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는 여행객들이 많지 않아서 일이 좀 뜸하고 주로 학생들 행사 수송이 대부분이다. 그중에서도 아이스하키 원정 경기가 많은데 오늘은 밴드부 Festival 이 있어서 학생들과 함께 Edmonton에 왔다. 여름에는 좋은 곳으로 여행도 하고 등산도 하면서 돈을 벌지만 지금은 기다리는 동안에 경기도 보고 음악 실황 감상도 할 수 있으니 난 이 일이 참 좋다.
그런데 보다가 보니까 아이들 수준이 장난이 아니다. 이 정도 하려면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니 연습량도 많아야 하지만 진정 즐길 수 있어야 할 텐데 이처럼 예체능 교육이 활성화되어 있는 점이 내가 미국과 캐나다 교육을 볼 때 제일 부러운 점이다. 그리고 가까이에서 지켜보면 학교생활 자체도 공부에 크게 부담을 안 느끼며 수업시간에도 즐겁게 적극적으로 발표하고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어 전혀 지루할 틈이 없다. 그러니 지식 이론 경쟁 입시 중심 교육에 찌들어 있는 한국 학생들을 생각하면 미안하기까지 하다. 더욱이 한국의 학생들은 학교에서뿐만이 아니라 방과 후에도 사교육에 시달리니 그 폐해가 교육적 문제를 넘어서서 경제적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어서 답답하다.
2016년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한국의 총사교육비는 18조 원 참여율 67% 학생 1인당 연평균 307만 원 참여시간 주당 평균 6시간에 이른다. 한편 공교육비는 (2013년) 학생 1인당 695만 원으로 OECD 평균인 1376만 원의 절반 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리고 2022년 통계는 연간 학생 일인당 사교육비가 500만 원을 넘어서고 참여율도 더 높아져서 오히려 상태가 더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한국에서는 사교육이 공교육이 맡아야 할 교육의 일부분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사교육의 문제는 과중한 사교육비 부담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사교육은 그 성격상 공교육과 달리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학력에 영향을 미쳐 결국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을 어렵게 하고 부의 세습을 강화시킨다는 사회적 역기능에 더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어쨌든 사교육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그리고 학생들의 행복 추구에 문제가 많은 것에는 모두 공감하지만 그 해결책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고 정권이 수 없이 바뀌고 정책이 수 없이 바뀌어도 효과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 얼마 전 한 교수는 방송 대담에서 사교육은 입시경쟁 때문이므로 고교 졸업생이 대학 정원을 하회하는 시점에 입시와 사교육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기도 했고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수능을 절대평가로 바꾸고 특목고를 없애는 한편 자율학습과 심야 학원 운영을 규제하면 입시와 사교육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했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은 여전히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경쟁적으로 사교육에 매달리고 있다. (심지어 조국, 이희연, 김상곤 등 그런 정책을 주장하는 좌파 교육 관련 핵심인사들 마저도 사교육과 특목고를 통해서 자기 자녀들을 일류대학과 미국 유학을 보냈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사교육에 돈을 지출하는 것은 그만큼 효과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말로는 남들이 하니까 나도 뒤쳐질까 봐 안 할 수 없다고 자기변명을 하지만 진정으로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면 거기에 돈과 시간과 자녀의 행복을 희생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지금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는 자녀의 교육에 투자하는 것은 확실히 남는 장사였다. 그 이유는 70년대-90년대 고도성장기에는 교육받은 인재의 수요도 항상 있어서 대학 교육만 받으면 돈도 벌고 중산층 이상의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전통적인 효개념이 살아 있어서 그들이 출세하여 부모를 봉양했으므로 노후대책으로도 충분한 투자가 되고 자녀의 성공이 곧 자신의 인생의 성공으로 비취지는 풍토 속에서 삶의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다. 전통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변화하던 시점에 땅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보다는 그 땅을 팔아서 자녀 교육을 시키는 것이 더 현명했고 국가적으로도 경제개발에 필요한 토지와 자본, 인력 공급이 되어서 좋았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달라질 것이다. 18세기 후반의 증기기관에 의한 1차 산업혁명으로 농민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20세기 초반의 전기에 기반한 2차 산업혁명으로 단순 노동자의 일자리가 사라졌으며 1980년대 디지털 혁명으로 사무직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고 앞으로 로봇 공학, 인공 지능, 나노 기술, 생명 공학에 의한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반복작업을 하던 일자리는 사라질 것이다. 2016년 다보스포럼 연차총회가 발표한 ‘미래고용보고서’는 전 세계에서 일자리 700만 개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물론 데이터 분석 등 컴퓨터 분야에서 일자리 210만 개가 새로 만들어질 것을 감안해도 전체적으로 약 500만 개 일자리가 순감할 것이라고 보았다. 