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귀로2

귀로1부 15장

by 이윤수

15장 공포


한편 윤주 일행이 광주에 도착했을 무렵 남영동에서는 연명이 두려움과 불안감과 죄책감에 사로잡혀 취조실 한편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동료들이 나 때문에 붙잡히지는 않았을까?

도망칠 시간이 충분했을까?

내가 좀 더 버텼어야 했는데...

어차피 아무도 끝까지 버티지는 못한다고는 하지만 내가 너무 빨리 불어버린 건 아닐까?

아니야, 그만 하면 도망칠 시간이 있었을 거야.

그나저나 언제 또 고문이 시작되는 거야? 미치겠네.

기다리는 게 더 사람 미치게 만드네.’

연명의 두려움에 부채질이나 하듯이 문 밖 복도의 어느 방에선가 둔탁한 타격 음과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고 낯익은 형사가 들어왔다.

연명은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형사는 그런 연명을 힐끗 보더니 책상 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더니 연명을 보고

"이리 와서 앉아!" 라며 책상 옆에 있는 다른 접이식 철제 의자를 턱으로 가리켰다. 연명은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앉는 둥 마는 둥 의자 앞부분에 엉덩이를 엉거주춤 걸쳤다.

"편히 앉아! 담배 피냐?"

형사는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 한대 입에 물고 불을 붙인 후 또 한 대를 연명에게 내밀었다. 연명이 주저하자

"짜식, 겁은... 괜찮아. 한 대 피워!" 라며 재차 권한다.

연명이 담배를 받아서 입에 무니 형사는 친절하게 불까지 붙여준다.

극단적인 긴장 끝에 들이키는 담배 맛은 머리가 핑 돌 정도로 환각적이었다. 연명이 눈을 지그시 감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지켜보던 형사는

"네 동료들은 다 도망치고 없더라. 조금만 일찍 갔으면 잡을 수도 있었는데 간발의 차이로 놓쳤어."

연명은 다행이다 싶었지만 아무런 내색을 안 하려고 고개를 숙이고 담배만 피웠다.

"어쨌든 네가 거짓말 안 하고 협조를 잘 했으니 내가 더 이상 취조는 안 하려고 한다."

연명은 또 다시 안도의 한숨이 나왔지만 역시 애써 표정을 감추고 담배불을 재털이에 비벼서 껐다.

"그런데 말이야. 난 솔직히 너 같은 캐이스 처리가 제일 난감해. 좀 크게 엮어서 빵에 보내면 내 실적도 쌓고 좋긴한데 그러면 빨간 줄 가서 평생 네 인생 길이 망가질거고 그렇다고 기록이 있는데 그냥 풀어줄 수도 없고...그러면 또 얼싸구나 하고 데모질이나 하다가 십중팔구 또 잡혀 들어올거고..."

"아닙니다...."

연명이 위기에서 벗어날 욕심에 나지막하게 끼어든다.

"지랄하네! 이 새끼! 좋게 말하니까 누굴 호구로 알아?"

연명이 움찔한다.

"확 그냥 콩밥 먹이고 썩혀버릴까 보다!"

형사는 분을 삭히는 것 처럼 잠시 말 없이 연명을 바라보다가

"어쩔래? 이참에 그냥 군대 갔다올래? 어차피 군대는 가야하는거고 지금 갔다오면 네 신상에 아무 기록도 안 남아! 네가 아직 철없이 날뛰다가 잔챙이로 잡혀온 거 같고 내가 동생같아서 알려주는거야. 훈방은 꿈도 꾸지말고.. 선택해! 군대야? 깜빵이야?"

연명이 어차피 훈방은 어렵겠다 싶어서

"그럼 군대로..."

라고 간신히 대답을 한다. 그러나 생각에도 없던 가기싫은 군대였고 어떤 운동권 선배들은 미제국주의 용병 앞잡이가 되기 싫다고 일부러 군대에 안 가고 투옥을 선택하기도 하기에 입영을 결정한 자신의 선택이 옳은건지 확신을 할 수 없어서 심경이 착잡했다. 그런 연명의 심정을 아는 듯 모르는 듯 형사는 무심하게

"배고프지? 육개장이나 하나 시켜 먹자." 라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잠시 후에 형사는 육개장 두 그릇과 깍두기 한 접시 그리고 수저 두 벌이 담긴 알미늄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자, 먹자." 라며 형사는 자신이 먼저 육개장을 한 수저 떠서 입에 넣는다. 연명도 수저를 들고 얼큰한 국물을 뽀얀 밥과 함께 삼켰다. 긴장이 풀리고 허기가 몰려와서인지 육개장은 정말 맛이 좋았다. 연명이 허겁지겁 먹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던 형사는

"천천히 먹어. 급한 일 없쟎아? 근데 너네 부모님은 뭐 하시냐?"

