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장 아픔
아줌마가 소개를 해 준 월세 방은 함석지붕에 벽돌로 만든 허름한 단층집이었다. 방이래야 달랑 2개뿐인데 큰 방에는 주인 내외가 살고 작은 방을 세를 놓았는데 작은 방에는 부엌도 따로 없이 방 문 앞 툇마루 아래에 연탄아궁이와 자그마한 부뚜막이 전부였다. 반찬도 마루 아래 작은 찬장에 보관을 해야 했고 방 안의 가구도 전혀 없어서 알루미늄 틀에 비닐 천을 씌운 옷장 겸 이불장을 사와야 했다. 마당 한 편에 수도와 세면대 겸 빨래터가 있고 대문간에 재래식 야외변소가 있었다.
그래도 상도동과 동작동을 잊는 가막재 인근 달동네라 멀리 한강이 내려다보이고 특히 밤에는 서울 도심의 불빛이 화려해서 밤낮으로 경치가 좋았다. 교통도 나쁘지 않아서 명수와 명자 둘 다 버스 한 번에 금방 구로와 종로에 있는 일터로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돈을 벌어서 아버지 눈치를 안 보고 독립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기뻤다. 이게 자유고 이게 어른이 되어서 좋은 거로구나 하고 으쓱해졌다.
주인아저씨는 무슨 트럭 운전을 한다는데 거의 얼굴을 볼 수도 없었고 주인아줌마는 서울 깍쟁이 같이 생기기는 했지만 전기 물 아껴 쓰라는 말 외에는 별로 잔소리를 많이 하지는 않았다.
"어때? 괜찮지?" 명수가 명자를 데리고 와서는 방문을 열면서 물었다.
"응. 좋네!" 명자도 방 안에 들어서서 함박 웃음을 지으면서 좋아했다.
"월세는?"
"월 5만원이야. 내 월급으로 충분히 되니까 걱정하지마."
명수는 자기가 드디어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두 사람은 잠시 방안에 나란히 앉아서 방문을 열고 멀리 한강 다리를 지나가는 차들의 행렬을 바라보며 말없이 감상에 젖었다.
"야, 며칠 사이에 엄청난 일이 일어났지 않았어? 서울 올라와서 취직하고 방 얻고 이렇게 자리잡고..이제 서울 생활 시작이다."
"그래 아직도 얼떨떨한게 정신이 하나도 없다만 암튼 대단하다. 수고했어."
"수고는 뭐...내 말대로 올라오길 잘했지? 이제 다 잘 풀릴거야."
"그래 그랬으면 좋겠다. 너 일은 할만해?"
"응. 괜찮아. 좀 힘들긴 해도 내가 돈을 벌고 한 몫을 한다 싶으니까 신나. 누나는?"
"응...응? 나? 나도 괜찮아."
명자가 말 끝을 좀 흐린다.
"왜? 힘들어?"
"아니 그냥 아직 익숙하지 않으니까 그렇겠지...근데 나도 너 다니는 공장에서 일하면 어떨까?"
"공장 일? 그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아. 말이 그렇지 하루 10시간 넘게 같은 동작만 계속 해봐. 지겨워 죽는다.웬만하면 거기서 버텨 봐. 무슨 한 식당이라매? 거기서는 중노동이야 안 하겠지!"
"그래? 그렇겠지? 알았어. 좀 더 두고 보지 뭐. 너 출근해야지. 얼른 밥 먹고 가. 난 저녁 때 나가고 넌 아침에 나가니까...서로 출퇴근 시간이 달라서 얼굴 보기도 힘드네.."
명자는 말은 이렇게 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당장이라도 그만 두고 공장 일을 하고 싶다. 처음엔 명수가 생각하듯이 그냥 주방 보조를 하는 줄 알았는데 사장이 자꾸만 룸에 집어넣는 게 거북했다. 말은 음식이나 술을 주방에서 룸으로 배달하는 것이었지만 한 번 룸에 들어가면 음식만 두고 바로 나오기가 쉽지가 않았다.
