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장 교전
도청에서 광주은행까지…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네 사람은 아침 일찍 짐을 챙겨 길을 나섰다. 세영은 민 머리에 카빈총을 어깨에 메고 앞서서 걷고 상혁은 전경 투구를 쓴 채 M1 소총을 양손으로 들고 언제라도 발사를 할 양 사방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윤주와 영혜는 개인 소지품이 들어있는 배낭을 둘 씩 메고 묵묵히 뒤를 따랐다. 광주은행 앞 큰길을 건너려는 순간 어디선가 빵 하고 총소리가 들렸다. 네 사람은 바짝 길바닥에 엎드렸다.
“세영 선배, 언능 일로 오시오!”
아직 큰길에 들어서지 않은 상혁이 맞은편 건물의 현관에 반쯤 몸을 숨긴 채 세영에게 소리쳤다. 세영과 윤주는 엉금엄금 기어서 뒷걸음으로 보도 경계석을 따라 물러났다.
“괜찮아요?”
네 사람이 모두 건물 현관 안으로 들어오자 영혜가 세영에게 물었다.
“응, 괜찮아. 근데 어디서 쏜 거야?”
“소리만 듣고 알 수가 있간디? 아무래도 씨발 놈들이 벌써 여꺼정 쳐들어왔나 배!”
“어쩌지? 광주은행 들어가기가 만만치 않겠는데?”
“아, 총소리 한 방에 이리 오줌을 지려서야 안 되지라, 우리가 선을 물리면 다른 사람들은 옆구리가 시리지 않겠으라? 좀 위험해도 들어가 봅시다.”
강경한 상혁의 말에 아무도 반대를 할 수 없었다.
“그래 그 말이 맞다. 한 번 들어가 보자. 길만 건너면 되니까 이 쪽 창문에서 너희들이 엄호를 해라 내가 윤주랑 먼저 들어가고, 일단 들어간 뒤에는 우리가 엄호할 테니 너희들이 따라 들어와라.”
네 사람이 K 자동차 사옥으로 쓰였던 건물 한쪽 벽에 기대어서 기다리는 동안 광주은행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M 방송국 건물 옥상에서는 특전사 일 개 중대가 광주은행 앞 큰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중대라고 해야 특전사는 편재가 일반 보병과 달리 특기별 간부 중심 편성이라 총원이 10명 남짓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전투력은 보병 중대를 능가한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중대장님, 움직임이 없습니다.”
“도망갔나?”
“아닙니다. K 자동차 사옥 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쌍안경을 보고 있던 하사가 대답했다.
“알았다. 좀 더 기다렸다가 일몰 후 진입한다. 계속 주시하고 나머지 대원은 휴식!”
길 대위는 그늘을 찾아 흩어지는 대원들을 보면서 손가락으로 무전병을 지목한 후 가까이 오라고 까딱 수신호를 했다.
길 대위는 무전기 키를 한 번 눌렀다. '치이익 치익' 하는 발신음이 들렸다.
“독수리 당소 까마귀 셋.”
“독수리 오버”
“까마귀 셋 둥지 옆에 앉았다. 개들이 있어 둥지에 틀지 못했다. 열아홉 땡땡에 움직인다 오버.”
“알았다. 아웃.”
무전기를 무전병에게 건넨 길 대위가 쌍안경을 들고 윤주 일행이 있는 건물을 살피기 시작하자 이를 지켜보던 하 상사가 낮은 걸음으로 다가왔다.
“중대장님, 반군들 전초가 전진하고 있는 것 같은 데 우리가 목표에 들어가면 혹시 고립되지 않을까요? 본대가 올 때까지 조금 물러나서 여기를 점령하고 있는 게 더 좋지 않겠습니까? 주변에서는 이 건물이 제일 높아서 광주은행보다 오히려 시계나 사계확보에도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음, 그렇긴 한데… 광주은행 확보는 연대장님 특명이니까 내 재량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도 현지 사정은 감안해 주셔야지…”
“아니야. 대대장님도 통하지 않고 연대본부로 불러 직접 명령하신 거니까 뭔가 중요한 게 있을 거야. 그리고 저 놈들 몇 명 되지도 않는 걸로 봐서 저 쪽도 본대는 아닌 거 같아. 접근하면 아까처럼 위협사격 좀 하다가 어두워지면 들어가면 됩니다. 괜히 조준 사격 해서 다른 놈들 몰려들게 하지 말고 접근만 막으라고 하세요.”
부하들에게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길 대위는 연대장으로부터 직접 들은 특명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광주은행 지하금고 확보였다. 그래서 본대가 아직 진입을 하기도 전에 서둘러 단독으로 투입작전을 하게 된 것이고 사실 시민군 한 복판으로 지원 없이 들어가는 것이라 엄청나게 위험한 작전이었다.
