 갑자기 부엌으로 달려 들어갔다. 순간 식칼이라도 들고 나오지 않을까 싶어 섬뜩했다. 그렇다고 체면이 있는데 도망을 칠 수도 없고 멈칫멈칫하고 있는데 다행히 그 놈이 빈손으로 부엌에서 나왔다가 이번에는 창고로 들어가서 삽을 들고 나왔다. 기세는 등등했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그래, 너는 나한테 진거야! 삽으로는 좀 다치기는 해도 죽지는 않아!'라고 생각하면서

"그래. 찍어라. 날 찍고 데려가라."

뭔 객기인지 오기인지 제대한 지도 한참인데 군인정신이 갑자기 발동한 건지 어디서 용기가 솟은 나는 뒤로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그놈 쪽으로 다가서며 목을 쭉 빼 내밀었다. 그러자 내 예상 밖 행동에 그놈이 오히려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에이 씨' 하면서 삽으로 애꿎은 툇기둥을 내리찍었다. 그러자 이 광경을 지켜보던 명희 어머니가 '아이고'하며 외마디 탄식을 하며 마당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그런데 정말 내가 놀란 것은 그 모습을 보면서 내 손을 뿌리치고 달려 나간 명희가 간 곳은 땅바닥에 앉아 있는 엄마가 아니라 그 '오빠'였고 그 곁에 붙어 서서 '어떻게 해 어떻게 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으로 '다 틀렸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명희 어머니를 부축하고 돌아섰다. 그러자 양심은 있는지 명희란 년이 쭐래 쭐래 우리를 뒤 따라 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이렇게 초년 교사 생활에 팔자에 없는 영화를 한 편 연출, 주연을 했지만 결말은 별로 좋지가 않았다. 명희는 며칠 후에 다시 가출했고, 나중에 소문으로 아이도 낳고 군대 간 '오빠'를 기다리며 시집에서 살고 있다고 들었다. 어쩌면 내가 사랑의 훼방꾼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조숙하고 얼굴도 예쁘장하고 공부도 꽤 잘하고 똑똑한 아이였는데 그렇게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게 못내 안타까웠다.

- 조폭 제자 -

아, 이 아이도 참 아깝다. 춘식이는 내가 담임을 하던 고1 때 벌써 키가 180이 되고 덩치도 산 만 했으며 과묵하고 가끔씩 씨익 하고 웃는 모습이 참 멋진 사내였다. 그런데 학기 초 면담을 하는데 "선생님 저 가끔 무단결석 조퇴를 할지도 몰라요. 별건 아니고 집안일 때문이니 걱정은 마시고 그러려니 하고 봐주세요."라는 것이었다. 좀 당돌하고 당황스러웠지만 "그래 알았다."하고 쿨하게 대답하고선 곧바로 또 뒷조사(?)에 들어갔다. 전 학교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에게서 들은 바로는 춘식이가 농사일을 하는 홀아버지와 함께 사는데 이 아버지가 평소에는 참 좋은 사람인데 술만 먹으면 행패를 부리고 괜히 시비를 걸고 물건을 부수는 등 주사가 매우 심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춘식이 어머니도 못 살아서 도망갔고 이 아버지가 말썽을 부릴 때마다 춘식이가 가서 말리고 제압(?)을 하고 해결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후 춘식이는 정말 가끔 말없이 갑자기 학교에서 사라지기도 하고 안 오기도 했지만 별 탈없이 생활을 했고 나도 그냥 출석부에 기록만 하고 모른 척해주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학업에 충실하지 못하여 성적도 부진하고 이대로 가면 대학 진학도 어려워 보이는 춘식이 사정을 끝까지 방관하기엔 좀 찜찜해서 농사일을 돕는다는 핑계로 농번기에 춘식이 집에 가서 일도 도와주며 가정방문도 하고 상황 파악을 하며 내가 개입해서 개선할 게 있나 살펴보았지만 어린 나이에 가장 역할을 하는 춘식이가 오히려 대견하고 아버지도 평소에는 너무나 멀쩡해서 딱히 뾰족한 방법이 보이지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반 학생 하나가 폭행으로 들어왔는데 보호자가 없어서 그러니 서로 지금 나와주실 수 있나요?”

