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아침 - 아픈 사마리아인
아침 9시 9호선!
늦잠을 잔 탓에 아침도 못 먹고 부리나케 집을 나선 윤주는 공항시장 역에서 개찰구를 지난 다음 뛰다시피 껑충껑충 계단을 내려가서 김포공항행 전철이 들어오는 플랫폼으로 간다. 출근해야 할 회사는 강남인데 윤주는 오히려 그 반대방향으로 가는 전철을 기다리는 것이다.
오늘 땡땡이라도 치려는 것일까?
아니다.
때로는 돌아가는 것이 오히려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출근 시간에 강남행 9호선은 너무 혼잡하기 때문에 공항시장 역에서 강남행 완행을 타는 것보다 거꾸로 1 정거장 김포공항 역으로 가서 강남행 직행을 타는 것이 더 편안하고 빠르다. 대도시 외곽에서 사는 월급쟁이 소시민이 조금이라도 쉽게 살아가는 사소한 요령 중의 하나다.
오늘은 운이 좋은 지 빈 좌석까지 하나 있다.
얼른 자리에 앉아서 졸아야 한다. 안 그러면 눈치 없이 러시아워에 길을 나선 할아버지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다음 마곡나루 역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승객들에게 치이고 밀리고 시달리며 직장까지 가야 한다. 그러면 하루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진이 다 빠진다.
윤주가 얼른 빈자리에 앉은 다음 실눈을 뜨고 살펴보니 승객들이 대부분 지그시 눈을 감고 있다.
배테랑들이다!
윤주는 그들에게 근거가 전혀 없는 동료애를 느끼면서 혼자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가만히 웃는다.
맞은편 출입구 옆에는 한 아가씨가 손거울을 들여다보며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느라고 여념이 없다. 아마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화장을 할 시간도 없었나 보다.
'밥은 먹었을까? 화장실 갈 시간도 없었겠지? 똥을 참으면 변비 걸리는데... 혹시 나처럼 만성 변비에 시달리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내가 지금 뭔 쓰잘머리 없는 상상을 하고 있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눈을 꼭 감는다.
그러다가 또 궁금해서 살그머니 실눈을 떠본다.
여자는 이제 손잡이가 달린 조그마한 집게처럼 생긴 휴대용 고대기로 속눈썹을 부지런히 말고 있다. 한 눈은 동그랗게 뜨고 다른 한 눈은 잔뜩 찡그린 채 속눈썹을 조금이라도 길어 보이게 해 보려고 갖은 애를 다 쓰고 있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해서 윤주는 또 빙그레 웃는다. 그러다가 자기가 훔쳐보는 것을 여자가 눈치라도 챌까 봐 겁이 나서 얼른 시치미를 뚝 떼고 머리 뒤통수를 차창 유리에 대고 눈을 감는다.
열차가 마곡나루역에 도착했는지 안내 방송이 나오고 출입문 여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의 발소리와 옷자락이 서로 밀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윤주의 무릎에도 누군가의 무릎이 와닿는다. 모른 채 한다. 덜커덩 덜커덩 찰카당 찰카당 열차 바퀴의 리드미컬한 진동과 그에 따른 차체의 규칙적인 흔들림에 정말 졸음이 오려고 한다.
윤주가 기분 좋은 나른함에 빠져들 무렵 열차는 양재 역으로 들어선다.
내리기가 싫다.
하지만 미리 나서지 않으면 너무 복잡해서 제 때 내리지도 못한다. 사람들을 헤치고 밀치며 열차에서 내려서 출구 계단을 올라간다.
계단 끝에서 회사가 있는 쪽으로 돌아서며 인도를 걸어가기 시작하자 갑자기 목과 손이 시리면서 온몸에 한기가 돈다. 찬 바람이 부는 탓인가 하여 어깨를 움츠리며 외투의 단추를 목까지 채우고 가죽장갑을 꺼내서 손에 끼었다. 하지만 여전히 심한 추위에 윤주의 몸이 부르르 떨리고 이빨이 딱딱 부딪친다. 이번에는 외투의 깃을 올려서 목과 턱 부분을 감싸본다. 그래도 소용이 없다.
그 순간 길 모퉁이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한 노숙자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는 한 겨울 추위에도 허름한 갈색 내복을 입고 연두색 군인 방한조끼를 걸치고 신발도 없어 구멍 난 양말이 드러난 맨발 차림이었다. 나이는 한 오십이 넘었을까? 얼굴이 꾀죄죄하고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실제보다 겉늙어 보였다.
그의 눈은 아무런 감정도 없이 그저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다만 그의 앞에 놓인 깡통과 그 안에 담긴 동전과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 그를 대신해서 그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었다.
