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1부 6장 출발

by 이윤수

6 장 출발


명수는 인사과장과 간단히 면담을 하고 몇 가지 서류를 작성한 후에 바로 지급받은 작업복으로 갈아 입었다. 작업복은 얇은 녹색 나일론 천으로 된 단순한 새마을 복 스타일로 소매와 앞 섶은 큰 단추로 여미고 양쪽 가슴과 허리춤에 각각 주머니가 하나씩 달려 있었다. 같은 재질과 색깔로 된 작은 챙 달린 작업모와 흰 민바닥 운동화도 지급 받았다.

"자, 그럼 여기 작업반장 따라서 현장으로 가면 돼. 교육은 실습 위주로 할거니까 금방 배울거야."

명수는 인사과장이 소개한 반장을 쫒아서 출입문의 맞은편에 있는 작업장 입구로 들어갔다. 작업장은 사무실보다 더 밝아서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그리고 투닥투닥 뭔가 딱딱한 물체들이 부딪히는 소리, 윙윙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와 사람들의 말소리가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뒤섞여서 정신을 쏙 빼놓을 것만 같았다.

또 뭔가 비닐 같은 것이 타는 듯 매캐한 냄새도 심하게 나서 코와 목이 매웠다.

벽 끝까지 통으로 터진 엄청나게 넓은 작업장은 한 줄로 늘어 선 긴 작업대가 여러 줄 나란히 이어져 있고 작업대 위에는 갓을 쓴 형광등이 줄지어 환한 빛을 내고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작업대 양 쪽에 서서 분주히 손을 놀리고 있었다.

다부진 체격의 반장은 그 중 한 작업라인이 시작되는 곳으로 다가갔다. 라인 앞에는 작은 모니터와 함께

'안전제일'

'오늘 불량률 00'

'무사고 365일' 등의 구호 표지판과 '조립3라인'이라는 명판이 위쪽에 걸려있었다. 반장과 명수가 가까이 가자 안경을 쓴 호리호리한 체격의 젊은 여자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힐끗 쳐다본다. 그러자 반장은 여자의 눈인사에 답이라도 하듯

"강 조장, 신입."이라고 한마디 하더니 바로 돌아서서 작업대들 사이로 어디론가 잰걸음으로 가버렸다.

여자도 길게 말할 여유도 없는 듯 "이름?"하고 짧게 명수에게 물었다.

"김 명수라고 합니다."

"명수? 응. 난 강 조장이라고 부르면 돼. 이리 따라 와."

명수는 강 조장이 이끄는 대로 작업라인의 시작 부분에 있는 한 작업대에 올라섰다.

"오늘 처음이니까 제일 쉬운 것 부터 하자. 자, 간단해. 먼저 왼 손으로 여기 통 안에 있는 판을 꺼내서 여기 작업대에 올려 놓고 오른 손으로 위에 걸린 에어드라이버를 잡은 다음에... 이렇게! 다시 왼 손으로 여기 통 속에 있는 나사를 이 판 위의 구멍에 넣고 드라이버로 꾹 누르면 돼. 이렇게!"

조장이 설명을 하며 시범을 보이자 나사는 '씨이잉--"하며 판에 박혔다.

얼핏 보니 재미 있어 보여서 명수가 빙그레 웃자

"쉽지? 한 번 해봐."라며 스프링과 호스로 천장까지 연결된 에어드라이버를 명수에게 건네주었다. 명수는 에어드라이버를 받아들고 조장에 한 그대로 해 보았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나사는 구멍에 다 박히지 않고 드라이브 비트가 '피리리--'하면서 나사 머리를 헛돌기만 했다.

"생각만큼 쉽지 않지? 자 잘 봐! 드라이브 비트는 자석이라서 나사를 왼 손으로 잡고 있을 필요는 없어. 그냥 비트에 살짝 꽂아주고 구멍에 댄 다음 수직으로 위에서 내려찍듯이 눌러주면 돼. 그리고 너무 세게 누르면 나사 대가리가 망가지니까 지그시 누르면 돼. 하다 보면 금방 요령이 붙을 텐데 좀 익숙해지면 오른 손 엄지로 드라이버 방아쇠를 누를 때 처음엔 끝까지 세게 눌렀다가 나사가 거의 다 들어갔다 싶으면 살짝 반 정도 힘을 빼! 그러면 나사 대가리도 안 망가지고 비트도 오래 쓸 수 있고 속도도 빨라서 좋아. 자 다시 해 봐."

설명대로 하자 이번에는 바로 나사가 꼭 박혔다. 신기했다.

