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막 2장 - 기쁜 우리 좋은 날

6일 오후 - 기쁜 우리 좋은 날

by 이윤수

신경정신과를 나온 윤주는 호기심이 발동해서 ‘오늘 한 번 끝을 보자’는 심정으로 회사로 가지 않고 '나쁜 사람'을 찾아 나섰다.

우선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범죄자들이었다. 그래서 교도소 근처로 가서 높은 담장과 철창 너머 죄수들의 마음을 '읽어'보았다.

그러나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그들은 대부분 '다정다감'한 사람들이었다. 공감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균보다 많은 편이었고 다만 그 감정을 조절하지를 못해서 문제를 일으키고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많았다.

다음으로는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고 살인도 서슴지 않도록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있는 군부대에 가 보았다. 하지만 그들도 역시 마음은 보통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그런 감정을 자제하는 훈련을 받았을 뿐이지 생활인으로서의 공감능력이 없어진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어려움을 같이 돕고 극복하는 끈끈한 전우애로 동료들과 더 깊은 공감을 하고 있었다.

예상과 다른 결과에 당황을 하며 이번에는 돈과 이윤을 위해서 사람들을 이용할 것 같은 대기업의 사장을 만나러 갔다. 사장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엄청나게 좋은 사업 아이템이 있다고 둘러대고 가까스로 만날 수 있었다.

"허, 인공지능과 관련해서 획기적인 사업구상이 있으시다고요?"

"예,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네트워크로 연결할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요?"

"제가 컴퓨터 프로그래머인데 정보만 제공하는 지금의 AI를 넘어서서 감정과 생각까지 연결하는 프로그램을 짤 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짜 오신 건 있으신가요?"

"아직이요. 지금은 구상 단계입니다."

"그래요? 그럼 좀 더 구체적으로 베타버전이라도 나오면 그때 한 번 더 오시지요."

사실 황당한 윤주의 제안이었지만 사장은 생각보다 관대하고 너그럽게 대우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사실은 제 방문 목적이 또 하나 있는데요.."

일어서서 나가려는 사장을 윤주가 불러 세웠다.

"뭡니까?"

"기업 사장님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인정사정이 없어야 하지요? 최대 이윤이 기업의 생존목표이니까요!"

사장은 다소 놀란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는다.

"예.. 물론 이윤을 내지 못하는 기업은 살아남을 수가 없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기업의 사장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노동자를 착취하고 소비자를 속인다고 오해를 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리석은 기업 경영자가 단기적인 시각으로 하는 짓입니다.

한 번 잘 생각해 보세요.

기업 이윤의 원천이 무엇입니까?

바로 노동자와 소비자입니다.

소비자가 진정 필요로 하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기업은 소비자의 외면을 받아 결국 이윤을 창출할 수 없습니다.

또한 원가에 들어가는 재화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분배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경영자도 자연히 도태되는 것이 자본주의 시장 경제입니다. 사욕으로 이윤을 추구하지만 그 결과가 합리적 결정과 다수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인 것이지요. 그리고 그 원가 속에는 노동자의 임금도 큰 비중을 차지하지요. 그런데 노동자나 직원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신명 나게 자신들이 가진 최대 능력을 발휘하게 할 수 없다면 그 기업도 발전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은 강제로 돈 만으로 움직여질까요? 물론 돈도 중요합니다. 공짜로 부려먹을 수는 없지요. 하지만 돈만 준다고 되는 건 아닙니다. 사장과 관리자와 직원이 모두 기업의 가치를 공유하고 구성원이 모두 공동운명체라는 일체감을 형성해야 그 기업은 장기적으로 성장을 하고 이익도 창출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경영자의 역할이며 공감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장의 다소 흥분된 열변을 듣다 보니 기업의 사장도 나름의 방식으로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감사를 표하고 문을 나서는 윤주는 의외의 결과에 다시 한번 깨달은 것이 있어서

이번에는 공감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호스피스 병동에 가 보았다.

"아닙니다. 여기서는 공감은 위험합니다.

매일 사람들이 죽어나가는데.... 그것도 며칠 전까지 자신의 손으로 보살피고 그들의 삶을 지켜본 사람들이 아쉬운 생을 그들의 꿈과 함께 허무하게 마감하는데 그때마다 우리가 일일이 공감을 한다면 도저히 버텨낼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는 절대적으로 냉정해야 합니다.

아니면 마음이 아파서 하루도, 한 순간도 견딜 수가 없어요."

공감에 대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는 윤주의 질문에 원장 수녀는 차분한 어조로 대답을 해주었다.

"그런데 어떻게 수녀님들이 이런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사람에 대한 봉사와 사랑이 충만하신 분들일 텐데.."

"아닙니다. 종교적 수행자들이 마음이 따뜻할 것이라고 흔히들 오해를 하시는데 사실은 스님, 신부님, 수녀님, 목사님들 중에 마음이 '차가운' 분이 더 많아요.

마음이 따뜻하고 공감을 많이 한다면 어떻게 독신생활을 유지할 수 있겠어요? 사랑에 빠져서 다 도망가지!"

이렇게 말하고 수녀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가볍게 웃었다.

윤주가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어안이 벙벙해하자 수녀가 다시 정색을 하고

"수행에 필요한 열정과 신앙적 사랑은 세속적 공감이나 사랑과는 부류가 다릅니다.

너무 열정적인 성직자는 사실은 종교로 돈을 벌고 장사를 하는 사이비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윤주 씨가 생각하는 그런 인간적 공감을 찾으시려고 여기 오셨다면 그건 잘못 오신 겁니다. 안녕히 가세요!"

수녀는 말을 마치자 쌀쌀맞게 일어서서 긴 망토자락을 휘날리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렸다.

윤주는 그 수녀에게서 얼음보다 더 시린 차가움을 느꼈다. 자신의 마음이 들어갈 한 치의 틈도 보이지 않았다. 몸을 추스르고 덜덜 떨면서 윤주는 호스피스 병동을 나왔다. 그 추위는 단순히 겨울 찬 바람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느덧 밤이 깊어 사방이 어두워졌다.

윤주는 과연 누가 '착한 사람'이고 누가 '나쁜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마침 여친 선옥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어디야?

오늘 나랑 데이트 약속한 거 잊었어?

이제 내 생각은 하지도 않는 거야?

이럴 거면 우리 당장 헤어져!"

남의 속도 모르고 남의 사정도 모르면서 자기 생각만 하고 또 '다다다다...' 쏘아대는 선옥이 오늘은 밉거나 서운하지가 않았다.

"응. 미안해. 금방 갈게. 조금만 더 기다려!"

전화를 끊고 윤주는 환하게 웃으면서 선옥을 만나러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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