윤주는 자신의 극심한 추위의 근원이 그 걸인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서 깡통에 넣었다. 동전이 땡그랑 소리를 내며 함석 깡통에 떨어지고 남자가 손을 뻗어 동전을 집어 들었지만 윤주의 추위는 가시지 않았다.
윤주가 갑자기 비감한 생각이 들고 그 남자에게 동정심이 생겨서 충동적으로 외투를 훌렁 벗어서 남자의 굽은 등에 걸쳐주었다. 걸인은 놀라서 윤주를 쳐다보고 그 순간 윤주는 이상하게 추위가 가시는 것을 느꼈다. 옷을 벗었으니 더 추워야 당연할 텐데 이상하게도 옷을 입고 있을 때보다도 더 따뜻했다.
이 모습을 보며 지나가던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무시하고 윤주는 회사로 급히 걸음을 옮겼다.
게임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윤주의 회사는 한 때 해외 매출이 좋아서 보너스와 월급과 주가가 한창 올라갔었지만 요즘엔 갑자기 실적이 떨어져서 언제 그랬냐는 듯 회사 분위기가 개판이 되었다.
프로그래머의 특성상 딱히 정해진 근무 시간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윤주는 아무래도 좀 늦은 시간에 출근을 하는 것이 눈치가 보여서 살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직원들이 대부분 자기 자리에 앉아서 모니터를 들여다보면서 마우스를 열심히 돌리거나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부지런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짜식들, 스카우트되어 나간다고 떵떵거릴 때는 언제고, 이제는 잘릴까 봐 엄청 열심히 하네!'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윤주는 몸을 살짝 낮추고 발소리를 죽여서 패널 칸막이 사이를 지나 자기 자리로 간다. 얼핏 본부장 실이 있는 쪽을 보니 신입 김사라 씨가 본부장 앞에서 신나게 깨지고 있는 것 같았다.
"버그는 좋다 이거야. 생길 수도 있지. 그렇지만 출시 전 시연 때 잡았어야지!... 그걸 놓쳐서 클레임이 들어오게 해?"
본부장이 목청껏 내지르는 소리가 유리 칸막이를 무시하고 밖으로 마구 휘젓고 나왔다.
잠시 후 사라 씨가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본부장 실 유리문을 열고 나왔다.
자신의 모니터 뒤에서 고개는 숙이고 곁눈질로 그 모습을 쳐다보던 윤주는 자기 눈에서도 눈물이 맺히면서 갑자기 슬프고 비참한 감정이 들어서 깜짝 놀랐다.
속으로 '이상하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데 어디선가
'아휴! 저 본부장 새끼를! 확!
지는 뭐가 그리 잘났다고... 지가 짠 프로그램은 변변한 거 하나도 없으면서 프로그래머들 등만 처먹는 게!
어디서 갑질이야 씨발!'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흠칫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니 실제로 나는 소리가 아니고 누군가의 생각이 윤주의 귀에 전달되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사라는 우는 모습도 예뻐죽겠네! 우니까 더 애처롭고 안아주고 싶네! 오늘 밤에도 어디 한 번...'
그 '소리'가 오는 방향을 '보니' 박무성 팀장 쪽이다.
사라 씨가 자기 자리에 앉는 것을 보며 윤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박 대리에게 슬그머니 다가갔다.
"박 팀장님! 사라 씨랑 사궈어요?"
윤주는 다른 사람이 못 듣게 소곤소곤 말을 했지만 박무성은 소스라치게 놀라서 눈을 치뜨고 윤주를 째려본다.
"아이 깜짝이야. 무슨 소리야? 사귀긴 뭘 사귀어!"
"흐흐 다 아는 수가 있지요!"
윤주가 능글거리면서 싱글싱글 웃자 팀장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서 온순하게
"어떻게 알았어? 비밀이야. 응!"라며 윤주의 눈치를 본다.
윤주는 자신의 넘겨짚기 모험이 성공한 것이 내심 기뻤지만 내색을 하지 않고
"알았어요. 잘해 봐요!"라고 말하고 의기양양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자리로 돌아오면서 칸막이 사이를 지나가다 보니 지나치는 사람들의 감정과 생각이 읽혔다.
"아, 씨발, 낚싯대 하나가 뭐 이렇게 비싸? 마누라한테 뭐라고 하고 돈을 좀 빼돌리지?"
'송지만이는 일 하는 척하면서 아마 인터넷 쇼핑을 하고 있나 보다.'
"사라 조것! 고소하다. 잘난 체하며 실적 내려고 서두르더니! 아, 그럼 이 몸이 다음 프로젝트를 맡을 가능성이 좀 많아진 건가?"
'음, 최미리가 보기보다 야심이 많군!'