부랴부랴 나가보니 춘식이와 병태 그리고 병태 어머니가 경찰관 앞에 앉아 있었다. 얼핏 보니 병태의 눈두덩이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입술도 찢어져서 퉁퉁 부어있었다. 병태 어머니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를 보자마자

“아이고 선생님. 저놈이 순 깡패 같은 놈이 우리 병태를 이렇게 두들겨 팼어요. 글쎄 “하며 춘식이에게 삿대질을 했다.

“아휴. 많이 상했네요. 들이 싸웠나요?”

“싸우긴요? 저 놈이 다짜고짜 일방적으로 때린 거래요. 우리 병태는 싸움 같은 거 할 줄 몰라요 “

“예. 자초지종은 이따가 따져보고요. 병태 병원부터 가봐야겠네요. 치료를 받아야 할 거 같아요.”

“벌써 갔다 왔어요. 전치 2주래요. 그나마 이빨이 흔들리기만 하고 빠지진 않아서 다행이래요. 아휴 저 숭한 놈이 막 돼먹어서 이래 가지고 어디 애를 학교에나 보낼 수 있겠어요?”

“예. 학교에서는 적절히 조치를 하겠습니다. 일단 경찰서에서는 데리고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담당 경찰관이 나섰다.

“조서는 다 꾸몄는데 피해자가 합의를 안 해주거나 보호자가 없으면 저 학생은 못 나갑니다.”

“아휴 합의는 무슨.. 저 놈 좀 보세요.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도 모자란 판에 지금도 기세가 등등한 거 안 보이세요. 난 합의 못해줘요. 콩밥을 먹이든 해서 버릇을 고쳐놔야 해요. 지 아비는 오늘도 고주망태가 돼서 자식이 뭘 하고 돌아다니는 줄도 모르고… 이러니 애가 뭘 배우겠어요? “

순간 춘식이가 고개를 들어 병태어머니를 노려본다. 내가 짐짓 화를 내며 춘식이 머리를 쥐어박았다.

“이놈이 뭘 잘했다고! 얼른 무릎 꿇고 사과드려.” 그러자 춘식이도 눈치가 있는지 주춤주춤 일어나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나지막하게 말을 했다. 병태 어머니는 외면을 했지만 조금 누그러진 것 같았다.

“아무튼 제가 지도를 잘못해서 죄송합니다. 다신

이런 일 없도록 단속하겠습니다. “

“아휴 선생님이 뭔 잘못이세요. 암튼 이번엔 선생님을 봐서 넘어가는데 다음에 또 그러면 절대 그냥 안 넘어갈 테니 그런 줄 알아. “

그렇게 가까스로 수습을 하고 춘식이를 데리고 나온 후 다음 날 학교에서 “왜 그랬어? “ 하니까 ”병태가 인철이를 자꾸 괴롭혀서 그랬어요. “ ”아니 네가 판사냐? 그런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을 했어야지. “

“걔는 좀 맞아야.. “

“이놈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 너 자꾸 이러면 정말 네 신세 망치는 거야.”

이렇게 훈계하고 유기정학으로 마무리를 했지만 알고 보니 비슷한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아이들 사이에서 문제가 분쟁이 있으면 춘식이가 나서서 해결을 해 주는 보안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더 이상의 문제는 없이 그렇게 그 학년을 보내고 2년 후 춘식이도 졸업을 했는데 소문에 좀 유명한 조폭조직에 바로 스카우트가 되었다고 한다. 남자로서 나라도 탐나는 아까운 놈이니 이왕에 그리 된 거 멋진 조폭이 되었기를 바라지만 영화와는 달리 현실의 조폭은 조금도 멋있지 않고 비열하고 치사하고 힘들고 잔인한 삶이란 걸 알기에 그 속에서 살아갈 춘식이를 생각하면 교사를 떠나 한 어른으로서 참 미안하다.

