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이 없이 살아가는 것은 개인에게 불행이지만 그릇된 신념은 다른 사람도 불행하게 한다.
나는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어릴 때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운동장을 바라보면 아주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누런 운동장 모래밭이 하늘처럼 펼쳐지고 아이들이 모두 그 하늘에 붙어서 뒤집혀서 뛰어다니는데 아래로 뚝뚝 떨어지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지구봉에 올라타면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시소를 타면 앞 산과 학교 건물이 오르락내리락 출렁거렸다. 사춘기에는 학교 뒷산 멧등 잔디밭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면 한 눈 가득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끝없이 펼쳐져며 가슴이 시원하게 뻥 뚫렸다. 지금도 수영장이나 바닷가에 가면 배영자세로 물 위에 둥둥 떠서 흔들리는 물결에 몸을 맡기고 하늘을 바라보면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행복감에 환희의 찬가를 부르는 것을 느낀다. 때로는 물속에 잠수하여 물 밖을 바라보면 거기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일렁이는 수면이 거울처럼 빛을 반사하면서 마치 수은이 넓게 퍼져있는 것처럼 금속 빛 광택 속에 몰 속 풍경과 물 밖 풍경이 묘하게 뒤 섞이고 그 일렁이는 색감의 변화가 신비로울 만큼 아름답다. 흐린 날에 높은 산에 올라가면 운이 좋으면 운해를 볼 수도 있다. 바람이 고요한 날엔 낮게 깔린 구름들이 하얀 바다가 되어서 이리저리 흘러 다니고 산봉우리에 부딪쳐 파도처럼 철석이기도 하고 계곡을 타고 슬금슬금 기어오른다. 비행기나 패러 글라이드를 타고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풍경은 또 색다르다. 모든 사물이 조그마하게 축소되어 사람들과 자동차와 건물과 나무 모든 것이 장난감 같고 세상 근심 걱정과 욕심이 하찮게 느껴진다. 굳이 멀리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매일 바라보는 똑같은 산과 들판과 숲과 오솔 길도 비가 올 때 아침 햇살이 비칠 때 노을이 질 때 바람이 불 때 달 빛 아래에서 그 느낌과 모습이 각각 모두 달라서 언제나 새롭다.
아침 햇살이 숲 속 나무 잎 사이로 스며들어와 동글동글 빛 방울을 만들었다가 어느새 온 산에 아카시아 향기가 달콤하게 퍼져나가고 봄이 오면 먼 산에 돋아 난 부드러운 새싹들의 애기처럼 여린 연두 빛이 어여쁘고 여름엔 들판에서 성긴 풀잎들이 쏴아아 불어오는 바람결에 물결치고 비가 내리면 싱싱한 대나무 밭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명력이 넘치는 그 푸른빛은 눈이 아니라 가슴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가을이 되어 울긋불긋 단풍이 호수 물에 비치면 기러기 떼가 물살을 가르고 헤엄치다 푸드덕 날아오르며 투명한 물을 휘저어 버리고 겨울이 되어 하얀 눈이 백양나무 가지에서 뚝뚝 떨어지면 숲 언저리에서 가만히 내다보는 사슴의 순박한 눈망울이 왠지 나를 슬프게 한다. 자연은 이처럼 내게 언제나 새로운 공연을 펼치는 극장이요 어디서나 즐거움을 주는 음악당이며 늘 설레는 미술관이다.
이런 눈의 사치 외에도 내 마음도 항상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새를 좋아하는 나는 가끔 새들에게 모이를 주기도 하는 데 언젠가 '철새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새를 죽이는 행위입니다.'라는 안내문을 보고 놀란 적이 었었다. 사람이 주는 먹이에 익숙해진 새들은 계절이 바뀌어도 이주를 안 하고 결국 죽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내가 좋은 뜻으로 한 행위가 결국은 상대방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 어디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것뿐이겠는가? 그리고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중엔 잘못인 것으로 드러난 것도 어디 하나 둘 뿐인가? IS 자살테러범도 자신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성스러운 일을 하러 간 십자군과 신대륙 선교사들도 결국엔 토착 원주민들의 삶을 파괴한 침략자들이었다. 세계 자유의 수호자라고 믿었던 베트남 참전용사는 그 민족의 자유를 유린한 범죄자가 될 수도 있었다. 내가 이북 어린이들을 돕겠다고 보낸 성금이 핵무기 개발 자금으로 흘러갔을 수도 있고 광우병과 세월호 다이빙 벨은 사실이 아니었다. 북유럽에서는 담세능력에 맞춘 적절한 복지가 국민의 평생 행복을 보장하는 반면 남미나 남유럽에서는 지나친 복지정책이 장기적으로 국가경제를 악화시켜 결국 국민의 삶을 파탄에 이르게 했다. 내가 한 때 근무했던 외국기업에서는 노동자의 임금과 복지를 높인 강한 노조활동이 결국 경영악화와 파산(철수)으로 이어져서 모두를 실업자로 만들기도 했다. 가지를 자르고 솎아주는 것이 식물을 더 건강하게 자라게 할 수도 있고 토끼를 잡아먹는 여우는 토끼의 개체수를 조절해서 토끼 전체가 먹이부족으로 멸종하는 것을 막아주고 약한 영양을 잡아먹는 치타는 결과적으로 튼튼한 영양들이 살아남아서 후세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한 아이들에게 지나친 자유를 주는 것이 아이들이 막 돼먹게 할 수 도 있는 반면 지나친 보호가 아이들을 약하게 만들 수도 있다. 대학생이 된 자녀들을 돌보겠다고 학교강당에 텐트를 치고 거주하는 중국 열성 부모들이 과연 자녀들의 삶에 진정 도움이 되겠는가? 그런 일이 중국에만 있는가? 나는 신규교사 연수장에 까지 따라와서 준비물을 챙겨주는 한국 부모들도 보았다.
일부만을 보았을 수도 있고 잘못 착각했을 수도 있다. 옳았던 것도 세월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면 더 이상 진리가 아닐 수도 있으며 언제라도 입장을 바꾸어 보면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
눈을 뜨고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사람은 (즉 나는) 옳기에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이롭기에 선택하고 선택했기에 옳다고 합리화시키는 존재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신이 아는 것만을 보는 오만과 자신 만이 옳다고 믿는 독선은 무지보다도 더 경계해야 할 악이며 폭력과 공멸로 가는 헤어날 수 없는 덫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