특히 로봇과 기계에 의해 대체되는 일자리는 대부분 단순 업무에 종사하는 저소득층일 가능성이 높고 전문 지식과 서비스로 무장한 개인이나 기업, 국가는 상대적으로 더 수혜를 누릴 수 있다. 결론적으로 기술과 산업의 발달은 갈수록 고도로 교육받은 소수의 사람만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처음의 1차 산업혁명 후에는 초등교육, 2차 산업혁명 후에는 고등교육, 3차 산업 혁명 후에는 대학교육 만으로 충분했지만 이제는 대학을 나와도 좋은 일자리와 삶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유교적 가치관의 붕괴와 저성장에 따른 소득감소로 자녀들이 더 이상 부모를 부양할 능력도 의지도 없게 될 것이므로 자녀의 사교육에 투자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 되는 것이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미 출산기피, YOLO족 등장, 생전 증여 회피 등 이런 추세를 반영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고는 있지만 아직도 대다수가 교육에 대한 미련은 못 버리고 있다. 이것은 사람들이 미래보다는 과거의 경험에 집착하는 경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문화적 현상은 경제적 현상보다 항상 뒤처져서 실현되는 보편적 경향 때문이다. 즉 사람들은 현실로 나타날 때까지는 과거의 관행을 버릴 용기를 쉽게 내지 못하고 뚜렷한 대안도 미래에 대한 확신도 없으므로 일단 그동안 먹혀왔고 가능성은 낮지만 여전히 성공의 확률은 남아있는 교육(사교육)에 투자를 해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변화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에는 이미 늦다. 진화의 냉혹한 현실처럼 새로운 환경변화가 일어나면 과거에 집착하며 이전의 경쟁도구를 계속 발달시키던 개체는 도태되고 완전히 새로운 특성을 가진 개체만 살아남듯이 앞으로는 지금처럼 공부를 열심히 해서 시험을 잘 치는 사람보다는 보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으며 그에 앞서서 출세보다 행복을 삶의 목표로 삼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제는 이른바 '출세'를 할 확률이 극히 낮으므로 굳이 출세를 하지 않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를 위해서는 자녀들을 사교육의 틀로 얽맬 것이 아니라 풀어 주어야만 한다. 자녀의 삶을 자신의 삶의 성패로 동일시하지 말고 각자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 경제적으로 대비를 하는 현명한 선택을 한다면 사교육보다는 자녀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자녀에게 좀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자녀 스스로 하고 싶은 활동을 하고 결정을 할 수 있게 도와주게 될 것이다.
세상에 100% 보장된 것은 없다. 신념을 가지고 용기 있게 실천하는 자만이 미래를 열어갈 수 있으며 그런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날 때 사교육을 포함한 한국의 교육문제와 무의미한 무한경쟁에 따른 폐해가 조금이라도 빨리 해결되고 한국인의 삶의 질과 행복도 개선될 것이다. 물론 쉬운 선택은 아니다. 잘못되면 남들보다 힘든 일을 하면서 평생 불안정하고 열악한 삶을 살아야 하므로 어떤 결과에도 후회 않을 개인적 결단과 사회문화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나도 개인적으로는 아이들이 원치 않는 사교육을 시키지 않았고 22년 교직생활에서도 공교육의 질과 양을 높이고 학부모의 신뢰를 얻어서 사교육 수요를 공교육으로 소화하는 것이 국가와 교육을 살리는 길이라 믿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나름 헌신을 해왔다. (그것이 학교밖에서 경쟁적인 사교육 수요는 여전한대도 당장 학교교육에서 경쟁을 멈추라는 이상주의와 부딪쳐 좌절하기도 했지만) 나를 믿고 따라서 열심히 해준 아이들을 생각하면 내 선택에 대해서는 스스로 보람을 느끼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후회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실패를 했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바꾸기 힘든 도도한 사회적 현상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고 나름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기여한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노동자와 학생들은 단순히 성장 이면의 희생자로만 볼 것이 아니라 공로자로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있다. 세상 모든 존재는 나름의 가치가 분명히 있기에 절대 전면 부정을 하면 안 된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여기 아이들이 부럽다. 한국도 분명히 이제 변화의 비람이 불 것이다. 한국의 아이들도 이 아이들처럼 깔깔대며 버스에 오르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