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장 닭장
"야!"
선임 한 명이 군화 앞 축으로 연명의 정강이를 걷어찬다.
"예, 이경 도연명!"
연명은 정강이에서 등골로 전해지는 찌릿한 통증에 움찔했다가 바로 차려자세를 취한다.
"너, 데모하다 잡혀왔지?"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요즘 대삘이 치고 데모 안 한 놈이 어디 있어? 너 같은 놈들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이 쌩고생을 하는 거 아니야? 응?"
"..."
"너 출동 나가서 허튼짓 하지 마라. 지난번처럼 또 주저주저하다가 대열이 뚫리면 우리만 박살 나는 거야. 인마. 걔들이 언제 우리 사정 봐주는 거 봤어? 돌 맞아서 실명되고 화염병 맞아서 얼굴에 화상 입고 후회하지 말고 항상 발맞추어서 짜박짜박, 겁먹지 말고, 알지?
"예. 알겠습니다."
"알았으면 대가리 박아!"
연명이 바로 두 다리를 벌리고 엎드려 머리를 땅바닥에 대고 두 팔을 뒤로 돌려 열중쉬어 자세를 한다. 금세 정수리와 목이 아프고 옆으로 무너진다. 그랬다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선임은 의자에 앉아서 그 모습을 빙그레 웃으면서 지켜본다.
혈기 넘치는 청춘들이 소위 닭장차라고 하는 철망으로 차장을 가린 비좁은 전투경찰 수송 버스 안에서 두툼한 방석복과 방석모를 쓰고 닭장 안의 닭처럼 갇혀서 하루 종일 대기 하다가, 출동을 하면 방독면을 쓰고 방패를 들고 돌과 화염병이 날아오는 시위진압에 나서다 보면 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대기 중에는 하급병들을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괴롭히고, 출동 중에는 상대 데모군중에게 지나친 폭력을 휘둘러서 그 울분을 푸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연명처럼 학생 출신들도 막상 시위대의 반대편에 서면 시위대에게 적개심을 품고 과잉진압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연명도 방석복 안면 보호 철망 뒤에서 가끔 낯이 익은 친구들을 볼 수 있었지만 그들이 격렬하게 돌을 던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달려가서 두들겨주고 싶을 만큼 화가 나서 학생들이 적으로 보이고 전경들이 서로를 지켜주는 아군으로 느껴져서 씁쓰레한 마음이 들어서 혼자 피식 웃을 때가 있었다.
시위대에 있을 때는 전경을 죽이고 싶었는데 이제 전경대에 있으니 시위대를 죽이고 싶다니 정말 사람의 마음이란 간사하기가 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출동을 마치고 내무반에서 정비를 하고 있는데 행정실 문이 열리더니
"도연명 일경, 소대장님 호출!"이라고 외친다.
연명은 쭈그리고 앉아서 천으로 문질러 광을 내고 있던 군화를 내려놓고 운동복 차림으로 후다닥 달려서 소대장실 문 앞에 서서 노크를 했다.
"들어와."
소대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문을 열고 들어서자 소대장과 또 한 명의 낯선 경찰이 들어서는 연명을 본척만척하며 나지막하게 알아들을 수 없는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육군에서는 소대장은 장교인 소위나 중위의 직책이지만 전투경찰에서는 소대장을 직업경찰중 최하급인 순경이나 그 위의 경장이 맡는다. 경장의 상위 계급인 경위부터 경찰 조직 내에서는 초급 간부로 인정을 하니까 경찰 내에서의 전경대원의 위상은 밑바닥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 소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은 어깨에 무궁화 꽃 계급장이 있는 것을 보아서 꽤 높은 사람인 것 같았다.
연명이 거수경례를 하고 부동자세로 서 있다. 두 사람은 연명의 경례에 답례도 하지 않고 잠시 더 쑥덕이더니 비로소 고개를 돌려 연명을 쳐다본다.
"도 이경?"
"예, 이경 도연명!"
"그래. 근무에 노고가 많다. 고참들이 괴롭히지는 않고?"
소대장이 넌지시 묻는다.
"아닙니다."
정답이다.
"여기 이 분은 경찰청 정보과 성일영 경위님이시다. 오늘 너 면담을 하러 오셨으니까 여기 앉아."
라며 자기들이 앉아 있는 간소한 소파의 앞자리를 가리킨다.
"네, 감사합니다."
연명이 자리에 허리를 펴고 곧은 자세로 앉자
"어, 편히 앉아도 돼. 내가 오늘 도 이경에게 하나 제안을 할까 하는데..."
성 경위가 말문을 뗐다.
"도 이경이 학교 휴학을 하고 바로 입대를 한 걸로 알고 있는데... 맞나?"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가 지금 대학생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한데, 도 이경이 얼마 전까지 학생신분이었으니 딱 적격인 거 같아서 말이야."
"그럼 프락치..."
"아아, 거 듣기 거북하구먼... 그냥 교내 동향 파악만 하면 되는 건데, 만일 하게 되면 대우도 좋아. 바로 복학을 할 수가 있고 실적에 따라 장학금도 받을 수 있어. 돈도 시간도 벌고 진압작전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자유롭게 대학생활하고... 좀 좋아?"
"그래도.."
그러자 소대장이 끼어든다.
"아 싫으면 말고, 너 아니라도 할 사람 많아. 기회가 왔을 때 잡아."
그러자 성 경위가 소대장을 만류하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어... 억지로 시킬 필요 없습니다.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되고... 그럼, 난 이만 가보겠..."
성 경위가 모욕이라도 당한 듯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서려고 한다.
"아, 경위님 잠시만이요. 아마 갑작스러워서 그럴 겁니다. 귀한 걸음 하셨는데 빈 손으로 가시면 되겠습니까?"
소대장이 황급하게 손짓으로 성 경위를 다시 자리에 주저앉힌다. 성 경위가 마지못해 다시 자리에 앉으며 좀 차가운 사무적인 말투로
"그래, 처음엔 좀 망설여질 수도 있을 거야. 근데 금방 익숙해져. 그리고 뭐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야. 그냥 예전처럼 대학 생활하면서 하루에 한 번씩 동향 보고만 하면 되는 거니까, 한 번 잘 생각해 보고, 내일까지 답을 해줘. 너네 소대장 봐서 하루 말미를 주는 거야. 나가 봐!"라고 한다.
"네. 감사합니다."
연명이 대답을 하고 소대장의 눈치를 보자 소대장이 눈짓으로 나가라고 한다.
소대장 문을 나서서 내무실 문 앞까지 왔지만 문을 열기 전에 연명은 잠시 망설였다. 들어가면 바로 또 선임들에게 시달릴 생각을 하니 들어가기가 싫었다.
'그래, 어쩌면 이게 기회일 수 있어. 그까짓 동향보고야 대충대충 하면 될 거고, 나 아니라도 어차피 누군가가 할 거라쟎아?'
연명은 마음속으로 결심을 하고 내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갑자기 해방감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연명은 다음 날 전경대를 벗어나 학교에 복학 신청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