여담이지만 그 후 내가 친구에게 빌려 준 돈을 떼였을 때 춘식이에게 연락해서 한 번 받아내 볼까 하고 잠깐 생각을 하다가 그 속물스러움에 손사래를 치며 혼자 피식 웃었던 기억이 난다.

- 아기 주례 -

내가 나이 39에 주례를 선 일이 있다면 믿겠는가? 그 사건이 일어난 날 결혼식장의 주례와 신랑과 신부와 사회자 이렇게 4명의 나이를 다 합쳐도 100살이 되지 않았다. 하필 신랑의 아버지도 선배 교사여서 한복을 젊잖게 차려입고 흰 수염을 늘어뜨린 나이 지긋한 동네 어른들과 교장선생님들, 그리고 지역 유지들 앞에서 새파란 내가 단에 올라 주례를 보던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식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어찌나 긴장하고 정신이 없었던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주례를 의뢰받고 준비하고 마무리를 한 일은 지금도 생생하다.

사건의 시작은 신랑인 청수가 담임인 나를 너무 좋아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비교적 엄격했던 자기 아버지와는 달리 내가 평소에 학생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고 잔소리 없이 받아주고 놀고 하는 모습이 아마 청수에게는 좋게 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졸업 후 청수가 꽤 괜찮은 대학에 진학을 하긴 했는데 공교롭게도 일찍 여자 친구를 사귀고 바로 임신이 되어서 결국 서둘러 결혼을 해서 학생 부부가 되기로 한 것이었고 주례는 또 반드시 나를 세우겠다고 고집을 부렸다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 부모님과 마찰이 없지 않았음은 불 보듯 환한 일인데 나도 이미 결심과 결정을 했다는 젊은 신랑의 힘겨운 출발에 굳이 또 하나의 제동을 걸 수는 없어서 부담스러운 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청수 아버지가 좀 더 완강하게 말렸으면 내 부담은 줄어들어서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 후로 교직을 떠나서 타향살이를 하다 보니 다시 주례를 볼 일도 없어 그것이 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주례가 아니었나 싶다.

청수야 아내랑 아기랑 행복하게 잘 살아라.

- 장사 속 미술학원 -

연희는 학기 초부터 눈이 띄는 아이였다. 자그마한 키에 단정한 모습에 야무지게 생겼는데 언행도 똑 부러지게 바르고 전년도 성적도 학교에서 최 상위권이었다. 그런데 미술대 진학이 목표라면서 본 수업만 마치고 보충이나 자율학습 없이 바로 귀가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허락은 했지만 담임으로서 한 번 면담은 해야겠기에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런데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마치 초등학교 아이들 장난처럼 보였다. 그래서 연희의 그림 한 장을 가져다가 아는 선배 미술 선생님께 보여주었는데 그분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서 부모님께 연락해서 다시 한번 진로를 재고해 보라고 조심스럽게 조언을 했지만 부모님들은 미술로 성공할 수 있다고 확언하는 미술학원 선생님의 말을 확고하게 믿고 있었다. 그러니 어쩌겠나. 학원선생님 말이 맞기를 기대해 보는 수밖에 없었는데 며칠 후 교장실에서 호출이 왔다.

교장실로 들어가니 웬 손님이 와있었다.

