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 종놈
“윤주야!"
마당을 쓸고 있는 윤주에게 서방 도련님이 다가온다.
"예. 도련님! 편안히 주무셨습니까?"
윤주가 싸리비를 두 손 앞으로 모아 잡고 꾸벅 인사를 한다. 나이는 윤주보다 10살이나 어려서 새파란 것이 말을 배울 때부터 윤주에게 하대하던 것이 버릇이 되어서 평소 같으면 본척만척 지나치거나 '이 놈아'라고 부르거나 기분이 좋아야 '마당쇠야'라고 불렀을 텐데 오늘은 다정하게 이름을 부른다. 윤주는 그 이유를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모른 척하고 다시 마당을 쓸기 시작한다. 먼지가 최 서방 쪽으로 날아간다. 그래도 그는 화를 내지 않고 부드러운 어조로
"아니, 마당만 쓸고 있으면 어떡해? 얼른 아침 먹고 동헌에 출두해야지!"
"그래도 마님께서 아침마다 식전에 마당을 쓸라고 하셨는데..."
"아니야. 괜찮아. 내가 다 이야기할 테니까 얼른 들어가서 아침 먹어."
최 서방은 윤주가 들고 있던 비를 빼앗다시피 낚아채고 윤주의 등을 떠다민다. 윤주는 주춤주춤 문간 방 옆 봉당으로 걸어간다. 그러자 최서방이 윤주 앞을 막아서며
"아니야 오늘은 봉당에서 먹지 말고 서방에 가서 먹어."라고 하더니 서방 쪽을 향해서
"여보! 아침 다 차렸오?"라고 소리 지른다.
그러자 낮은 담장 너머로
"예. 다 됐어요!"라고 새 아씨가 대답한다.
"아이고, 안 됩니다. 그냥 봉당에서 먹을래요. 대감마님 아시면 경을 칩니다."
윤주가 뒷걸음을 치자
"어허, 괜찮다니까 그러네. 잔말 말고 어서 따라와."
최 서방이 앞장을 서고 윤주가 마지못해 뒤 따라간다. 서방과 안채를 가르는 작은 쪽문을 지나니 새 아씨가 문이 열린 방 안에 상을 차려놓고 막 돌아서는 참이다. 윤주는 새 아씨가 어려워 감히 인사말도 못 하고 허리만 깊이 숙여 인사를 하고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고개를 푹 숙이고 툇돌 앞에 서 있다. 최 서방이 먼저 툇돌 위에 올라서서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가면서
"올라와. 어려워 말고.."라며 윤주에게 들어오라고 권한다.
새 아씨와 엇갈리며 방에 올라 선 윤주는 상 앞에 어정쩡하게 주저앉는다.
"자, 편히 앉아서 많이 먹어!"
최 서방이 권하는 상 위에는 하얀 쌀밥이 큼직한 사기 밥그릇에 고봉으로 수북하게 넘칠 듯이 담겨있고 고깃국에 고등어자반과 김, 참나물까지 진수성찬으로 차려져 있고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시장기를 돋운다.
"그런데 사또께서 물어보면 뭐라고 해요?"
숟가락을 들며 윤주가 마주 앉아 있는 최 서방에게 물어보자
"너는 어제 내가 시키는 대로만 말하면 돼. 이미 어느 정도 소명을 해 놓았으니까 형식적으로만 심문을 할 거야."
"아, 예!"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 윤주는 부지런히 밥을 먹는다. 태어나서 가장 푸짐하고 맛있는 밥을 먹는 것 같다. 윤주가 허접지겁 밥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최 서방은 천천히 일어서서 밖으로 나간다.
"나는 사랑채에 먼저 가 있을 테니 밥 먹고 아버지 뵙고 가라."
"예."
윤주는 대답을 하고 마저 밥을 먹는다. 잠시 후 새 아씨가 숭늉을 대접에 담아서 내 온다. 남편이 없는 걸 보고 잠시 주저하다가 대접을 윤주 앞 밥상 위에 올려놓고
"고맙네!"라고 작은 소리로 말하고 물러난다.
윤주는 대답을 못하고 고개만 다시 숙인다. 누룽지가 섞인 구수한 숭늉까지 다 비우고 윤주는 그득해진 배를 두드리며 사랑채로 향했다.
"대감마님!"
윤주가 마당 한가운데에 서서 사랑채를 바라보며 최 참판을 부르자 사랑방의 한지 창호문이 열리고 최 참판이 상체를 내민다. 방 안에 앉아 있는 최 서방과 눈길이 마주친다.
"그래, 아침은 먹었느냐?"
"예, 대감마님!"
"그럼. 가 봐라. 네 수고 잊지 않으마."
"예. 그럼..."
윤주가 뒷걸음으로 두어 걸음 물러나온 후 돌아서서 대문을 나선다. 대문턱을 넘으려고 발을 드는데 신고 있던 짚신이 바닥에 툭 떨어진다. 뒤축이 닳아서 너덜너덜하다. 윤주는 돌아서서 떨어진 짚신을 집어 들고 문간방으로 들어가서 시렁에 걸려있던 새 짚신을 벗겨 발에 꿰찬다. 윤주가 다시 마당으로 내려서려는데 행랑채 부엌에서 소반을 들고 나오던 선옥과 눈이 마주친다. 선옥의 표정에 근심이 가득하다.