"됐지? 그렇게 하면 돼. 조립이 된 건 가운데 벨트에 올려놓고.."

작업대 중앙에는 두 뼘 정도 되는 고무벨트가 오른 쪽으로 물 흐르듯이 움직이고 있었고 그 위에는 일부 조립된 전자 부품들이 놓여서 다음 공정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다른 작업자들은 벨트에서 자기 앞으로 다가오는 부품을 내려서 각자의 공정을 처리한 다음 다시 벨트 위에 올려놓았다. 부품들은 갈수록 다른 부품들이 덧대어져서 크기와 모양을 갖추어갔다. 그러나 작업자들은 그것이 어디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벨트 위에서 자신의 물량이 밀리지 않도록 부지런히 손을 놀릴 수밖에 없었다.

잠시라도 딴 생각을 하거나 손을 게을리 하면 물량이 밀려서 조장이 와서 다그치고 혹시 실수라도 해서 라인 끝 검수대에서 걸리면 갑자기 붉은 경광등과 함께 '삐용삐용'하는 불량 경고음이 울리면서 그 라인 전체 벨트가 멈추고 조장과 반장이 득달같이 달려 와서 난리가 난다. 누가 실수를 했는지는 찾지 않아도 된다. 어느 부분에서 불량이 났는 지만 보면 누가 한 작업인지도 바로 밝혀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 종일 기계처럼 반복되는 지루한 작업이지만 작업자들은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그나마 시끄럽지만 빠른 템포의 가요가 무미건조한 작업에 위안과 벗이 되고 2 시간에 한 번 씩 돌아오는 짧은 휴식 시간과 간식시간 그리고 식사시간이 유일한 낙이다

명수도 금세 적응이 되어서 하루가 채 다 가기도 전에 처음 맡은 쉬운 공정은 제법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조장과 반장도 가끔 와서 명수가 하는 일을 어깨 너머로 살펴보더니 만족한 듯 별 말 없이 돌아갔다.

간식으로는 크림 빵과 팩 우유가 나왔고 저녁엔 카레 라이스가 나왔는데 꽤 먹을 만 했다. 간식과 휴식은 작업장에서 빈 박스를 깔고 앉아서 때우고 식사는 작업장에 잇대어 있는 구내 식당에서 먹었다.

다른 작업자들도 새로 들어 온 명수를 대수롭지 않게 그냥 같이 일하는 사람으로 대했다. 어차피 대부분 서로 잘 알지도 못하고 길게 이야기를 할 사정도 안 되니 그냥 안면만 알고 지내는 탓도 있지만 같은 복장 같은 일을 하는 묘한 동질감의 힘인 것도 같았다.

"집에 안 가고 다 여기서 밥 먹어요?"

명수가 옆에 앉은 다른 작업자에게 물어보았다.

"응? 신입? 요즘은 일이 많아서 2 시간 잔업은 기본이야. 출근해서 오전 4 시간 하고 점심 먹고 오후 4 시간 하고 저녁 먹고 잔업 두 서 너 시간하면 집에 가서 잠 자고 아침먹고 또 출근하고..그런거지 뭐!" 몸이 좀 뚱뚱한 아줌마가 밥을 한 술 가득 입에 넣으면서 대답했다.

"힘들지 않아요?"

"힘들기는... 철야 안 하면 다행이지."

"철야요?"

"응, 바쁠 때는 철야도 하지. 야식도 나오고 수당도 2 배니까 힘들긴 해도 나쁘진 않지. 잔업과 휴일은 1.5배!"

"그래도 너무 고되겠어요."

"어차피 집에 가봐야 쉴 틈이나 있나? 가봐야 집 안 일 또 해야하고 그냥 공장일 하는 게 더 나아. 공장에서 일하면 돈이라도 벌지. 총각도 집에 가봐야 놀기밖에 더 하겠어?"

"전 집도 없어요. 오늘 올라와서..."

"그래? 그럼 기숙사에 넣어달라고 그래. 그럼 출퇴근 안 해도 되고 편하겠네. 돈도 절약되고. 나가면 방세 내고 이리저리 새는 돈이 많아."

"글쎄요. 누나랑 같이 살아야 해서..."

"그래? 그럼 알아서 해. 우리 집 근처에 방 세 놓는 집 있는지 알아봐 줄까?"

"예. 그럼 고맙지요.. 한 번 알아봐 주세요."

"알았어. 오늘은 기숙사에 자고 내일이나 모레 내가 알려줄께."

"감사합니다." 걱정했던 취업과 숙식이 한꺼번에 술술 풀리는 것 같아서 명수는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꾸벅 고개를 숙여서 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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