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귀로2

귀로1부 13장

by 이윤수

13장 피신


"피해라. 연명이가 잡혀갔어."

방문을 열고 들어서며 세영이 외쳤다. 어제 가투에서 연명이가 잡혀갔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분주하게 짐을 챙겼다. 조직관련 문건과 마르크스 자본론, 김일성 자서전 같은 금서들은 아궁이에 넣어 불사르고 간단한 옷가지와 책 몇 권만 챙겼다.

연명이가 언제까지 버틸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누구도 그렇게 오래 버티지는 못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저 조직원들이 도피할 시간만 벌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형사들도 그것을 알기에 초기에 바짝 신문을 한다고 들었다.

창문 밖에서 바람소리나 발자국 소리만 나도 머리끝이 쭈뼛 서면서 심장이 요동을 치고 손이 떨렸다.

대충 짐을 챙겼다 싶었을 때 누가 방문을 벌컥 열었다. 두 사람이 깜짝 놀라서 그대로 밀치고 도망을 치려고 했다.

들어서는 사람은 다행히도 선옥이였다.

"연명이가 검거되었다면서요?"

선옥이 물었다.

"응, 너 마침 잘 왔다. 연명이가 너 알고 있냐?"

"아니요!"

"그럼, 우리 셀만 피하면 되는 거냐?"

"예, 위에서 그러라고 해서 전달하러 온거예요."

"알았다. 근데 지난 번 엠티 때 너무 얼굴이 알려진거 아니야? 걱정되네. 이러기에 공개활동은 좀 삼가했어야 하는건데..."

"예. 안 그래도 위에서도 그걸 걱정하는 것 같은데 이제 와서 어쩌겠어요? 그냥 학생회 행사 참가한걸로 밀어붙여야지요 뭐!"

"알았다. 그럼 우리는 광주로 내려간다고 위에다가 아니.. 어디라고 말하지 말고 그냥 피신한다고 당분간 선 끊어진다고만 전달해라. 선옥이 너도 당분간 몸 조심하고.. 얼른 가 봐라."

"예. 선배도 조심하세요. 윤주 너도 몸 조심하고..."

선옥이 은근하게 윤주를 바라본다. 윤주도 경황은 없지만 선옥이 방문을 열고 나가는 뒷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세영이 그런 윤주를 다그친다.

"야, 이럴 시간 없다. 나는 상혁이 데리고 갈테니 너는 영혜 집에 수소문 해서 내일 12시 정각까지 용산역으로같이 와라. 주소는 알지?"

"예, 한 번 가 봤어요."

"만일 못 온다고 하면 어디 먼 친척 집에라도 피신을 하라고 하고 가능하면 데리고 와. 알았지?"

"예."

윤주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세영은 챙긴 가방을 들고 황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윤주도 문을 나서서 세영과 다른 길로 영혜 집이 있는 화곡동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 시간 연명은 남영동 어느 취조실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에 책상과 의자 하나가 달랑 놓여 있고 바깥으로 나가는 철문과 욕조 딸린 화장실로 통하는 작은 문이 있다. 조명은 그다지 밝지 않아서 어두침침했다. 그러나 필요한 경우에는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조명을 켤 수 있도록 별도의 스텐드 등이 서 있었다. 책상 뒤 의자에는 고동색 가죽 자켓을 입은 형사 하나가 책상 위에 놓인 검정색 장부를 들추어 보며 앉아 있었다.

연명은 형사의 침묵에도 벌써 겁에 질려서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름?"

"도연명이요!"

연명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이 새끼가! 안 들려. 크게 대답 안해?"

형사가 들고 있던 곤봉으로 책상을 땅! 치며 버럭 소리를 지른다. 플라스틱 곤봉이 목재 책상을 치는 소리가 온 방안에 울리자 연명의 등에 금세 소름이 돋았다.

"예. 도연명, 도연명입니다."

소스라치게 놀란 연명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진작 그랬어야지. 이름 좋네. 우리 쉽게 쉽게 가자 응?"

형사는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서 일어나 연명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너 운동권이지? 어디 소속이야?"

"아닙니다. 그냥 명동 놀러갔다가..."

"아쭈 이 새끼가 수작을 부리네! 야 일어서."

연명이 주춤주춤 일어나자 별안간 달려들어서 그대로 연명의 명치를 주먹으로 내지른다.

"훅!"

숨이 멎을 것 같은 통증에 연명은 그대로 배를 움켜쥐고 앞으로 꼬꾸라진다.

형사는 몸을 웅크리고 앞으로 숙인 연명의 등을 구둣발 뒤꿈치로 사정없이 다시 한 번 내려찍는다. 연명이 욱하고 비명을 내지른다.

"야! 엄살떨지 마. 좋게 가자니까 얘가 매를 부르네! 아직 시작도 안했어. 너 안 되겠다, 일단 좀 맞고 시작하자! 일어 서!"

형사의 호통에 연명은 손을 내 저으며 벌떡 일어서서 차려 자세를 취한다.

"아닙니다. 말 하겠습니다."

"아니 말하지 마. 너는 먼저 좀 맞아야 할 것 같아!"

형사가 곤봉을 치켜들고 연명의 머리를 가격하려는 시늉을 한다. 연명은 공포에 질려서 눈을 감으며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머리를 가린다.

"아쭈? 막아? 이거 안되겠구만!"

형사는 정말 화가 난 목소리다. 형사가 곤봉을 다시 치켜들자 연명이 소리를 질렀다.

"아닙니다. 다 말하겠습니다. 다!"

"그래? 그럼 네 조직원 이름부터 말해봐!"

"..." 연명이 잠시 주저한다.

형사는 그런 연명을 보고 혀를 끌끌차며

"그 봐! 넌 우선 맞고 시작해야 한다니까!"라며 엉덩이를 걸치고 있던 책상 모서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그 서슬에 연명이 입이 열린다.

"정세영, 오상혁, 이영혜, 강윤주..."

"그게 다야? 신기태는? 아니야?"

"신기태요? 모르겠는데요!"

"그래? 그 중에 대빵이 누구야?"

"정세영 선배요."

"그 잔챙이들 말고 그 윗 선이 있쟎아!"

"그 밖에는 몰라요. 진짜!"

"알았어. 그건 조사해 보면 알고! 다 니네 학교야?"

"예."

"다음 시위 시간과 장소는?"

"..."

"그래 오늘 날 잡자. 응? 네가 죽을려고 아주 작정을 했구나!"

"저도 정말 몰라요. 매일 매일 알려주기 때문에 하루 씩 밖에 몰라요."

연명의 목소리가 거의 울음소리에 가깝다.

"그래? 우선 이 새끼들 잡는 게 급하니까 이 일부터 처리하고 보자. 어이 이형사!"

형사가 문 밖을 보고 소리를 치자 또 다른 형사 하나가 들어온다.

"여기 명단에 있는 얘들 바로 검거 해. 불법 시위 주동자들이야. 도주할지 모르니까 서둘러야 해."

라며 메모지에 뭔가를 끄적끄적 적어서 넘겨준다.

그리곤 다시 연명에게 돌아서서

"만일 이 놈들 못 잡으면 너 인생 종 치는 거고 잡으면 내가 좀 봐 줄 수도 있어. 나 나갔다가 올 테니까 좀 쉬고 있어!"

형사는 어르는 목소리로 낮게 말하고선 문을 열고 나간다. 밖에서 짤카닥하고 자물쇠 채우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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