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막 2장 - 실락원

5일 오후 - 실락원

by 이윤수

한참 후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부두에 정박되어 있는 중형급 유람선에 오른다. 사람들이 모두 오르자 배는 서서히 해변을 벗어나고 파도에 일렁이는 갑판 위로 하얀 제복과 모자를 멋지게 차려입은 선장이 나와서 안내를 한다.

“안녕하십니까? 걸리버 호에 승선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무인도 폭포 어드벤처를 떠나겠습니다. 총 소요시간은 4시간입니다. 잠시 후 하선을 하시면 계곡을 따라 산 밑 폭포까지 올라가게 되는 데 제일 먼저 폭포 위에 올라가서 아래의 호수로 다이빙을 하시는 분께 트로피와 함께 1등 상품을 드리겠습니다. 1등 상품은 나중에... 기대해 주십시오."

사람들은 웃으며

"알려줘! 공개해! 알려줘!"를 외친다.

선장은 웃으며 조타실로 들어가고 사람들은 기대감에 한층 흥이 난다.

잠시 후 배에서 내린 사람들은 그리 폭이 넓지 않은 계곡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물장난도 치면서 즐겁게 올라가지 욕심을 내서 무리하게 경쟁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윤주도 여자의 손을 잡고 둥근 자갈돌을 징검다리 삼아 계곡을 올라갔다. 조금 올라가니 '쏴아아-'하는 폭포 물소리가 들리고 밀림 사이로 물보라를 뿌리는 50 미터 정도 높이의 2단 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산 위에서 내려오던 맑은 강물은 절벽 위에서 낙하를 하다가 중간의 바위 턱에 한 번 부딪쳐서 물보라를 뿌린 후 다시 그 아래 호수로 쏟아져 내렸다. 하얀 커튼처럼 내리 뿌리는 폭포 수 아래의 호수 물은 어찌나 맑은지 파란 기운이 감돌았다. 태고의 자연의 모습 그대로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윤주와 여자가 호숫가에서 물에 발을 담그니 시원한 물과 폭포의 물보라가 일으키는 바람으로 온몸의 땀이 상쾌하게 식었다. 곁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이며 폭포 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올려다보니 어떤 남자가 20미터 정도 높이의 하단 폭포 바위 위에서 다이빙을 하려고 몸을 풀고 있었다. 잠시 망설이더니 팔을 모아 머리 위로 쭉 뻗고 발을 펄쩍 뛰어서 거꾸로 뛰어내린다. 멋진 포물선을 그리며 남자가 호숫물에 그대로 떨어지고 풍덩 소리와 함께 남자가 물속으로 사라진 곳에서 하얀 물기둥이 위로 솟구쳤다.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살펴보는 사이에 남자의 머리가 물속에서 불쑥 솟아 나오자 사람들은 환호성을 올리며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다.

그 남자가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며 호수가로 걸어 나오자 선장이 빙그레 웃으며 리본이 달린 트로피와 함께 대나무 바구니 하나를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남자가 바구니의 덮개를 벗기자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고개를 쑥 내밀며 '멍멍'하고 짖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상을 받은 것처럼 기뻐하며 박장대소했다.

사람들은 호수물에서 수영도 하고 물가에 앉아서 쉬기도 하고 주변의 나무 가지에 올라가기도 하다가 선장의 지시에 따라 다시 계곡을 내려가 배를 타고 해변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 윤주는 갑자기

'그런데 이 경비는 다 어디서 나오는 걸까? 나도 돈 한 푼 낸 기억이 없는데..'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뱃전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좀 물어요?"

그 남자는

"아니요. 그냥 한 두 마리... 재미로.."라며 옆의 양동이에 담긴 고기를 보여 주었다.

"오 꽤 굵네요! 솜씨가 좋으세요!"라고 윤주가 칭찬을 하니 남자가 어깨를 으쓱한다.

"여기 비용이 하루에 얼마예요? 꽤 많을 거 같은데요?"

그러자 남자가 조금 머뭇거리더니

"여긴 VIP 리조트 클럽이에요. 비용 없어요!"

"없어요? 그럼 클럽 가입비는요?"

"그것도 선발만 되면 무료예요!"

