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과 이익

by 이윤수



뉴스를 보면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들이 참 많다. 과연 그들만 그럴까? 나는? 또 내 주변의 사람들은? 아마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크게 다르지 않으며 심지어 다람쥐나 침팬지 그리고 일부 새들도 먹이를 두고 기만행위를 한다니 이 속임수는 생존의 필요에 따라 발생한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능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니 마르크스가 허무맹랑한 공산주의 이론으로 세상에 엄청난 해악을 끼쳤지만 인간의 모든 제도를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로 나누고 정치, 사회, 문화, 교육 등의 상부구조는 하부구조인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기인한다고 본 것만은 혜안인 것 같다.

사람 아니 동물 아니 생명체를 움직이는 모든 동인은 무엇인가?

생존과 번식이다.

여기엔 옳고 그름이 없다.

인간은 다만 사회를 구성하여 살아가고 의식이 있기에 인간의 모든 이기적 행동을 용인하지 않고 법과 도덕이라는 제도로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공동체의 장기적 번성에 해가 되는 개인의 행동을 규제하고 전체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정의와 선이라고 장려해 왔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자신에게 궁극적으로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모든 선택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것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도 이로운 것이라고 정당화시킨다. 그것이 그 사람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그 집단의 이데올로기를 만든다. 그 어느 개인도 그 어느 집단도 자신(들)이 악이라고 믿으며 악행을 하진 않는다. 사기꾼도 자신이 스마트하고 속은 놈이 바보라고 믿으며 죄 없는 사람을 무차별 살해하는 테러리스트도 신의 뜻을 행한다고 믿으며 인권을 유린하는 공산독재자도 인민을 위한 폭력이라고 확신한다.

이것을 깨닫고 보니 내가 사춘기 이후 오랫동안 추구해 왔던 인간의 선한 의지와 진리의 탐구 그리고 약자를 위한 희생 같은 것들이 얼마나 무지개 같은 허상을 추구한 것이었는지 비로소 알 수가 있었다.

그래서 사람은 그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숨은 동기를 파악해야 하며 이해관계가 바뀌지 않으면 관점의 변화나 설득이 불가능한 것이다. 또한 사회는 선한 의도로 모순이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이기적 욕망을 인정하고 평화로운 힘의 균형을 보장하는 법적 정치적 제도와 문화적 관행으로 유지가 가능한 것이다.

순진한 낙관의 환상에서 벗어나 객관적 현실을 직시하는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서구의 제도 속에서 살아본 것이 한국의 이상론자들의 사회주의적 허상을 깨는 데 도움이 크게 되었다.

눈은 저 별과 하늘을 바라보되 발은 굳건히 땅을 딛고 서 있어야 한다.

자 뜬구름은 그만 잡고 이제 돈 벌러 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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