"예, 장사 하세요."

"그래? 사업이 크냐?"

"아뇨. 별로 안 커요. 작은 음식점이에요."

"짜샤! 그러면 부모님이 쌔빠지게 벌어서 학교 보내주었으면 공부나 열심히 할 일이지 데모는 무슨 데모질이야?"

"..."

연명이 말 없이 숫가락 질을 멈추자,

"아아, 미안해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데 내가 잘못했다. 자자 마저 먹어."

연명이 다시 숟가락을 들고 그릇 바닥까지 끍어먹은 후 국물까지 들이키자

"다 먹었어? 배가 고팠나 보네?

나가자. 너 부모님이 밖에 기다리신다.

여기서 있었던 일은 나가서 말 하면 안 되는지 알지? 그러다가 괜히 또 고생할 수도 있으니까 입 조심하고... 나도 업무상 어쩔 수 없이 그런 거니까 앙심은 품지 말고 잊어버려 알았지?"

라며 연명의 어깨를 친근한 듯 툭툭 친다.

"예.."

부모님이 오셨다는 말에 놀라면서도 연명은 어쩔 수 없이 나지막하게 대답을 한다.

형사를 따라 밖에 나가서 복도로 걸어 가다가 계단을 몇 번 꺾어 내려가니 건물 입구가 나온다. 입구에 있는 긴 나무 의자에 연명의 부모님이 나란히 앉아서 기다리다가 연명을 보고 일어서서 다가온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연명의 어머니가 동행한 형사에게 연신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아, 예! 다행히 이번에는 잘 넘어가네요. 또 한 번 더 잡혀오면 저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네네. 물론이지요. 제가 잘 교육을 시키겠습니다. 다 제가 못 가르쳐서 그렇습니다. 아무튼 이 모두가 형사님이 잘 봐주신 덕이지요. 감사합니다."

연명의 아버지도 공치사를 한다.

"에. 그럼 여기 신병인수서에 서명하시고 너는 여기 입영 동의서에 싸인하고 지장 찍어라. 한 일 주일이면 바로 신검 통지서가 갈거다!"

연명과 부모님은 시키는대로 형사가 내미는 서류를에 내용은 읽어보지도 않고 서명을 하고 서둘러 문을 나선다. 밖에 나서서 연명이 고개를 돌려 뒤를 한 번 쳐다본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모를 검은 벽돌 건물은 큰 거인처럼 위압적으로 버티고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과 차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연명의 아버지가 혀를 끌끌 차며

"못난 놈!"이라고 한 마디 내 뱉는다.

"죄송합니다!"

연명이 나지막하게 말하고 아버지 뒤를 따라간다.

"아이고 이 놈아. 그래 어디 다친 데는 없나? 밥은 먹었고?"

연명의 어머니가 손가락으로 남편의 팔꿈치를 쿡 찔러 남편을 제지를 하면서 한편 연명을 바라보며 말한다.

"예, 괜찮아요. 밥도 먹었어요."

"그래, 얼른 집에 가자. 잠도 푹 못 잤을텐데.."

"예, 그래도 생각보다는 금방 나왔네요.."

"야, 이놈아. 그게 저절로 된 줄 아니? 네 아버지가 사방으로 손을 쓰고 와이로도 먹이고 고생했다."

"예? 뇌물이요?"

"그래 이놈아! 아버지께 고맙다고 해라."

연명은 고마운 마음보다 이렇게 일이 흘러가는 것이 은근히 화가 나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세 사람은 어색한 침묵 속에서 남영역에서 전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신체검사 통지서가 오자 연명은 속전속결로 신검을 받고 논산 훈련소를 거쳐 서울 동부 경찰서 전경대에 배치를 받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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