"무료요?" 윤주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자 남자는 별 걸 다 묻는다는 듯이 낚시도구를 챙겨서 선실로 들어가 버렸다.

나무 발을 바다에 세워 만든 부두에 배가 정박을 하고 사람들이 내리자 해변에는 저녁식사 준비가 되어있었다.

노을을 배경으로 와인잔을 들면서 먹는 해물 파스타 요리는 환상적이었다. 여자는 랍스터 구이를 먹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윤주가 와인잔을 들고

"건배!"라고 하면서 화이트 포도주를 한 모금 마셨다. 조금 떫드름한 포도주 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잔을 식탁에 내려놓으면서 윤주가

"참, 여기 어떻게 지원하고 선발되었어?'라고 물어보았다.

여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술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윤주의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했는데 분위기가 이상해질까 봐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서서히 어둠이 내리고 사람들이 하나 둘 숙소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윤주도 여자와 같이 숙소로 갔다가 여자가 샤워를 하는 동안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다른 숙소를 둘러보니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전등불이 밝혀져 있는 어느 숙소에도 TV가 없었다. 그래서 윤주는 좀 더 육지 쪽으로 가서 관리동처럼 보이는 곳으로 갔다. 몰래 출입구를 열고 들어가니 어느 한 방에 수없이 많은 모니터들이 한 벽을 가득 채우고 있고 한 사내가 그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무언가 조작을 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 모니터에는 윤주가 오늘 같이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보이고 있었다. 해변과 숙소 심지어 욕실과 침실까지도 여과 없이 다 중계되고 있었다.

남의 은밀한 사생활을 몰래 듣고 지켜보고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우월한 지위에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권력이자 쾌락이다. ‘2박 3일’과 ‘몰래 카메라’ 프로그램이 촉발하고 소위 ‘관찰 예능’ 프로와 ‘먹방’ ‘여행’ ‘음란’ 영상물이 엄청난 인기를 누리면서 대리만족과 관음증에 가까운 ‘병든’ 오락이 마약처럼 자극의 강도를 높여가다가 드디어 모든 금기와 절제력을 잃어버린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실시간 리얼리티 방송을 보는 사람들은 시간당 수신료를 내면서 대리 만족과 남의 사생활을 몰래 지켜보는 원초적 욕망을 채우고 있었고 그 수신료가 이 특급 리조트를 무료로 운영하는 비밀 재원이었다. 기기를 조작하는 사내 바로 앞에 있는 모니터에는 여러 숫자가 번쩍이며 바뀌고 있었는데 현재 시청자 수, 실시간 수입, 경비, 순이익 등이 나타나 있었다. 엄청난 인기와 수입이었다.

윤주는 살금살금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자신의 모습이 이제 모니터에만 보이고 송출은 차단되어 사라졌다는 것은 몰랐다.

숙소 문을 열면서 윤주는 소리쳤다.

"얼른 도망가요! 여기 이거 모두 생중계되고 있어요!"

그러나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여자는 태연하게

"알고 있어요. 그냥 모른 척하세요."라고 한다.

"안 돼요. 난 이렇게 중계되고 감시당하는 삶을 살 수는 없어요."

"그래요? 그럼 할 수 없군요. 당신은 스스로 행복을 포기한 거예요! 우리는 여기서 이렇게 즐겁게 살 거예요! 사생활? 자유? 그 까짓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이 안락한 삶을 포기할 만큼!"

여자는 탁자 밑에 숨기고 있던 권총을 꺼내 들고일어나 윤주에게 겨누었다.

윤주가 두려움에 뒷걸음을 치자 누군가가 뒤에서 억센 팔뚝으로 윤주의 목을 강하게 졸랐다.

목을 조르며 그 자가 윤주에게 속삭였다.

"가끔 쓸데없는 호기심으로 낙원을 망치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윤주 씨!

그냥 행복하게 인생을 즐기시기만 하면 되는데 왜 그러셨어요?"

윤주가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버둥대던 윤주의 발이 스르르 멈추고 바닥에 몸이 늘어졌다.

하루동안의 짧은 낙원이 사라졌다.

어차피 모든 것에 끝이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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