"조심해..."
선옥은 닫힌 사랑방 문을 흘낏 쳐다보더니 남들이 듣지 못하게 낮은 소리로 윤주에게 말을 건넨다.
"응, 별 일 있겠어? 걱정 마."
윤주는 짐짓 호기를 부리며 대문을 나서서 동네를 끼고 흐르는 유양천을 따라 걷다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불곡산을 바라보고 오르막 길을 올라간다. 천변에는 빨래를 하는 아낙들이 보이고 길 좌우로는 낮은 돌 담장이 둘러쳐진 초가집들이 줄지어 있다. 담장은 어깨 높이도 되지 않아서 집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하지만 짚을 얼기설기 엮어 덮어놓은 지붕이래 봐야 어른 키 높이를 겨우 넘는 한 두 칸짜리 초가집은 거의 비어있다. 어른들은 들 일을 하러 나가고 아이들도 놀러 나가서 인기척이라고는 흙 마당 멍석 위에서 새끼를 꼬거나 고추를 다듬는 노인네들 뿐이었다. 그중 한 노인은 웃통을 벗고 앙상한 갈비뼈를 드러낸 채 옷자락을 헤쳐 솔기에 숨어있는 이와 벼룩을 찾아 손톱으로 눌러 죽인 후 하얀 서캐를 털어내고 있고 그 옆의 노파는 살이 고운 참빗으로 머리를 빗으며 손으로 머릿니를 골라내고 있었다.
양주 관아로 다가갈수록 담장의 높이가 점점 높아지고 지붕에 기와를 인 제법 큰 집들이 많아진다. 아전과 양반들의 집이다.
잠시 후 불곡산을 살짝 비튼 배경으로 하며 외삼문 누각이 나타난다. 높은 돌 주춧돌과 이층 누각이 위엄을 자랑하며 사람들을 압도하여 보기만 해도 주눅이 든다. 윤주가 누각 아래 출입문으로 다가가자 문을 지키고 있던 포졸이
"뭔 일이냐?"라고 용건을 묻는다.
"최 참판 댁 종입니다. 오늘 심문이 있어서.."
"알았다. 기다려라."
삼지 창을 든 포졸 한 명이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서
"따라와."라고 명령을 한다.
윤주는 겁을 잔뜩 먹은 채로 주변을 살피며 포졸의 뒤를 따라 사령청과 내삼문을 지나 동헌에 다다랐다. 동헌은 마당에서 보면 가슴 높이의 섬돌 위에 기초를 두고 높다랗게 솟은 아홉 칸 팔작지붕 건물로, 한참을 올려다보아야 하는 위용 있는 건물이었다.
건물 한가운데 대청마루에 놓인 팔걸이와 등받침이 높은 의자 위에는 관복을 차려입은 사또가 정좌해 있고 좌우에는 조금 작은 갓을 쓴 아전들이 侍衛 하고 있다.
마당 좌우에는 주리를 틀거나 곤장을 치는 형틀이 삼엄하게 놓여있다.
보기만 해도 겁이 나서 오금이 저리고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하며 사지에 힘이 빠진다.
앞서 가던 포졸이 창 자루 무딘 끝으로 윤주의 오금을 툭 친다. 그 서슬에 윤주는 땅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는다.
"죄인은 고개를 들라."
아전 하나가 소리를 지른다. 윤주가 고개를 들자 사또가 나지막하게 곁의 아전에게 무엇이라고 속삭인다. 그러자 그 아전이
"이름과 생년을 고하랍신다."라며 큰 소리로 전한다.
"임술생 강윤주라고 합니다."
윤주가 중얼중얼 말하자 옆에 서 있던 포졸이 창 자루로 윤주의 어깨를 치며
"큰 소리로 아뢰어라."라고 시키지도 않은 과잉 충성을 한다.
윤주가 다시 목소리를 높여
"임술생 강윤주이옵니다."라고 반복을 하자 다시 사또가 뭐라고 속삭이고 아전이 통성전언을 한다.
"네가 최참판 댁 종이 맞는지 물으신다."
"예. 맞습니다. “
"네가 사흘 전 밤 술시경에 기방 앞에서 박 첨지네 자제를 상해한 사실이 있느냐?"
"예."
"그 이유가 무엇이냐?"
"그 댁 자제가 저희 댁 도련님을 모욕했다고 해서 복수를 했습니다."
윤주는 최 서방이 사전에 지시받은 대로 거짓말을 한다.
"그 사실은 어떻게 알았느냐? 최기립이 사주를 했더냐?"
"아닙니다. 제가 소문에 듣고 자발적으로 한 일입니다."
"박종수는 범인이 네가 아니라 최기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녕 네가 범행을 한 것이 맞느냐?"
"예. 그렇습니다."