그런데 사람들의 생각이 읽히는 게 재미는 있는데, 온 사방에서 이것저것 쓸데없는 감정과 잡생각까지 너무 많이 들리니까 마치 자신이 시장바닥에 나와 있는 것 같아서 정신이 하나도 없어졌다.
윤주는 다시 박 팀장에게 가서
"팀장니임... 저 좀 나갔다가 올게요..."하고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응? 응 응!"
박 팀장이 흔쾌히 대답을 했지만 윤주에게는
'하, 요 새끼! 아주 내 약점 잡았다 이거지! 씨발..' 하는 그의 생각이 읽혔다.
윤주는 구글 써치를 해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신경정신과를 찾아갔다. 다행히 예약 없이 바로 진찰을 받을 수 있었다. 접수대에서 간호사에게 신상을 알리고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의사는 흰색 가운을 입은 30대 초반의 젊은 여자였다.
"오늘 초진이시네요! 이전에 다른 신경과 치료를 받으신 적은 없으셨나요?"
눈꼬리 쪽이 뾰족한 금테 안경을 써서 그런지 다소 날카로운 인상의 의사가 책상 뒤에서 모니터를 보고 있다가 말을 마치고 눈길을 돌려 윤주를 바라보았다.
"예. 없었습니다. 오늘 갑자기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생각이 읽혀서 혼란스러워서 왔습니다."
"아, 그래요? 확실합니까? 다른 사람의 생각이라는 게! 혹시 그냥 상상을 하시는 건 아니시고요?"
"아닙니다. 제가 확인도 해 봤는데 정말 그 사람들이 하는 생각과 감정이 맞았어요."
"그래요? 그럼 제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 번 말해 보세요."
윤주가 잠시 망설이다가
"이거 참 희한한 또라이가 왔네...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해? 의대에서도 배운 적이 없는데 어떻게 처리를 한다?... 맞나요?"
의사가 흠칫 놀란다. 그러더니 정색을 하고
"그 참 특이한 증상이네요. 제가 알기로는 학술지나 신경의학회에도 아직 보고가 된 적이 없는 증상이라... 솔직히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할지 좀 막막하네요. 지금 그것 때문에 많이 불편하신가요?"
의사치고는 권위를 안 부리고 솔직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아프진 않은 데 너무 시끄러우니까 일에 집중이 안 되고, 감정적으로도 부담이 많이 돼요. 그리고 왜 그런지 이유도 궁금하고요!"
"그렇군요! 좀 조심스럽긴 하지만 제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아마 '과잉 민감성 공감 증상'이라고 봐야 할 것 같아요."
"그게 뭔데요?"
"음,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공감을 하는 능력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슬퍼하면 같이 슬퍼지고 남들이 웃으면 같이 즐거워지는 거예요.
누구나 슬픈 영화를 보면 눈물이 나고, 아이들이 아프면 어머니도 같이 마음이 아프며, 친구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덩달아 화가 나고, 범죄자를 잡거나 복수를 하는 뉴스를 보면 자신이 피해자가 아니었는데도 통쾌하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시트콤 같은 방송에서도 일부러 다른 사람들의 웃음을 배경음으로 삽입하여 자연스럽게 웃음을 유도하지요. 아무도 안 웃는데 혼자 웃으면 뻘쭘하지 않겠어요? 요즘 인기가 있는 먹방이나 관찰예능 여행 프로그램도 공감을 바탕으로 한 대리만족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지요.
이것을 일명 '공감뉴런'이라고 하는데 지금 환자분 아니 윤주 씨 같은 경우에는 그 공감대가 너무 민감한 것 같아요."
"그런데 생각은 어떻게 읽히나요?"
"사람의 생각을 우리는 보통 이성적 활동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감정적인 면이 더 많아요. 사람은 논리적인 인과관계로만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감정적으로 생각을 하는 게 더 많거든요.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완전히 냉철한 생각이란 거의 없어요. 그러니 감정을 읽으면 자연히 생각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윤주는 의문이 좀 풀리면서
'오, 똑똑한데... 역시 의사 공부 헛한 게 아닌가 봐...'라고 생각을 하면서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치료 방법이 있나요?"라고 묻는다.
"글쎄요. 이걸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라고 보기는 곤란하군요. 사실 그 반대의 경우 소위 '소시오패스'라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공감능력이 없는 증상을 가진 사람은 꽤 많이 있는 데 그들은 법망만 피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데도 이것을 질환으로 보지는 않거든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정도로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거나 본인이 사회생활에 장애를 느낄 정도는 아니라서 그저 성격적 차이로 보고 의학적 처치나 치료는 하지 않아요.
모든 정신과나 신경과 질환은 환자와 비환자의 구분이 그렇게 명확하지 않아서 그 증상의 정도에 따라 치료 여부나 방법이 결정이 되거든요!"
