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귀로2

귀로1부 19장

by 이윤수

19장 이몽


“이게 뭐지?”

세영은 광주은행 지하실 금고 앞에서 영혜를 돌아보았다.

지하실 한쪽 벽면은 전체가 커다란 철문으로 되어있고 네모 난 전자식 잠금장치와 배의 조타기처럼 생긴 회전식 핸들이 달려있었다.

“금고 같은데요?”

“그렇지.. 은행이니까… 금고가 있겠지?”

세영은 자신의 말이 바보 같은지 말을 하고 나서도 계면쩍게 씩 웃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윤주와 상혁이 있는 1 층으로 올라왔다.

“안에 특별한 것은 없고 그냥 여기서 입구를 지키면 되겠다.”

“옥상에 보초 한 명 서야 되는 거 아닌가요?”

윤주의 제안에 세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네, 그럼 1명씩 교대로 옥상에 보초를 서고 나머지는 여기서 입구를 지키지.”

“나부터 올라갈랑깨 다들 쉬고 계시오.”

상혁이 총을 들고 일어서며 말했다.

“근데 지하실엔 뭐가 있던갑소?”

“응, 금고…”

세영의 대답에 상혁은 대수롭지 않게 돌아서서 옥상으로 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상혁이 올라가고 난 후 세 사람은 바닥에 주저앉아 아침에 챙겨 온 주먹밥을 가방에서 꺼냈다. 도청 앞 광장에 나가면 아주머니들이 만들어 놓은 주먹밥을 언제라도 배급받을 수 있었다. 이 순간 시민들은 모두 한 가족이었다. 위기로 같은 운명에 처했을 때 사람들이 보여주는 단결된 모습은 놀랍고도 아름다웠다. 자고로 목숨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정의롭고 자유를 지키기 위한 싸움은 아름답고 돈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추악해 보이는 법이었다.

세영은 자신의 주먹밥을 먹지 않고 상혁의 것을 하나 더 챙겨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배고프지? 요기나 좀 해라.”

“암시롱도 안혀요. 배고픈 줄도 모르겠구만이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상혁은 반가운 듯 세영이 내미는 주먹밥을 받아서 한 입 덥석 베어 물었다. 밥을 씹으며 상혁은 옥상 물탱크 벽에 기대어 앉았다.

“저 놈들 꼼짝도 안항께 계속 안 지켜봐도 될 것 같소. 여 잠깐 앉아봐요. 형.”

세영도 역시 주먹밥을 먹으며 상혁의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형, 우리 금고 함 열어봅시다.”

“금고를? 왜?”

세영은 놀라서 상혁을 쳐다보았다.

“생각해보쟎께요. 형, 우리가 투쟁을 계속 이어가자면 자금이 필요하지 않겄소? 저 놈들이 분명히 금세 쳐들어올 것이고 그럼 우리가 언저까정 버텨 낼 수 있을 것 같소? 지금까정은 우리가 잘 버텼다 해도 이제 차츰 이탈자들도 생기고 아무리 잘 싸운다 한들 우리가 훈련받은 공수들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소? 도피를 하고 장기전을 할라면 자금이 있어야 하덜 않것소? 이거이 정말 천우의 기회인 것 갚소. 언능 내려가서 열어봅시다. 형.”

세영이 주저주저 하자 상혁이 별떡 일어섰다.

“형이 안 하면 나 혼자라도 할라요!”

“잠깐만.”

세영이 상혁의 손목을 잡았다.

“네 말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닌데.. 그래도… 그럼 우리가 도둑이 되는 것 같아서…”

“참, 형도 답답소. 저 놈들 하는 짓을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하요? 저 놈들은 강도요 살인자들인데 그 놈들과 싸우자고 하는 일인데, 그리 말하면 일제 때 독립군들도 다 도둑이겠네, 참..”

상혁은 기가 차다는 듯 반쯤 일어나며 세영을 내려다보았다.

“알았다. 내, 윤주랑 영혜랑 의논 좀 해보고…”

상혁이 세영 옆에 다시 주저앉았다.

“형, 걔들이 그럼 그러자 할 것 같소? 말해보나 마나요.”

“그럼 어쩌자고?”

“내, 생각 좀 해 봤는데, 좀 있다가 윤주랑 영혜를 심부름 보내던지 아님 보초를 서게 하고 뭐가 있는지 우리 둘이 일단 한 번 열어봅시다. 그 담에 야글 하던지 보골 하던지…”

“음…”

세영은 여전히 망설이는 눈치였다.