손님들이 농을 걸기도 하고 손목을 붙잡아 주저앉히기도 하고 술을 따르라고 강요를 하기도 하는 통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여 대충 얼버무리고 나오긴 하지만 손님들은 룸에서 시중을 드는 아가씨와 룸을 들랑거리는 아가씨를 구분할 줄을 몰랐다.
어제도 한 손님이 짓궂게 지나가던 명자의 엉덩이를 툭툭치며
"아가씨, 얼굴만 이쁜게 아니라 엉덩이도 섹시한데..."라고 치근덕대서
명자가 "왜 이러세요?" 라고 하면서 손을 뿌리쳤고 그러자 손님들 뿐만 아니라 룸에 있던 다른 아가씨들도
"야, 왜 그래? 손님한테! 저게 신참이라 아직 예법을 몰라요. 자자 분위기 싸해졌네. 제가 교육 단단히 시킬테니 화 푸시고 제 술 한 잔 받으세요. 넌 얼른 나가 봐."라고 짜증을 냈다.
그래서 오늘도 출근을 하기가 께름칙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출근을 하자마자 사장에게 불려가서 혼이 났다.
"너 어제 손님한테 결례했다며?
안 그래도 벼르고 있었는데 너 자꾸 그따위로 하면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서비스업이란 게 뭐야? 손님을 즐겁게 해줘야 할 거 아니야? 네가 그렇게 잘 났어?
손님들이 네 기분 맞춰주려고 비싼 돈 들여 여기 왔겠냐? 월급을 받으려면 그만큼 서비스를 해 드려야지, 그게 프로 정신이야. 알았어?"
"저, 사장님. 죄송한데 전 아무래도 여기 적성이 아닌가 봐요. 그냥 그만두면 안 될까요?"
사장은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바뀐 것 처럼 양미간을 좁히고 험상궂은 표정으로 명자를 똑바로 꼬나보며 소리를 지른다.
"뭐? 그만 둬? 얘가 보자보자 하니까 정말 안되겠네! 너, 내가 너한테 그동안 돈을 얼마나 들인지나 알고 그 따위 소리야. 소개비 나갔지, 옷 값, 화장품 값, 밥 값하며 그게 다 얼만지나 알고 그딴 소리야. 그만 두려면 그 돈 당장 다 갚고 나가."
"...."
명자가 죄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을 못하고 서 있으니까 사장은 전화기를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잠시 후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
"어이, 박 상무. 얘 이거 도저히 안 되겠네. 도로 데려가든지 교육을 시켜서 데리고 오든지 해.....
응, 명자, 얼마 전에 온 얘.....
응 얘가 완전히 꽉 막혔어.....
어...어... 알았어."
전화를 끊고 사장은 명자를 방에다 두고 휙 찬바람을 날리며 휙 '탕' 소리가 나도록 방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어쩔 줄을 몰라서 명자는 방 안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데 한참 후에 박 상무가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명자야, 명자야! 너 서울살이가 그리 쉬울 줄 알았나?"
박 상무는 명지를 지그시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단단히 혼이 날 것을 예측했던 명자는 박 상무의 이런 예상치 못한 반응이 은근히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
명자가 대꾸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자
"나 좀 따라 와라. 좀 보여줄 게 있다."
"뭔데요?"
"글쎄, 가 보면 알아. 그 한복 벗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 입고 나와."라고 말하며 문을 열고 먼저 나가 버린다.
명자는 하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따라 나선다.
아가씨들이 대기실 겸 탈의실 겸 휴게실로 쓰는 방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화장을 고치며 앉아 있던 몇몇 여종업원들이 들어서는 명자를 힐끔 쳐다보고는 별 말 없이 하던 짓을 계속한다.
"저 박 상무님 따라 잠시 나갔다가 올게요."
명자가 누구에게 라고 할 것도 없이 인사를 하자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좀 머쓱해진 명자는 얼른 옷을 갈아입고 나선다.
그러나 '언니'들이 의미심장한 눈짓을 서로 주고받는 것은 눈치 채지 못했다.
