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귀로2

귀로1부 12장

by 이윤수

12 장 격변.


"박정희가 죽었대!"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아침부터 라디오와 TV는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대통령의 사망소식을 반복해서 특집뉴스로 내보내고 있었고 길 거리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신문 호외를 한 장씩 들고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신문팔이 아이들은 신문 뭉치를 한 쪽 겨드랑이에 껴안고 다른 손에 신문 한 부를 치켜들고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호외요 호외요!'를 외치고 있었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후 거의 20년을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한국 근대사에 큰 획을 그은 한 인물이 갑자기 자신의 최측근의 손에 비명 횡사했다. 윤주또래의 젊은이와 그 보다 어린 사람들은 태어나서부터 평생동안 다른 대통령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고 각종 행사 때마다 낭독하여 달달 외우고 있는 국민교육헌장 말미의 대통령 박정희라는 말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대통령은 박정희, 박정희는 대통령'으로 거의 뇌리에 등식이 성립되어 있었다. 그에게는 새마을 운동과 경제개발의 주도자로서 반만년 지긋지긋한 가난의 굴레를 벗게 해준 한민족의 영웅이라는 평과 노동자와 빈민의 고통을 외면한 독재자라는 극명한 평이 엇갈리고 있었고 그를 죽인 김재규에 대해서도 안중근에 버금가는 의사라는 평과 주군을 시해한 배반자라는 평이 엇갈리며 한마디로 혼란의 도가니가 펼쳐졌다.

시골의 아낙네들은 국상이 났다고 연일 울음바다였고 저항세력들은 드디어 민주화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고 축제 분위기 였다.

하지만 정국은 혼란스러웠다. 향후 정권의 향배를 두고 각 세력들이 주도권을 쥐려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최규하 총리 대행은 실질적 힘이 없는 듯 했고, 정승화 계엄 사령관도 시해에 연루된 혐의로 곧 물러나고 이 조치를 주도한 전재무 장군이 신 군부 실세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의 얼굴이 TV에 자주 등장할수록 사람들의 불안감은 더 커졌고 이에 반발한 민주화 세력들은 '신군부 퇴진'과 '민주적 정부 구성'을 주장하며 격렬한 시위를 계속했다.

또한 '3 김씨'가 새로운 대권주자로 부상하면서 암암리에 경쟁을 벌이다가 보니 그 지지 세력들이 충청 전라 경상도로 각기 지역 색을 띄고 분열되는 바람에 정국에 혼란을 부추겼고 군부는 그 틈새를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박정희 퇴진과 유신철폐를 주장하던 학생들도 민주화의 봄이 왔다는 기쁨도 잠시, 다시 '신군부 타도'라는 새로운 목표를 내걸고 교정을 벗어나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제는 학생들에게 호응을 하는 일반 시민들도 꽤 있었다. 시위에 적극 가담은 하지 않더라도 경찰에게 쫒기는 학생들을 숨겨주기도 하고 행진하는 시위대에게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이에 고무된 학생들은 매일같이 명동, 종로, 서울역 등 도심에서 기습 시위를 벌이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방학인데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세영선배의 지시대로 '보급투쟁'을 하고 있던 윤주도 이제 매일 시위를 조직하고 참석하느라고 바쁘게 되었다.

보급투쟁은 노동현장 체험과 투쟁자금 조달의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선배들이 가장 권장하는 것은 학생 신분을 숨기고 공장에 취업하여 돈도 벌면서 노동자들을 의식화 하고 노조를 결성하는 것이었고 그 다음은 농활이라고 하여 농촌에 가서 농사 일을 도우면서 역시 농민들을 의식화 하고 농민회를 구성하여 대정부 투쟁에 나서게 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개인 자격으로 건설현장 잡부나 일용직, 거리 행상 등으로 노동을 몸으로 체험하고 그 수익을 투쟁기금으로 모으는 것이었으며 과외나 가정교사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윤주도 위장취업을 해 보려고 했으나 짧은 방학기간에는 취업이 어렵고 휴학이나 자퇴를 해야 가능했기에 여름방학에는 전라도 어느 시골 마을에서 농활을 하고 겨울방학 때는 강남의 어느 아파트 건설현장에 잡부로 취업을 했다.