“알겠습니다.”
하 상사가 돌아가려고 몸을 돌리는 순간, 쌍안경으로 망을 보고 있던 하사가 나지막하게 소리를 질렀다.
“중대장님, 움직입니다.”
세영과 윤주 두 사람이 몸을 낮추고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건너고 있는 것이 육안으로도 보였다. 곧이어 총성이 연이어 울리고 두 사람 주변 아스팔트에 총탄이 튀었다. 잠시 주춤하던 두 사람은 전 속력으로 뛰어서 광주은행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
“어쩌지요? 놓쳤습니다.”
옥상 담벼락에 기대어 사격을 하던 대원들 중 하나가 M16 소총의 조준 가늠자를 여전히 들여다보면서 소리쳤다.
“괜찮아. 더 이상 접근 못하게 이번엔 조준 사격…”
“어어 또 나옵니다.”
길 대위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상혁과 영혜가 몸을 숙이고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동시에 광주은행 쪽에서 연이어 총소리가 들렸다. 지만과 세영의 엄호 사격이었다.’
‘따다다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명령을 기다리지도 않고 대원들이 즉각 응사를 했다. 그러나 높은 건물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쏘는 총알은 쉽게 명중이 되지 않았고 대원들이 본능적으로 총소리가 나는 광주은행 쪽에 화력을 집중하였지만 윤주와 세영은 건물 안에 엄폐되어 있어서 무사했고 상혁과 영혜도 덕분에 그대로 광주은행 건물에 진입할 수 있었다.
“씨팔..”
대원 하나가 거총을 내려놓고 주저 않으며 아래쪽으로 침을 뱉었다.
“전 대원, 현 위치에서 사격 대기하고 기총 사수는 1층으로 내려가서 도로 전면을 확보한다. 향후 움직이는 놈들은 모두 사살한다.”
길 대위는 다급하게 명령을 내뱉고 쌍안경으로 윤주 일행이 있던 K 자동차 건물과 주변 건물들을 살펴보았다.
갑작스러운 총소리에 순간 온 도시가 조용해졌다. 무서운 정적. 모두들 숨을 죽이고 몸을 사린 채 무슨 일이 있는지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한바탕 광풍을 겪고 난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순진한 시민이 아니었다. 설마 군인들이 시민들을 죽이진 않을 거라고 천진하게 믿는 사람은 더 이상 없었고 객기와 혈기로 흥분해서 함부로 거리로 나서는 사람들도 없었다. 모두들 민간인이 아니라 전투원이나 보급대원 같았다. 시민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웅크리고 있거나 저항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죄가 없다고 피난을 간다고 나설 수도 없었다. 그래 봐야 외곽이 봉쇄되어 있어서 애꿎은 사람들이 총을 맞았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일부 사실이었다. 무리하게 봉쇄선을 넘으려던 사람들은 사살이 되기도 했다. 일단 외곽으로 철수한 계엄군들은 광주와 외부를 철저하게 차단하고 고립시켜서 불필요한 충돌로 인한 쌍방의 피해를 줄이고 다만 사태가 더 이상 외부로 확대되는 것을 막는 작전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외부에로는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다고 선전을 하고 있었다. 계엄군이 물러가자 잠시 해방감을 맛보았던 광주 시민들은 고립이 지속되자 언젠가 계엄군이 곧 다시 쳐들어 올 거라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갑자기 총소리가 울리자 계엄군의 진입이 시작된 것이 아닌가 공포와 불안이 모두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럴 땐 차라리 뭔가 총소리라도 들리는 게 더 좋았다. 죽음을 포함하여 인간의 모든 공포는 막상 닥쳤을 때보다 그것을 기다릴 때 더 극대화되고 견디기 힘든 법! 상상의 힘은 사람을 위대하게도 만들지만 반대로 인간을 더없이 나약하고 비참하게 만들기도 한다.
“쥐새끼 하나 안 보이는구먼이라…”
창문에 붙어 서서 밖을 살피던 상혁이 씩 웃으며 혼자 말처럼 중얼거렸다. 극심한 긴장과 스트레스로 최고조로 분출되었던 아드레날린 때문에 네 사람의 피 속에서는 살았다는 알지 못할 희열이 짜릿하게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상혁을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은 아직 긴장감을 다 떨쳐버리지 못했지만 상혁은 한껏 들떠서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형, 성공했지라. 새끼들 겁나서 꼼짝도 못 하고 있능거 같소.”
“글쎄? 저 쪽 숫자가 만만치 않은 거 같은데 밀려오면 큰 일이다. 나는 영혜랑 안을 좀 보고 나올 테니 상혁이랑 윤주는 여기서 밖을 잘 살피고 있어라.”
“알겄소.”
상혁이 승리감에 큰 소리로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