박 상무는 예의 그 검정색 그랜져 차 운전석에서 창문을 열어놓고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고 있었다. 명자가 뒷 문을 열려고 하자
"앞에 타." 라며 손을 뻗어서 조수석 문을 열어준다.
명자가 멈칫 멈칫 주저하며 차에 오르자 차는 바로 종로 북 쪽 길로 접어들어서 청량리 역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차는 큰 길을 벗어나 조금 후미진 일차선 길로 접어들었다. 박 상무는 차를 인도 쪽 길가로 바짝 붙인 후 거의 사람이 걸어가는 속도로 천천히 운행을 한다.
"저기 좀 봐 봐.."
박 상무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무슨 가게들이 길가에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그런데 가게 전면을 차지한 유리 진열장 안에는 여자들이 대여섯 명씩 화려한 색상의 얇은 드레스를 입고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거나 서 있었다. 모두 다 하나 같이 분홍색 각광 조명을 받고 있어서 얼핏 봐서는 마네킹을 진열해 놓은 것 같았지만 이내 그들이 움직이며 웃거나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지나가던 남자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환하게 웃으며 손짓으로 들어오라고 유혹을 하기도 했다.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놀란 명자가 입을 반 쯤 벌리고 몸을 옴추리며 두 손을 가슴께에 모으고 눈이 휘둥그레 쳐다보고 있자니
"여기가 그 유명한 미아리다. 아가씨들 예쁘지?"
"아...네..." 아닌게 아니라 화장발인지 조명발인지 몰라도 가게 진열장 안의 여자들은 대부분이 늘씬하고 예뻐보였다.
"여기 아가씨들이 하루에 손님을 몇 명이나 받는 줄 알아?"
"손님이요?"
"그래. 여기는 밥도 술도 없이 그냥 바로 하는 곳이야. 보통 1차 식사, 2차 술 그리고 3차로 오는 곳이지."
명자도 이제 그게 무슨 말인지 어느 정도 짐작이 되어서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 모습을 힐끗 쳐다보고는 박 상무가 말을 이어간다.
"하루에 대략 너 댓 명이야. 매일.."
"매일이요?"
"그래."
"어떻게 그게..."
"응, 가능해. 여기서는 다들 그렇게 살아."
"...."
명자는 더욱 놀라서 할 말이 없다.
그렇게 엇비슷한 가게가 얼마나 많은지 마치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 같았다.
차는 조금 속력을 내서 좁은 길을 벗어나서 다시 큰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자 청량리 역 광장이 보이고 그 옆에 백화점과 높은 건물들이 불쑥 나타나 갑자기 딴 세상에 들어선 것 같았다.
여기가 조금 전에 봤던 그 곳과 같은 서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오고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고 생기에 넘쳤다.
"봤어? 여기에 비하면 네가 지금 일하는 곳은 신사야.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손님들도 점잖고 대우도 그만하면 괜찮은 거야."
박 상무는 차를 계속 어디론가 몰고 가면서 말을 했다.
"그래도... 저는 좀... 저 혹시 동생이 있는 공장에서 일해서 돈은 천천히 갚으면 안될까요?'
박 상무는 갑자기 차를 길 가에 세우더니 정색을 하고 명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화가 난 어조로 크고 빠르게 소리를 질렀다.
"야! 너 정말 말 귀를 못 알아듣냐? 너 갚아야 할 돈이 자그마치 2백이 넘어. 공장? 그 쥐꼬리 만한 월급 받아서 언제 다 갚을래? 그리고 사장이 널 언제 봤다고 뭘 믿고 돈도 안 받고 너를 보내줄 거 같아?"
"2백이요? 뭐가 그렇게..."