“이 선생님 인사하세요. ㅇㅇ미술학원 원장님이세요. 학원연합회 회장님이시고요. ”

“네. 안녕하세요. 근데 무슨 일로 저를? “

“예. 선생님 반의 연희가 저희 학원에 다니는데 협조를 부탁드리려고요. 공교육을 세우려는 선생님의 열정은 잘 알겠지만 아무래도 예체능은 학교에서 지도하기가 충분치 못한 게 현실이니 아무쪼록 양해를 바랍니다. “

“예. 잘 알겠습니다. “

씁쓸한 심정으로 교장실을 나왔고 나로서는 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지켜보았는데 나중에는 결국 서울대 미대 입시에 실패하고 재수를 해서 일반계로 연세대에 진학했다고 한다. 만일 내가 그때 바로 잡았더라면 재수를 하지 않고도 바로 일반계 서울대로 갈 수 있는 재능이 있는 아이였는데 시간과 노력이 낭비된 것이 아까웠다.

아마도 미술학원에 갖다 바친 돈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그 미술학원 선생님이 혹시라도 장사 속에 그렇게 했다면 원망스럽다. 예체능계나 연예계 게임 등 좀 특이한 분야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조심을 할 일이다.

- 꼴찌 탈출 -

그 해 우리 반 꼴찌 두 명은 정말 꼴찌 같지 않았다. 겉만 보고 우등생과 꼴찌를 구별할 수야 없겠지만 보통은 딱 보면 아무래도 분위기가 차이가 나는데 성진이는 완전 성실 그 자체이고 대영이는 (실제로 좀 잘 살기도 했지만) 귀공자처럼 잘 생기고 점잖게 생긴 것이 귀티가 흘렀다. 특히 성진이는 수업시간이고 자습시간이고 심지어 쉬는 시간에도 한눈팔지 않고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는데 왜 성적은 안 나오는지 답답하고 안타까워서 팽팽 놀고도 시험을 잘 보는 머리 좋은 놈들이 얄미울 지경이었다.

그래서 두 놈을 매일 방과 후에 불러서 무료과외를 시켜보았다. 숙제도 내주고 질문도 받고 공부 방법도 지도해 주기를 한 학기를 했다. 그랬더니 학기말 성적은 꽤 올라가서 두 놈 다 꼴찌 탈출을 했다. 하지만 형평성 문제도 있고 편애가 되거나 의존성이 생길 수도 있어서 2학기 때는 과외를 중단하고 학년을 마쳤다.

그런데 한번 꼴찌 탈출을 계기로 성적이 계속 나아지기를 바라는 내 마음은 아랑곳없이 다음 힉년에서는 다시 꼴찌로 떨어지고 결국 둘 다 대학진학에 실패를 하고 말았다.

하지만 후문에 따르면 성진이는 전문대에 가서 차량장비를 하고 대영이는 아버지가 하던 갈빗집을 이어받아서 둘 다 잘 살고 있단다.

역시 행복이 성적순만은 아닌가 보다. 그래 성실하게 잘 살면 된다. 성공한 거다.

- 나는 교사요! -

보통 생각에 시골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착해서 오손도손 잘 살 것 같은데 사실은 의외로 결손가정이 많고 그 경우 대부분 성적과 생활환경도 좋지가 않다. 경아는 어머니가 도망가고 아버지도 재혼을 해서 도시로 나가버리고 연락도 끊겨서 할머니가 키우는 아이이다. 그래서 결석과 지각이 잦았는데 말로 아무리 타일러도 고쳐지지 않아서 하루는 좀 다잡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경아 집을 아는 친구 하나를 대동해서 직접 집으로 데리러 갔다.

할머니는 일하러 나가시고 경아가 아직도 혼자 방 안에 이불을 덮고 누워있었다. 방문을 여니 담배냄새가 쾌쾌하게 절어있다. 모른척하고

“ 학교 왜 안 왔어? 어디 아파?”하니까

태연하게 “차비가 없어요” 라며 멀뚱멀뚱 쳐다본다.

