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 아파트에서 페인트 칠을 하는 사람이 듣는 음악소리가 시끄러워서 낮잠 자는데 방해된다고 화가 나서 그 사람이 매달린 밧줄을 끊어 떨어져 죽게 했다.''층간 소음 때문에 다투다가 홧김에 불을 질렀다.''놀리는 것이 화가 나서 동료 부대원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자동소총으로 조준사격해서 죽었다.'류의 분노 범죄 뉴스를 들으면 이따금씩 내 안에서 치솟아 오르는 분노가 얼마나 무섭고 위험한지 겁이 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 ' 참을 인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면서 화를 다스릴 것을 권유한다.
사실 분노는 기쁨 슬픔 두려움 즐거움 등과 함께 인간이 가진 자연스러운 감정 중의 하나인데도 불구하고 그중 가장 푸대접을 받는다. 분노는 다른 그 어떤 감정보다 위험하고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이를 억제하고 통제할 수 있으면 성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이 되고 이를 드러내거나 폭력적으로 표출하면 사회적 평판이 떨어지고 심하면 기피 대상이 된다. 이렇게 조절되지 못하고 분출된 분노는 상대방에게 정신적 물리적으로 피해를 입히며 반복되는 분노는 본인에게도 손해가 되고 억누른 분노는 화병이 되어 자신을 괴롭히기도 하기 때문에 가장 조심해야 할 감정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분노가 그 자체로서 원래부터 나쁜 작용만을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생존에 도움을 준 감정이다. 인간은 부당한 대우를 받았거나 무시를 당했다고 판단할 때,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빼앗겼을 때 그리고 궁지에 몰려있을 때 분노한다. 화가 나면 아드레날린이 분출하고 그 불합리한 상황에 맞서 싸울 힘과 용기를 얻게 된다. 만일 분노가 없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것을 빼앗기고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도 못하고 계속 빼앗기기만 하여 결국 생존이 불가능하거나 열악한 환경을 감수할 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분노는 정의의 도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원시시대에는 맹수와 적대적 부족의 침입 등 수많은 위협에 맞서 싸운 원동력이었을 것이며 역사상 많은 혁명과 반란이 집단적 분노 표출의 결과인 것을 보면 정의를 실현하고 인간의 생존을 지탱한 것은 이해득실을 따지는 합리적 판단이 아니라 불 끓는 분노였던 것이다. 그래서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분노하는 신들이 많다. 그리스 신화의 최고 신은 화가 나면 번개를 막 쏘아대고 구약성경에서도 야훼가 인간들의 잘못에 격노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며 한국의 토속 신들도 금기를 어기면 화가 나서 인간에게 해를 입히기도 한다(동티 난다고 함)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인간이 조직화된 사회를 이루고 살면서 복수가 아니라 도덕과 법률로 정의를 추구하게 되면서 이 분노가 푸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분노는 그 사람의 가치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점이다. 시기심 우울감 등도 마찬가지이지만 객관적인 상황 자체보다는 그 사람이 그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감정이 달라지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즉 사람은 궁핍하거나 빼앗겼다고 화를 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면 아무렇지도 않지만 부당하게 빼앗겼다고 판단할 때 분노한다. 이것은 고대의 노예나 봉건시대에 하층민들이 체제에 순응하며 살았던 것이나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유명한 실험에서도 그 성격이 드러난다. (두 원숭이에게 똑 같이 도토리를 주면 둘 다 불만이 없지만 아무 이유 없이 한 원숭이에게는 도토리를 주고 다른 원숭이에게는 바나나를 주면 도토리를 받은 원숭이는 화를 내며 도토리를 집어던진다.) 반면 빼앗기지 않아도 어떤 상황이나 상대방을 지배하던 동물이나 사람이 그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을 때 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을 때도 마치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빼앗기기라도 한 것처럼 화를 낸다. 결국 분노는 객관적 상황보다는 주관적 판단으로 일어나는 것이고 그 상황을 냉철하게 들여다보는 인지적 통찰로 조절이 가능하며 한편 조작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현실에 순응하던 사람들을 자극하여 폭도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은 각성되지 않은 노동자는 혁명의 동력이 될 수 없다고 본 것이고 농노와 소작농과 노동자와 소상업인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그들이 부당하게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증명하고 선동함으로써 그들의 분노를 계급의 적(자본가와 기득권자)에게 돌려서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게 조직화하려고 노력하며 그들을 이용해서 자신들도 권력을 잡으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자신들이 권력을 잡은 후에는 플로레타리아 독재라는 명분으로 스스로 기득권자가 되어 그 이전보다 더 불평등하고 비 효율적이고 폐쇄적이며 인권을 유린하는 체제를 폭력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이처럼 현대사회에서의 분노는 집단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잘 통제하지 못하면 파국적 국면을 초래하므로 그 동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잘 살펴서 언제나 이성의 통제 하에 두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특히 나쁜 분노 즉 부당한 처우의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약자를 지속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 화를 내거나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을 때 습관적으로 화를 내는 것은 가정과 사회의 평화와 정의를 해치는 절대악이 될 수 있으므로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약자의 용기 즉 정의로운 분노가 필요해진다.
아아 정녕 말은 쉽고 이루기는 어렵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고 지혜로운 노력에는 반드시 좋은 결과가 따르는 법. 마음의 불을 밝히고 자신을 살피며 정의로운 분노로 부당한 분노에 맞서 싸울 때 살기 좋은 세상은 마침내 올 것이다.
아아 욕심을 좀 줄이고 먼 곳에서 세속을 바라보니 화낼 일이 없고 몸과 마음이 편안해서 정녕 고맙고도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