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다양성과 유연성이 살 길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 이후 많은 사람들은 생명체의 행동과 성 선택 뒤에는 유전자가 있을 것이라고 상정하고 진화에 유리한 형질들 만이 환경에 의해서 선택되고 살아남아 후손을 남기는 것이 새로운 상식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겉으로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동들도 사실은 그 종 전체의 보존을 위해 개체를 희생하는 이기적 동기가 숨어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유전자는 아무런 계획이 없다. 유전자는 사고를 하지 않기 때문에 계획이 있을 수가 없다. 진화에 유리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우연하고 다양한 돌연변이가 일어나서 생긴 형질 중에서 환경에 적합한 것과 환경의 변화에 적응한 개체의 형질이 살아 남아 후손을 남긴 것이다. 또한 살아남은 형질이라고 해서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것 만도 아니다. 합리와 효율을 본다면 인간의 식도는 기도 뒤에 위치하고 분리되는 것이 더 좋지만 우리는 먼 조상이 우연히 가진 불편한 구조를 가지고도 그냥 또 다른 우연들 덕분에 그냥 살아남은 것이며 마이클 라이언의 '뇌는 왜 아름다움에 끌리는가'에서 연구한 long tailed widow maker bird의 사례에서 처럼 성 선택이 종의 생존에 불리한 경우도 많다. (물론 이것이 공작의 꼬리처럼 과다한 성 경쟁의 결과로써 이 역시 강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유전자의 선택이 있었다는 결론을 먼저 상정하고 이유를 끼워 맞추어 이끌어낸 강변에 불과하다)
유리해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우연히 선택을 했더니 그중 어떤 것은 생존에 불리하여 도태되고 어떤 형질은 생존에 유리하여 살아남은 것이다. 성 선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역시 마이클 라이언의 같은 책에서 관찰된 swordtail fish의 경우에서 처럼 긴 꼬리를 아름답게 보고 선택하여서 꼬리가 길어진 것이 아니라 아종이 갈라지기 이전에 이미 긴 꼬리에 대한 선호가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아종은 긴 꼬리로 진화하고 다른 아종은 짧은 꼬리로 남았다. 즉 긴 꼬리가 생존과 번식에 필수적인 것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단기간에 그 선호도가 사라진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아름다움에 대한 선호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할 수 있는 이유는 많다. 그중에서도 인간과 동식물에게서 가장 공통적이고 포괄적인 것은 '아름다움은 같은 종의 평균에 수렴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좌우 균형이 잡힌 몸매를 선호하고 여러 사람들의 얼굴을 조합한 형상을 가장 아름답게 본다는 사례에서 보듯이 이렇게 평균적인 모양과 소리를 아름답게 보고 선호하고 선택하는 것은 이종교배나 부적합한 지나친 돌연변이와의 번식에 따르는 위험을 줄이고 가장 건강한 유전자를 남기려는 본능(?)에 따른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다는 아니다. 아름다움에는 사회적 문화적 요소와 감각과 행동에 있어서의 신체적 한계 그리고 포식자와의 관계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유전자는 살아 남아 번식하기 위해서 계획적으로 유리한 것을 아름답게 보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이란 그 자체로서 존재하고 그 선호로 선택을 했더니 그 결과가 우연히 생존에 유리했으면 살아남았고 불리했으면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 불합리 속에 멋진 생존의 비밀이 숨어있다. 즉 합리적인 계획이었다면 없었을 다양성이 확보된다는 것이다. 가장 효율적인 것을 선택하려 한다면 그 결과는 단수나 소수에 수렴할 것이나 무계획적으로 선택했다면 그 결과는 무수한 다양성이 될 것이고 변화무쌍한 자연환경은 계획적인 전자보다는 비합리적인 후자에게 생존과 번영이라는 생명의 우승컵을 안겨준 것이다.
사실 '아름다움이 무엇이고 우리는 왜 아름다움에 끌리는가'라는 주제는 참 매력이 있는 의문이고 숙제인데 드디어 답을 보았다. 아름다움은 생존이든 뭐든 그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그 자체로서 존재하지만 그 결과는 역사를 바꾸고 개인의 운명과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막강한 힘을 가진 것이다. 뭔가 숭고한 목적을 기대하며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좀 허무한 결말일 수도 있으나 그래도 나는 아름다움이 그냥 그 자체로 존재하는 선호도이며 엄청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마음 편하다. 내가 예쁜 것을 사랑하고 내가 좋아하는 풍경과 소리와 감각을 그냥 적당히 즐기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