기가 막혀서 “알았다. 오늘은 나랑 같이 가고 내일부터는 내가 매일 차비 줄 테니까 학교 나와라“고 말 하고 아이를 데리고 학교로 왔다. 그래서 그 후로 경아는 매일 차비를 타갔는데 그래도 결석이 없어지지가 않았다. 다음날 “차비 줬는데 왜 결석했어?” 하면

“배가 고파서 붕어빵 사 먹었어요” 라는데 나도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와 의논해서 기초생활 지원 신청을 해보았더니 주민등록상 양육인인 부모 보호자가 다 생존하고 생활력도 있어서 지원이 안 된다고 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되고 차라리 없으면 더 좋다니 세상에 이런 부모가 다 있다는 게 기가 막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도 좀 지쳐서 기운이 나지는 않았지만 언제나처럼 습관적으로 집에 가서 데리고 오려는데 이번엔 내 마음을 알았는지 안 가겠다고 버텼다. 그래서 억지로 손목을 잡아끌고 대문을 나서는데 갑자기 얘가

“살려주세요”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나는 졸지에 납치범이 된 것 같아 당황스럽고 지나가던 사람들은 쳐다보고 소동이 벌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지나가던 순찰차에서 누가 내리더니 신분증을 내밀면서 “난 형사인데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요? “ 하며 나를 막아섰다. 순간 나도 질세라 주머니에서 내 교사신분증을 꺼내 보이며

“나는 교사요! “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자 그 형사가 태도가 누그러지면서

“아 그렇습니까? 그럼 제가 학교까지 모시겠습니다. “라며 차에 올랐다. 덕분에 나는 평생 처음으로 경찰의 호위를 받아봤고 경찰차에서 내리자마자 교무실로 붙잡혀 온 경아는 기가 완전히 죽어서 내 말을 기가 막히게 잘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경아는 결국엔 나중에 가출을 해서 도시로 가서 산다는데 소문만 있을 뿐 아무도 소식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 졸업생 after service -

대입전형 중에 농어촌 특별전형이란 게 있다. 농어촌의 열악한 교육환경과 형평성을 고려해서 농어촌 학교 학생들을 별도 정원으로 선발하는데 일반전형보다 비교적 커트라인이 낮다. 6년 또는 12년 거주 조건이 까다롭긴 하지만 좋은 기회일 수 있어서 우리 반에서 성적이 좋고 조건이 맞는 태수를 마음먹고 내신관리를 하고 자소서와 생기부를 챙겼다. 부모님들도 협조를 해서 결국 우리 학교 개교 후 처음으로 서울대에 합격을 시켰다. 작은 읍내에 경사가 나고 현수막이 걸리고 축제분위기였지만 나는 태수를 봐선 기쁘지만 너무 인위적으로 한 것 같아서 좀 부끄럽기도 했다.

그런데 다음 해 졸업을 하고 서울대에 다니던 태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교수님이 내 주신 과제를 도저히 못하겠어요. 좀 도와주세요. “

이런, 능력이 안 되는 아이를 억지로 집어넣어서 after service까지 해야 하겠네 하고 난감한 생각이 들었지만 도와주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그 다음 해부터는 A/S 요청이 안 왔고 무사히 서울대를 졸업하고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미국 연수도 하고 취업도 잘했다.

그러고 보니 사례들이 대부분 시골 학교 아이들이다. 아무래도 배우고 가르치는 역할에만 충실한 도시에서보다는 아직도 교사를 지역사회의 스승으로 존경해 주는 시골의 학교에서 인간적인 정을 더 많이 나눈 때문인 것 같다.

아, 어느 날 산에서 주웠다면서 토실토실한 알밤을 한 바구니 교무실로 가지고 온 해정이, 집에서 총각김치를 담았더니 맛있어서 선생님 드리고 싶다며 싸가지고 온 선자, 집 앞 개울에서 잡은 미꾸라지로 매운탕을 끓여주던 상인이….그런 순박한 아이들의 얼굴은 지금 생각해도 미소가 저절로 나오고 마음이 푸근하고 행복해진다.

고맙다 얘들아. 내가 너희들에게 가르쳐준 것보다 너희들로부터 내가 배우고 얻은 행운이 더 많은 것 같다.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모두들 행복하고 바르게 잘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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