"뭐? 너 내가 지금 사기치는 것 같냐? 넌 소개비도 안 냈잖아? 네가 지금 그만두면 네 옷값, 화장품값, 그리고 너네 사장이 낸 소개비까지 다 물어내야 돼. 그럼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우리 사장은 보나마나 널 저기로 넘기라고 할 걸!" 박 상무를 턱으로 방금 지나 온 사창가 쪽을 가리킨다. 명자가 어이가 없고 겁이 나서 입을 앙 다물고 박 상무를 쳐다보자 박 상무는 표정을 조금 누그러뜨리고 다시 차를 몰고 어디론가 향한다.
"그렇게 그만 두고 공장에 갔던 아가씨들도 다들 얼마 안 있어서 되돌아 와! 네가 고생을 안 해봐서 그렇지 고급 요정이나 한식당이나 룸사롱에서 일하기가 그리 쉬운 게 아니야. 네가 그래도 인물이 좋아서 내가 널 소개했고 너네 사장이 널 뽑아준거야. 얘가 쉽게 일을 잡으니까 그게 아무나 막 하는 일인줄 아나 봐! 정신차려. 운이 좋아서 나 같은 사람 만나서 취직한 거지 웬만한 소개소 같으면 촌에서 올라오는 여자애들은 소개비 왕창 받고 빚 잔뜩 떠 안긴 채로 바로 미아리 사창가로 넘겨! 그럼 평생 저기서 못 벗어나는거야. 알아? 그런 줄이나 알고 착각하지 말고 내일부터 군소리 없이 나긋나긋하게 손님 잘 모시는거다. 알았지?"
"..."
명자는 대답을 하지 않고 박 상무를 외면하며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차 안에서는 한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차는 서울 시내를 벗어나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길을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통일로'라는 길 안내 표시가 보였다. 덜컥 겁이 난 명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저씨. 지금 어디로 가는거예요? 집에 안 가요?"
"한 군데 더 가 볼 곳이 있어. 안 잡아 먹으니까 걱정 마." 박 상무는 짧고 단호하지만 부드럽게 대답을 했다. 아까 화난 모습과 목소리에 질려있던 명자의 마음도 조금 풀렸다. 이윽고 차는 어느 시골의 자그마한 읍내로 들어섰다. 삼거리에는 식당과 옷가게 그리고 잡화점들이 보였고 군복을 입은 서양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것이 눈이 띄었다.
"여기는 용주골, 미군부대 기지촌이야. 저기 봐."
박 상무가 가리키는 곳은 차도 들어가지 못할 좁은 골목 길인데 하천 변을 따라 아까 미아리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가게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고 거리가 좀 멀어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느낌은 비슷했다.
"여기는 나이 인물도 따지지 않아. 마지막에 오는 곳이지. 여기까지 오면 정말 끝이야.
너 그러지 말라고 일부러 여기까지 와서 보여주는거야. 그러니 마음 단단히 먹고 돈 벌 수 있을 때 부지런히 벌어. 흥청망청 쓰다보면 평생 빚 다 못 갚고 결국 여기로 와서 인생 종 치는 거야. 알았어?
이제 됐으니까 가자."
박 상무는 읍내 삼거리를 돌아서, 오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차를 몰았다.
잠시 후 차는 어느 한적한 유원지를 지나친다. 강가 길을 따라서 꽤 크고 근사한 식당과 까페와 모텔들이 늘어서 있었다.
"배고프지? 밥 먹고 가자."
박 상무는 어느 양식당 마당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간다.
입구가 하얀 대리석 기둥으로 되어있고 역시 하얀 석상들이 하얀 조명을 받아 눈이 부실 정도로 고급스러웠다.
검은 정장과 나비넥타이를 맨 종업원이 두 사람을 한 테이블로 안내를 했다. 창가 자리에서는 강이 보였고 인근 식당의 불빛이 반사된 야경이 멋졌다.
잠시 후 짧은 스커트를 입은 여자 종업원이 목이 긴 물 잔에 레몬이 한 쪽 담긴 얼음물을 가지고 와서 메뉴판과 함께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테이블 위에는 학 모양으로 접힌 네프킨과 나이프, 포크가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다. 한 가운데에는 작은 촛불과 빨간 장미 한 송이가 화병에 꽂혀있어서 분위기가 근사했다.