"학생?"

"네."

"여기 왜 왔어?"

"등록금 벌려고요."

"막 일 해봤어?"

"아니요."

윤주를 아래 위로 한 번 훑어 보더니 십장이

"오늘 교통!"이라고 외쳤다.

건설 현장에서는 십장이 왕이었다.

그가 작업분배도 하고 다음 날 일을 못나오게 하는 권한도 가지고 있기에 그의 말 한 마디가 잡부들의 생사여탈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루하루 일 해서 먹고 사는 잡부들에게는 '어이 김씨. 일을 그렇게 하면 쓰나! 내일은 쉬어!'라는 십장의 말이 사형선고처럼 무섭게 들렸다.

그나마 교통은 가장 쉬운 일이었다.

하루 종일 깃발을 들고 현장 출입구 앞 길 가에서 교통을 통제하는 일은 좀 지루하기는 하지만 질통에 모래 자갈 시멘트를 메고 건물 외벽 비계에 설치된 구멍이 숭숭 뚫린 좁은 철판을 밟으며 하루 종일 가파른 경사로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일에 비하면 그야말로 하느님이다.

윤주도 첫 날만 교통을 하고 다음 날 부터는 리어카를 끌거나 질통을 졌다. 숨이 턱턱 막히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일이 끝날 무렵에는 서 있을 힘도 없었고 땀을 어찌나 많이 흘렸는지 탈수 증상이 와서 물은 마셔도 마셔도 목이 말랐다.

그래도 악착같이 버텼다. 무슨 숭고한 사명감인지 몰라도 어쨌든 조직이 시키는 일은 옳은 일이니 어떠한 난관이 있더라도 극복하고 반드시 수행을 해야만 했다. 하루에 만 원씩 일당을 받아서 함바 밥이나 식빵으로 끼니를 떼우고 연탄 살 돈도 아껴서 냉골 추위에 이빨이 딱딱 부딪칠 정도로 추워도 이불을 뒤집어 쓰고 버티고 몸이 아파도 약도 사먹지 않고 견디면서 돈을 모아서 투쟁기금으로 바쳤다. 그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는 몰랐다. 어려운 학우나 해고 노동자를 돕기도 하고 장기 양심수 생활비나 북한 어린이 돕기에 쓰인다고도 하며 가투(거리 시위) 자금으로 쓰인다고 하지만 그런 것에 의심을 품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웠다. 조직원들은 힘이 있는 한 돈을 버는 것만이 사람사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것이라고 확고하게 믿었다. 그래도 몸이 힘들고 흔들릴 때는 '남부군'이나 빨치산 투쟁기를 읽으며 더 큰 고초를 신념으로 버텨낸 열사들의 본을 받겠다고 다짐하고 마음을 추스렸다. 이런 윤주를 세영 선배는 진심으로 칭찬하고 격려했다.

몸집이 작고 빈약한 편인 세영은 막일은 할 수 없었지만 그도 역시 과일 행상을 하면서 돈을 벌었다. 광주가 고향인 그는 겉으로는 약해보였지만 심지는 굳건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순진한 윤주와 서로 마음이 잘 통했다.

연명과 상혁 그리고 영혜도 각각 보급투쟁을 나름 열심히 했다. 연명은 강남 어느 부자집에서 입주 가정교사로 일을 하고 영혜는 식당에서 홀 서빙을 하고 상혁은 방학 때면 아버지 사업을 도와야 하기에 고향 강원도 원주로 내려갔다. 방학 때는 기숙사 운영을 안 하기에 서울이 집인 영혜를 제외하고 세영과 윤주 두 사람은 학교 근처 허름한 방을 얻어서 합숙을 했다.

"넌 집에 안 가봐도 돼니?"

세영이 어느 날 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윤주에게 물어보았다.