"그날 박종수가 본 것은 자신을 해한 자가 최 참판의 집으로 도망을 간 것뿐이다. 그게 너라는 것을 어찌 입증을 하겠느냐?"
"...."
"최기립이 박종수와 기생 월향을 사이에 두고 평소에 질투가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느냐?"
"모릅니다."
"그럼 최기립이 그날 투전판에서 박종수에게 돈을 잃고 속임수를 썼다고 해서 두 사람이 말다툼이 있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더냐?"
"예. 금시초문이올시다."
"범인이 최기립이라는 주장에는 증거가 없고 네가 진범이라고 자백을 하니 이 사건은 너의 소행으로 치부하겠다.
너는 윗전의 원한에 복수를 했다고는 하나 종놈의 신분으로 주제넘게 양반의 일에 사사로이 관여하고 더욱이 양반의 신체에 상해를 가했으니 그 죄가 막중하다."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네 놈의 죄는 극형이 마땅하나 죄를 인정하고 뉘우치는 정을 참작하고 개인적 원한이나 욕심에 의한 범행이 아니며 잘못된 충성심의 발로인 점과 최 참판의 청을 감안하여 곤장 20에 처한다.
이 놈을 당장 형틀에 결박하여 매우 쳐라."
명이 떨어지자 사령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윤주를 T자 모양의 널빤지에 엎어 놓은 후 양 손목과 발목을 오랏줄로 묶고 바지를 벗겨서 엉덩이를 노출시킨다. 잠시 후 '하나요, 둘이요'를 외치며 집행사령들이 곤장으로 윤주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내려친다. 금세 맨살이 터지고 피가 줄줄 흐른다. 뇌물도 바치지 않았고 후환도 없을 죄인이니 사령들은 인정사정 봐줄 것이 없다. 오히려 그동안 돈 받고 봐준 죄인들에 대한 결백이라도 주장하려는 듯 힘껏 두드렸다. 윤주는 뼈를 가르며 온몸으로 퍼지는 엄청난 통증에 벼락을 맞은 듯 처음 한 두 대에 벌써 비명을 질렀고 20대가 될 때에는 아예 기절을 해버렸다.
사령은 기절하여 형틀 위에 엎어져 있는 윤주의 머리에 찬 물을 한 바가지 끼얹었다. 윤주가 조금 정신을 차리자 결박을 풀고 부축을 하여 끌고 나와 외삼문 밖 공터에 던지듯이 내팽개쳤다.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행랑아범이 윤주를 부추겨 집으로 데리고 가려고 했으나 살이 터지고 근육마저 만신창이로 헤어진 윤주의 엉덩이 상태로는 도저히 걸을 수도 부축을 할 수도 업을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행랑아범이 근처의 소달구지를 수소문하여 윤주를 엎드려 태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니 최 참판과 최 서방은 모른 척 고개도 내밀지 않고 행랑어멈과 선옥만 윤주를 맞아 양 겨드랑이를 부축하여 문간방에 눕혔다. 등을 대고 누울 수도 없어서 엎드린 자세로 엉덩이의 피떡을 대충 닦아내고 상처에 된장을 으깨어 붙였다. 비는 멈추었지만 욱신거리는 통증은 가시지 않고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는 장담할 수가 없었다.
"아구구구..."
연신 신음소리를 내는 윤주를 보면서 세 사람은 근심 어린 대화를 주고받는다.
"아이고 이를 어쩌나? 숭한 놈들이 모질게도 두드렸나 보네! 이래 가지고 사람이 살아남겠나?"
"그러게 곤장 50이면 즉사하고 20에도 장독이 나면 죽는다는데 이거 큰 일이네..."
"아이고 짓지도 않은 남의 죄를 뒤집어쓰고 맞아 죽게 생겼으니 분통이 터져서 어찌할고?"
"이 사람아! 큰일 날 소리 지껄이지 말고 얼른 나가서 일이나 봐. 함부로 주둥아리 놀렸다가 사달내지 말고... 알아들었어?"
행랑아범의 호통에 어멈은 기가 죽어서 밖으로 나가고 곧이어 아범도 혀를 '쯧쯧 '차며 일어나서 밖으로 나간다.
선옥이 된장으로 덮인 상처부위를 광목천으로 감는다. 윤주가 다시 신음소리를 내자 선옥이 잠시 멈추었다가
"좀만 참아"라며 달래고 천을 마저 여몄다.
"단단히 묶을 수도 없네. 대충 덮어놓았다가 나중에 다시 다독여야겠어."
윤주가 대답대신 "끄응"하고 신음 소리를 낸다.
그런 윤주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선옥이
"우리 도망갈까? 네 말대로 어디 산속에 들어가서 화전을 부쳐먹더라도 이렇게 사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윤주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선옥의 눈을 보며 팔을 뻗어 선옥의 손을 잡는다.
두 사람이 말없이 이심전심으로 동의한다.
"그래. 너 몸 좀 추스르고 나아지면 어디든 가자. 나도 결심했어. 우선 미음 좀 끓여 올 테니까 그대로 좀 있어."
선옥이 말을 마치고 일어서자 윤주가 가냘프게 "응"이라고 대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