"이태리 식당이야. 아무거나 골라 봐."
박 상무가 네프킨을 펼쳐서 무릎에 놓으며 메뉴판을 펼쳐 든다. 명자는 어떻게 하는 줄을 몰라서 박 상무가 하는 대로 따라 한다.
"해산물 까르보나라 랑 하우스 와인 한 병!"
잠시 후 예의 그 여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러 오자 박 상무는 내뱉듯이 능숙하게 말을 하고는 명자더러 주문을 하라는 듯 쳐다본다.
"저도 같은 걸로.."
무엇으로 시켜야 할지를 몰라 명자가 이렇게 말을 하자 박 상무가 말을 자르고
"아니 아니. 같은 거 말고 여기 스파게티 잘 하니까 크림 스파게티 하고 맥주 한 병으로 하지! 어때?"
"아니 맥주는 좀.."
명자가 머뭇거리자 박 상무가 그냥 종업원에게
"그렇게 주세요."라고 한다.
종업원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짓으로 살짝 끄덕이고 메뉴판을 들고 사라진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두 사람은 식당 안을 가득채우듯 흘러나오는 은근한 경음악을 들으며 창 밖을 바라본다.
"어때? 여기 괜찮지?"
"네, 근데 엄청 비쌀 것 같아요."
"괜찮아. 이런게 사는 낙이지 뭐! 여기는 서울에서 멀지도 않고 해서 난 손님 모시고 가끔 와."
박 상무는 자랑스럽게 껄껄 웃었다. 그의 그런 모습이 무슨 성공을 한 사람 같아서 멋있게 보였다. 음식은 맛이 좋았다. 박 상무는 와인을 한 병 다 비우고 명자가 거의 마시지 않은 맥주까지 마저 먹었다. 디저트로 아이스크림 까지 먹고 나니 명자는 기분이 좋아졌다.
"근데, 운전 괜찮으시겠어요? 약주를 많이 하셨는데..."
명자가 붉게 취기가 오른 박 상무의 볼을 바라보며 물어 보았다."
"괜찮아, 괜찮아! 뭐 와인이 술인가? 그까짓 거 음료수야. 음료수."
박 상무는 손사래를 치며 호기 있게 차에 올랐다. 하지만 잠시 운전을 하고 가자니 멀리 붉고 푸른 경광등이 번쩍거리는 것이 보였다. 아마 경찰 검문소가 있는 것 같았다.
"씨발, 안되겠다. 짭새가 깔렸네!"라고 하면서 황급히 차를 꺾어서 길 가의 모텔 주차장으로 들어선다.
주차장 입구는 수직으로 틈이 벌어진 비닐 커튼으로 가려져 있어서 차는 금방 도로에서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주차장에서 모텔로 객실로 들어가는 작은 쪽문이 보였다.
"잠깐 기다려 봐."
박 상무는 차에서 내려 모텔 입구로 들어갔다가 잠시 후에 하얀 플라스틱 막대기에 매달린 열쇠를 들고 나왔다.
"아무래도 눈 좀 붙이고 가야겠다. 얼른 나와."
명자가 머뭇거리며 차에서 내리지 않자
"괜찮아, 괜찮아. 금방 술만 좀 깨고 갈거야." 라며 조수석 쪽으로 와서 차 문을 열고 명자의 손목을 잡아 끈다. 명자가 마지못해 끌리다시피 주춤주춤 따라서자 박 상무는 거침없이 유리 문을 열고 엘리베이트를 타고 3층 객실로 향했다. 복도도 방 안도 어두컴컴해서 사람이 옆으로 지나가도 누군지 알 수가 없을 정도 였지만 마주치는 사람도 없었다. 방에 들어서자 박 상무는 겉 옷 상의를 벗어서 옷 걸이에 걸고는 명자에게 소파에 앉으라고 권했다. 그리고 TV를 켠 다음 욕실 옆의 작은 냉장고 위에 있는 전기 주전자에 물을 붓거 물이 끓자 컵에 인스텐트 커피를 타서 들고 와서 명자 옆 소파에 털썩 앉았다.