"예. 그냥 공부할 게 많다고 그랬어요,"

그렇게 말을 하고 보니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하는 자신이 미안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대의를 위해서인데...

"그래, 그래도 잠깐 갔다가 와. 그 정도는 괜찮아!"

"아니예요. 차비도 아까운데 뭐 그냥 나중에 한 번 가지요. 그러는 선배나 한 번 가봐야하지 않아요? 홀어머니가 연로하시다면서요?"

"응, 그렇긴 한데... 나도 가고 싶지 가고 싶기야..."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서로의 맑은 눈동자를 바라 보는 두 사람은 선후배를 넘어서서 서로의 동지애를 가슴 뭉클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어, 춥다. 윤주 너 안도현의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언제 몸을 불살라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해준 적이 있느냐는 시 읽어 봤냐?"

세영이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아니요. 저는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이 가슴에 와 닿던데요. 노동자 부부가 주야간 교대로 서로 만나지 못하고 차려 놓은 밥상에 놓인 쪽지로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가 뭉클했어요."

"그렇지? 나도 그 시 좋더라. 아무려나 내일은 영하 20도라니 우리도 연탄 한 장은 사서 때야겠다. 너무 춥다. 이러다 얼어죽겠다."

"투옥된 동지들은 얼마나 더 추울까? 거기는 시멘트 바닥에 이불도 옷도 변변치 않을텐데.."

윤주의 이 말에 세영도 입이 쩍 벌어졌다.

"야, 너 대단하다. 널 보면 버스비를 아끼고 걸어다니고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주었다는 전태일 열사가생각 나. 내가 다 부끄럽다."

"아니예요. 그냥 말 뿐이에요. 어제는 선옥 선배 만나서 오뎅도 사 먹었는데요 뭐."

윤주가 죄스러움에 말 끝을 흐린다.

"너, 선옥이랑 사귀냐?"

"사귀긴요. 그냥 가끔 만나요."

"어어어 이 놈 보게. 호박 씨 까네. 그러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봐. 너 선옥이 좋아하지?"

"네. 좋아요. 근데 그런 건 아니예요."

"그런게 뭔데 응?"

세영이가 한 팔을 뻗어 윤주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힌다.

"너 동지들 간에 연애감정 거 위험한거다. 금지사항이야."

"왜요?"

"야, 그걸 몰라서 묻냐? 당연히 연애질 하다 보면 과업에 소홀할거고 사적 감정이 앞서면 올바른 판단도 못할거 아니야!"

"그럼 만나지도 못해요?"

세영이 낄낄거리며 말한다.

"아니야. 농담이야. 괜찮아. 잘해봐. 그래 선옥이도 네가 좋다디?"

"아이 그런 거 아니라니깐!"

윤주가 돌아 눕는다.

"흐흐흐, 짜식, 영 쑥맥은 아니구만. 좋았어!"

세영이 윤주의 어깨죽지를 툭 치고 잠을 청한다.

윤주는 어제 선옥과 같이 보냈던 시간들을 회상하며 몰래 미소를 짓는다.

어제는 첫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일을 마치고 나서 힘든 몸을 이끌고 도서관에서 책이라도 빌려갈까 하고 열람실에 들렀다가 우연히 선옥을 만나서 함께 교정을 거닐며 데이트를 했다. 내리는 눈 송이가 선옥의 까만 머리 위에 녹아서 가로등 불빛에 반짝반짝 빛났다. 어느 순간 선옥은 털실 벙어리 장갑을 낀 자신의 손을 윤주에게 내 밀었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아무도 밟지 않은 눈 내린 교정을 함께 거닐었다.

혁명이나 학습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저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며 두 사람은 키득키득 웃기도 하고 서로의 말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대화를 이어가기도 했다.

길 가에서 파는 어묵 국물도 따스하고 맛이 좋았다.

그날 밤 윤주의 꿈에는 명자와 선옥이 함께 나와서 윤주에게 뭐라고 따지며 울기도 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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