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를 위한 변명

by 이윤수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운 자에게는 죽음이 가져다주는 평화가 때론 더 달콤할 수도 있다. 살아가는 순간의 고통의 종류가 무엇이었든 그 크기가 얼마이었던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실연의 슬픔이든 실패의 낙담이든 수치스러운 과오이든 생활의 고달픔이든 견딜 수 없는 두려움이든 양심의 가책이든 거창한 신념이든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그 어떤 원인이든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이 오로지 혼자서 밤새 그리고 의식이 살아있는 순간순간 마주쳐야 하는 그 엄청난 무게를 감당해야 할 그로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그리고 어쩌면 나아질 거라는 희망조차 가질 수 없는 그 절망의 나락에 빠져있는 당사자에게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영원한 고문이 지속되는 감옥 아니 그야말로 생지옥이다. 그러니 그 누구도 “쯧쯧 죽을 용기로 살면 될 것을 왜 그랬을까”라는 그 흔한 말로 죽은 자를 비난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죽은 자가 겪었을 고난에 연민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를 약자로 모욕하고 어리석은 자로 폄하하는 잔인한 짓이며 그를 통해 자신의 우월을 입증하는 데 만족하는 위선이다. 하긴 어쩌면 그것이 살아있는 자의 권리이며 세상 모든 생존 게임의 승자가 누릴 수 있는 기쁨 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은 자는 죽은 자 나름대로 빠져나갈 구멍은 있다. 즉 더 이상 그 수치와 모욕과 고통을 느끼지 않을 절대 자유를 얻는 것이다. 비록 살아가는 기쁨이나 즐거움은 없겠지만 맛있는 음식의 맛을 더 이상 느낄 수도 없고 봄날 아침 산책 길의 싱그러움도 다시는 바랄 수 없고 사랑하는 이의 부드러운 미소를 볼 수도 없고 가족들과의 담소 그리고 친구들과의 취미 생활의 흥겨움도 사라질 테지만 그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면 그 행복에 대한 기대가 크면 클수록 그 상실의 고통도 클 수밖에 없기에 그만큼 그의 절망은 깊고 그래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가 모든 희망을 버리는 것뿐일 때 그때 비로소 그에게는 자유와 마음의 평화가 주어지는 것이다. 비록 씁쓸한 과실이지만 그나마 그 독사과라도 주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생각해 본 사람만이 그리고 영원한 고통과 노동을 겪어야 하는 시치프스나 프로메테우스에 비하면 끝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느껴본 자만이 죽음의 달콤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절망의 끝에서 얻는 자유는 어쩌면 살아있는 자들이 가진 그 모든 즐거움과 희망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그 찰나의 순간은 그리 오래 지속되는 것도 아니고 너무 많은 번민을 겪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버리기로 결심한 때에는 돈도 재산도 명예도 평생 추구하고 쌓아 올린 그 무엇도 까짓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진다. 그런 세속적인 성공에 집착하는 것이 오히려 추하게 보이기까지 하기에 죽기로 결심하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평소의 상상만큼 그렇게 힘들고 끔찍하고 두렵지는 않다. 아주 순간일 뿐이다. 그 후에는 아무것도 없다.

고통도 슬픔도 자유도 평화도 쾌락도 희망도 판단도 비난도 후회도 옳음도 그름도 번민도 빛도 어둠도 불면도 두려움도 일도 휴식도 휴가도 승리도 패배도 미움도 부끄러움도 미안함도 다툼도 용서도 오늘도 내일도 생각도 잘남도 못남도 계획도 성공도 실패도 편안함도 불편함도 안락도 고기도 새우도 과일도 잔치도 술도 콜라도 커피도 여행도 집도 차도 옷도 신발도 침대도 소파도 가족도 친구도 원수도 연인도 사랑도 결혼도 이혼도 하늘도 땅도 해변도 나무도 숲도 배도 자전거도 개도 고양이도 새도 구름도 바람도 위안도 눈물도 웃음도 영화도 팝콘도 음악도 시간의 흐름도 빚 독촉도 따돌림도 댓글도 경쟁도 공부도 전쟁도 스트레스도 만남도 헤어짐도 질병도 늙음도 추위도 배고픔도 외로움도 원한도 가난도 억울함도 그리움도 기다림도 안타까움도 깨끗함도 더러움도 법도 규정도 비난도 잘난 것도 못난 것도 섹스도 오락도 폭력도 오해도 책도 무지도 깨달음도 갑도 을도 높은 자도 낮은 자도 착취자도 당한 자도 사기도 거짓도 속임수도 살인도 강도도 도둑질도 도움도 협조도 배신도 성스러움도 비굴함도 나도 너도 없다.

그러니 그 얼마나 자유로운가. 그러니 산 자들이여 죽은 자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지니… 비록 죽은 자 그 누구도 스스로 자신을 변호하지 못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살아있는 자 그 누구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만 생각하면 누구나 조금은 겸손해질 수 있을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갑작스럽든 오랜 후든 누구나 반드시 죽어야 할 운명인 것을 생각하면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면 죽은 자를 위한 변명이 모든 산 자에게도 조만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알게 딜 것이다..

삶을 선택한 이와 죽음을 선택한 이의 사이에는 그 어떤 우월도 잘잘못도 없다 그저 선택의 차이일 뿐이다. 그러니 부디 비난이나 비웃지만은 말기를.. 그저 남은 흔적이나 잘 정리해 주기를…

에이 그러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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