"커피야. 마셔!"
한 잔을 소파 앞 작은 탁자 위에 내려 놓은 후 몸을 뒤로 젖혀서 소파에 한껏 기댄 채 자신의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아, 좋다. 술을 한 잔 하면 커피가 더 당긴다 말이야."
박 상무는 후루룩 소리를 내며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손짓으로 다시 한 번 더 명자에게 권한다.
명자가 커피 잔을 입으로 가져가자 박 상무는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서 불을 붙인다.
"아, 이 놈의 담배도 끊어야 하는데 잘 안되네.."
박 상무가 농을 하려고 해도 명자는 잔뜩 몸을 웅크린 채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박 상무는 말없이 TV를 보면서 담배를 다 피우고 일어서서 욕실로 가서 샤워를 한 다음 가운을 입고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말리면서 나왔다.
"아, 개운하다. 술이 좀 깨는 것 같네. 너도 좀 씻을래?"
명자가 말없이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박 상무는 가운을 입은 채 이불은 펼치지 않고 그대로 침대에 벌렁 누웠다.
"그래? 마음대로 해. 난 눈을 좀 붙여야겠다."
소파에 앉아서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있는 명자를 누운 채로 바라보던 박 상무는
"명자야, 거 겉 옷 함 벗어봐라!"
라고 불쑥 말한다.
"네?" 명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자
"너 말이야. 몸매가 참 괜찮은거 같아. 얼굴도 예쁘고! 아까와! 잘 만 하면 강남으로 진출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아직 스킬이 좀 부족해. 프로가 되려면!"
"강남이요?"
"응, 너 강남으로만 가면 돈 엄청 번다. 완전 연예인 급 대접이야. 거 겉 옷 한 번 벗어보래도!"
그래도 명자가 꼼짝을 하지 않자 박 상무가 몸을 일으켜 다가 온다. 가까이 오자 술 냄새가 훅 난다. 박 상무는 뿌리치는 명자의 손을 완력으로 붙잡고 명자의 옷 단추와 지퍼를 연다. 겉 옷을 벗기고는 한 발 물러서서 명자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몸매 좋네! 가슴도 꽤 커 보이는데! 인기 좀 끌겠어. 남자들이 환장할 거 같아!"
다시 다가 와서 이번에는 명자의 블라우스 단추를 풀기 시작한다. 명자가 뒤로 돌아서자 억지로 뒤에서 끌어안고 단추를 마저 풀고 블라우스를 벗긴다. 이제 옅은 하늘 색 블레지어만 남았다. 박 상무가 맨 살이 드러난 명자의 양 어깨를 잡아서 돌려세운다. 예술품 감상하듯이 명자의 가슴께를 게슴츠레 바라본다. 그러다가 갑자기 달려들어서 명자를 끌어 안고 브레지어 훅을 열어 젖힌다.
"명자야!"
박 상무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한 손으로 명자의 허리를 안아 당기면서 다른 한 손으로 명자의 가슴을 움켜쥔다.
당황한 명자가 주저앉으려 하자 박 상무는 힘을 주어 명자를 끌어당겨 자신의 입술을 명자의 입에다가 가져다 대었다.
이어서 명자의 가슴을 입으로 빨고 혀로 유두를 핥았다. 명자의 가슴은 희고 풍만했다.
명자는 있는 힘껏 박 상무를 밀쳐내려 했지만 박 상무의 완력이 워낙 세서 그의 품 안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아저씨! 왜 이러세요? 제발 이러지 마세요!"
명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애걸을 하는 것 밖에 없었다. 그러나 박 상무는 들은 척 만척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이윽고 치마를 걷어 올리고 하얀 팬티도 벗겨내렸다.
명자는 손발로 버둥대며 계속 저항을 했지만 거의 절망감에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괜찮아. 명자야. 이것도 배워야하는 거야. 응. 좀 만 참아."