"그럼 누구나 정신과 증상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인가요?"
"예, 맞아요. 누구나 우울할 때가 있잖아요? 즐거울 때도 있고요! 이유 없이 화가 날 때도 있고요! 그럼 그때마다 정신과에 와야 하나요? 그건 아니에요. 다만 너무 심하거나 장기적으로 지속이 되어서 정상적인 생활에 지장이 되고 본인이 힘이 들면 진단과 치료가 필요한 것이지요."
"그럼 저는... 치료가 가능한가요?"
"현재로서는 치료가 가능한 약물은 없고요, 다른 사람이나 본인에게 위험한 정도는 아니라서 입원을 하실 필요도 없어요. 원하신다면 내원 상담을 하실 수는 있어요."
"그럼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네요? 그리고 '소시오패스'보다는 훨 낫네요!"
윤주가 조금 안심을 하고 빙그레 웃는다.
"예. 물론이지요. 동물과 구분되고 인류 번성의 원인이 되는 인간만의 특징으로 언어나 추상적 사고 능력, 도구 사용이나 교역 문화, 종교 등을 드는 학자들도 있지만 요즘엔 무엇보다도 그 공감 능력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고 보는 학자도 있어요. 최근에 나온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의 저자인 브라이언 헤어는 인간은 이 공감능력 덕분에 사회생활을 하고 서로 협력을 할 수 있어서 결국 지구상 최우세종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어요."
"아, 예전에는 약육강식이니 적자생존이니 이기적 유전자니 하면서 이기성과 경쟁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했는데 추세가 좀 바뀌었네요!"
"아니에요. 추세가 바뀐 게 아니라 다윈이나 도킨슨의 이론의 취지는 원래 그게 아닌데 사람들이 잘못 해석을 한 것이지요. 아무튼 요즘엔 뇌과학이 발달해서 이제는 그 공감이 그냥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MRI로 뇌의 공명이 일어나는 걸 촬영해서 입증을 하고, 개 같은 일부 동물들에서도 그런 공감능력이 있음을 증명하고 있지요."
"아, 그럼 제 이 증상이 이상하거나 나쁜 건 아니네요."
"예 맞습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에서 선행을 베푼 주인공 장 발장의 경우나 성경에서 이웃사람의 곤경을 외면하지 않고 도와준 사마리아 인의 비유에서 나오는 것처럼 우리가 보통 착한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은 다 이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그것을 실천한 사람들이지요!
그럼요, 좋은 거예요. 다만 지금 본인이 불편하시다 하니 좀 증상을 완화시키면 좋을 듯합니다."
의사의 설명에 윤주는 은근히 자부심마저 느끼며
"어떻게요?"라고 묻는다.
"그럼 우선 본인이 동정심을 일으킬만한 사람을 만나거나 감정적 동요를 일으킬 만한 상황을 회피하십시오."
"그건 왜 그렇습니까? 그럼 도움이 될까요?"
"예, 사람의 뇌는 가소성이란 게 있습니다. 태어나면서 한 번 정해지면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앞을 못 보는 장애인은 그 시각능력이 청각이나 촉각으로 가서 더 예민해지고 심지어 기계장치의 도움을 좀 받으면 피부로 이미지를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주 쓰는 신체 기관과 뇌 자극은 더 발달하고 반대로 자주 쓰지 않으면 그 기능이 퇴화가 됩니다. 그러니 그 공감능력을 너무 많이 활용을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하나요? 사회생활을 하다가 보면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데..."
"예. 쉽지는 않지만 노력을 하시면 자극을 줄일 수는 있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은 일단 피하시고 영화도 보지 마시고.. 반대로 명상이나 혼자 하는 운동은 도움이 될 겁니다."
"허허.. 재미있는 건 하지 말라는..."
윤주가 낭패라는 표정을 짓자 의사는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숙인다.
윤주는 그런 의사가 순간 귀엽고 예뻐 보였다.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은 없나요?"
"음 이건 좀 확신을 할 수는 없는데, 가능하면 좋은 사람 말고 나쁜 사람을 좀 만나고 사귀어보세요. 서로 상쇄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요!"
"나쁜 사람이요?"
"예. 아까 말씀드렸던 '소시오패스'요!"
"예?"
윤주가 놀라서 쳐다보자 의사는
"아니다. 아니에요. 그건 좀 위험할 수도 있겠네요. 그냥 좀 쉬시고 변화가 있는지 여부를 내일 한 번 더 상담을 해보시는 게 좋겠어요. 내일 시간 되시죠?"
"예. 몇 시에?"
의사는 차트를 보더니
"오후 3시, 가능하세요?"
"예.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윤주는 진료실을 나왔지만 과연 내일 올 수 있을지 장담을 할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