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광주
다음 날 12시 용산역에는 세영과 윤주, 상혁, 영혜 이렇게 네 사람이 모였다. 그들은 먼 발치에서 서로 눈짓으로 이상유무를 확인하고 각자 광주행 차표를 끊어서 객차에 올랐다. 그리고는 우연히 동석을 하게 된 여행객인 척 하며 나지막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명이가 오래 못 버텼나봐! 어제 집 주변에서 동정을 살피니까 우리가 떠나고 얼마 안 있어서 자취방에 형사들이 덮쳤어. 아마 니네 집에도 갔을 거야"
세영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나마 피할 시간이 있어서 다행이네요. 근데 부모님들이 걱정이에요. 전 그냥 일 있다고 잠깐 나갔다가 온다고만 했는데.."
영혜가 근심스럽게 대꾸했다.
"아마 짐작을 하시겠지! 그래도 눈 앞에서 잡혀가는 걸 보는 것 보다는 낫다."
"그럴까요? 근데 우리 어디로 가는 거예요?"
"아무 연고가 없는 곳으로 가는 게 좋긴 한데 너무 막막해서 일단 광주에 내가 아는 친구들이 좀 있으니까 거기로 가 보자."
"선배 집으로요?"
"아니! 거긴 형사들이 금방 올거야. 우리 집 말고 우리를 숨겨 줄 친구들을 좀 아니까 거기로 가는거야. 일단 같이 행동하고 누구에게도 행적을 말하면 안돼. 부모님에게도 알았지?"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요즘엔 학생들이 같이 다니기만 해도 주목을 받으니까 각자 다른 칸으로 이동하고 광주역에 도착하면 내려서 역 앞 광장 시계탑에서 만나자. 그리고 거기서도 아는 체 하지말고 그냥 내 뒤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따라 와."
세영의 지시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서서 각자 다른 객차로 옮겨간다.
완행열차는 느릿느릿 한강철교를 건너 서울을 벗어나 터널도 지나고 눈 덮힌 들판을 가로질러 달린다.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을 바라보는 윤주의 마음이 무겁다. 이 여정의 종착이 언제가 될런지 끝이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감상에 젖을 여유는 없다. 혹시라도 누가 쫒아올까봐 초조한데 그렇다고 불안한 기색을 내비치는 것도 위험해서 주변을 살피는 것도 삼가하고 애써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한다.
한참 후 엄청나게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기차는 광주역에 도착했다.
네 사람은 약속대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시내버스를 타고 시 외곽의 어느 단층 집에 도착했다. 푸른 칠을 한 시멘트 기와에 블록 벽, 블록 담, 검은 철문을 한 평범한 집이었다.
대문은 닫혀있었지만 쪽문은 빼꼼 열려있었다. 세영이 상체를 숙이면서 안으로 들어가고 다른 사람들은 밖에서 기다렸다. 안에서 말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세영이 다시 밖으로 나온다.
"들어 와. 내 친구 집인데, 소개 같은 건 할 필요 없고 그냥 조용히 지내면 돼. 따라 와."
세영의 뒤를 따라서 네 사람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세영의 친구는 방 안으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일행은 세영이 이끄는대로 문간 방에 들어갔다.
"신발은 안에다가 들여놔."
일행은 시키는 대로 말 없이 신발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당분간 외출도 삼가고 집 안에서만 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세를 봐서 선도 연결하고 좀 움직여보려니까 답답해도 책도 읽고 좀 쉬면서 기운을 차리도록 해. 아무래도 돌아가는 낌새가 쉽지는 않을 것 같아."
세영의 말에 네 사람은 각자 방 안 한 벽을 차지하고 기대앉으며 가방을 열고 책을 꺼낸다. 하지만 책이 쉽게 눈이 들어오지 않는다.
"좀 쉬고 있어. 식사도 따로 해야하니까 장 좀 봐서 와야겠다. 뭐 필요한 거 없어?"
"저, 생리대..."
영혜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어.. 알았어. 특별한 거 없으면 내가 대충 알아서 사 올게"
세영도 어색하게 대답하고 밖으로 나간다.
얼마 있다가 돌아 온 세영은 새로운 소식을 전한다. 장을 봐온 물품은 별 관심이 없는 듯 내려 놓고는 흥분을 한 격앙된 어조로 말을 했다.
"오는 길에 도청 앞에서 하는 시위를 봤는데 여기 대단하더라."
세영의 말대로 광주의 시위는 서울보다도 더 격렬했고 시민들의 호응도 훨씬 더 좋았다. 그러다보니 경찰력만으로는 진압이 불가능해서 군부에서는 광주 지역에 위수령를 선포하고 공수부대를 투입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다. 공수부대의 폭력적인 과잉진압에 시민들은 움추려들기는 커녕 더욱 격렬하게 저항을 하고 마침내 사상자가 발생하고 분노한 시민들이 파출소의 무기고를 습격하여 무장을 하고 마침내 내전상태에 돌입하게 되었다. 그러자 경찰과 군대가 시 외곽으로 철수하여 광주 시내를 봉쇄하자 광주는 무정부 상태 시민자치 해방구가 되었다. 그러나 시민들은 자치업무를 훌륭하게 수행하여 치안과 의료 등 거의 모든 행정업무를 차질없이 수행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 병역을 치러 병기를 다룰 줄 알고 조직생활에 익숙한 남자들은 시민군의 역할을 하면서 정부군이 무시할 수 없는 군사력까지 갖추고 있었고 김대중 지지를 구심점으로 하는 지역의 정치 세력과 종교계 그리고 시민 활동가와 민주운동가 세력들도 일치단결하여 시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으며 신군부의 득세를 막을 성전을 한바탕 치를 결의에 차 있었다.
하지만 신군부들은 가만히 물러나지 있지 않았고 광주의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고 계엄령을 선포한 다음 정규 군대를 동원하여 무력으로 진압할 준비를 착착 하고 있었다.
마침내 일명 '화려한 휴가' 광주 탈환 작전이 시작되었다.
세영과 윤주 일행들도 당연히 시민군에 합류하여 도청을 사수하기 위하여 도청 일원에 배치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