박 상무는 명자의 몸 위에서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명자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자신의 옷은 벗을 필요도 없었다. 가운만 젖히니 박 상무의 알몸이 드러났다. 그의 성기는 이미 발기가 되어 있었다.
그는 명자를 안아서 침대에 눕힌 후 명자의 다리를 벌리고 자신의 몸을 넣었다. 아팠다. 명자는 입술을 악물고 눈물만 흘렸다.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박 상무는 명자의 몸 속에서 몇 번 왕복 운동을 하다가 무슨 생각인지 문득 멈추고 삽입을 뺀 다음 명자를 안고 잠시 있다가 스스로 수음을 해서 명자의 허벅지에 사정을 했다.
수치와 분노심에 어쩔 줄 몰라 이불을 덮은 무릎을 끌어안고 웅크리고 앉아서 울고 있는 명자의 어깨를 한 번 쓰다듬고 나서 박 상무는 수건으로 명자의 허벅지와 아랫도리를 닦아주었다. 붉은 색이 묻어나왔다. 침대 시트에도 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샤워할래?" 박 상무가 가만히 권유했다.
명자는 박 상무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침대 시트로 몸을 감싸 안은 채로 일어나서 욕실로 향했다. 샤워기 물을 틀고 한참동안 몸을 씻었다. 할수만 있다면 오늘을 다 지워버리고 몸을 다시 깨끗하게 씻고 싶었다. 욕실 밖으로 나오니 박 상무는 벌써 코를 골면서 퍼져서 잠을 자고 있다.
소파에 쭈그리고 앉아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운 명자는 다음 날 아침 일찍 날이 새기도 전에 박 상무와 함께 모텔 방을 나서서 서울로 향했다. 배는 고팠지만 도중에 박 상무가 사주는 설렁탕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박 상무도 별 말은 없이 명자를 집 근처에 내려 주었다.
"이제부터는 넌 명자가 아니라 예린이야. 알았지? 오늘 늦지않게 출근하고 이걸로 맛있는거 사 먹어. 배고프겠다." 명자가 차에서 내리자 박 상무는 따라 내리면서 만원짜리 두 장을 내밀었다. 명자는 받지 않았다. 그러자 억지로 명자의 주머니에 쑤셔 넣어준다. 명자는 실랑이를 하기도 싫어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갔다.
집에 들어서서 방 문을 여니 잠을 자고 있던 명수가 눈을 뜬다.
"뭐야? 외박했어?"
"응, 일이 늦게 끝나서 막차를 놓쳤어."
"어이.. 그래도 외박하면 안되지."
"알았어. 아침 먹어야지? 밥은 있나?"
명자가 대충 얼버무리고 웃목에 놓인 전기밥솥 뚜껑을 연다. 밥은 있다. 보온 기능으로 아직 김이 모락모락 난다. 있는 밑반찬으로 얼른 상을 차려서 같이 아침을 먹고 명수는 서둘러 출근을 했다. 명자는 피곤하고 아픈 몸과 마음을 눕히고 깜박 잠이 들었다. 짧은 잠 속에서 많은 꿈을 꾸었다. 이상한 괴물에 쫒기기도 하고 엄마랑 어디론가 가기도 하고 아버지와 대판 싸우기도 했다. 그러다가 소리를 질러도 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용을 쓰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어느새 한 낮이 지나서 명자도 출근 시간이 되었다.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았다. 아니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길거리와 버스 안에 가득한 사람들은 그냥 오늘도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무표정하게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명자는 또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자신이 슬펐다. 식당에 들어서니 사장과 '언니'들이 명자를 새삼스럽게 쳐다보았다. 뭔가를 살피는 듯한 눈빛이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을 하는 것도 같았지만 아무도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냥 다른 날 처럼 손님맞이 준비를 하고 손님이 들이닥치고 웃음과 노래와 음식이 넘쳐났다. 그 날은 사장도 명자에게 룸 서비스를 시키지 않고 주방 일만 하게 했다. 하지만 명자도 곧 자신이 방에서 접대를 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