“쪼잔하게 왜 그러요 형! 지금 고민할 시간이 없당께요. 저 놈들이 언제 들어올지도 모르쟎소?”

“그래, 알았다. 그렇게 해보자. 그럼 좀 더 수고해라. 좀 있다가 교대 올려 보내줄게.”

“알것소.”

상혁은 나머지 주먹밥을 입에 틀어넣으며 망을 보기 위해서 엉거주춤 낮은 걸음으로 옥상 난간 쪽으로 향했고 세영은 다시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갔다.

“밥들 다 먹었어?”

“네.”

가방을 보료 삼아 받치고 벽에 기대어 앉아서 나지막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윤주와 영혜가 몸을 일으키며 동시에 대답했다.

“그럼, 너는 수습본부에 좀 다녀와라. 큰길은 위험하니까 건너지 말고 옆 건물들을 통해서 금남로 사거리까지 가서 분수대를 끼고 왼쪽으로 돌면 도청 쪽으로 갈 수 있을 거야. 만일 여의치 않으면 지금 쯤이면 전진 배치된 다른 팀들이 있을 테니까 협조를 구하도록 해라. 우선 여기 상황을 보고하고 바로 앞에 공수들이 있어서 계속 있기가 위험하다고 하고 철수를 할 건지 지원 팀을 보내줄 건지 결정해 달라고 해라. 그리고 금고가 있는 데 어떡할 건지도 물어봐라. 그리고 영혜 너는 옥상에 올라가서 망 좀 보고!”

“예. 금방 갔다 올게요.”

두 사람은 세영의 지시대로 총을 들고 각각 수습본부가 있는 도청과 옥상으로 나섰다.

한편 그 시간, 대전 외곽 계엄군 상황실 옆 회의실에서는 전재무사단장이 노진우 여단장과 문동일 연대장 세 사람이 참모들을 배제한 채 비밀회의를 진행 중이었다.

“아직 진입을 못했다고?”

문동일의 보고가 끝내자 전재무가 질책을 하듯이 화를 내며 말했다.

“네, 하지만 잠시 후 일몰 후에 즉시 진입하도록 하겠습니다.”

“알았어. 근데 이번 작전은 극비리에 추진하고 모든 보고 지시 명령계통을 나와 여단장 그리고 자네로 단선화 유지하는 거 명심해.”

“예, 알겠습니다. 그래서 작전지시도 대대장을 통하지 않고 제가 길 대위를 불러 직접 했습니다.”

“대대장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노진우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무슨 상관이야? 본대의 본격 진입을 앞두고 기밀작전이 필요했다고 그래. 이 작전은 아는 사람이 하나라도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건지 몰라?”

전재무는 화가 풀리지 않는지 누구에게라고 할 것도 없이 앞을 쳐다보며 냅다 소리를 질렀다.

“직접 작전에 참가한 대원들은 어떻게 할까요?”

“길 희섭 대위라고 했나? 그 친구는 내가 믿을 만하니까 그 친구가 직접 처리하고 직접 보고하라고 해. 그리고 대원들에게는 국가재산을 폭도들로부터 지키고 국고로 회수하는 작전이라고 설명하게 해. 뭐 구태여 설명이 뭐가 필요한가? 군인이 명령에 따르면 되는 거지. 안 그렇나?”

“네, 그렇습니다.”

“길 대위도 우리 멤버입니까?”

노진우의 물음에 전재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회의장 안의 세 사람과 길 대위는 모두 육군 내의 사조직인 우리회 회원들이었다. 그들은 군대 내에서 비밀리에 사조직을 만들어서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고 하면서 군대 내의 권력과 요직을 독점하고 있었고 계엄사령관 전재무가 현재 회장으로 실질적인 군권을 쥐고 대통령보다 더 큰 힘을 휘두르고 있었다.

다시, 광주은행!

영혜와 보초를 교대한 상혁이 세영과 함께 지하실 금고 앞에 서 있었다.

“어떻게 열지?”

“다이너마이트 가지고 온 게 좀 있으니까 폭파해 버리지요.”

“다룰 줄은 알아?”

“걱정은 꽉 붙들어 매어 두시랑께요. 이래 봬도 지가 육군 공병 출신이랑께요. 그것도 전투공병.. 흐흐 군대서 배운 기술을 이런 곳에서 써먹을 줄은 나도 몰랐네요.”

상혁은 잔뜩 신이 나서 이를 드러내고 웃으면서 벌써 가방에서 다이너마이트를 꺼내고 있었다.

잠시 후 폭음과 함께 금고의 문이 열렸다.

1층으로 잠시 대피했던 세영과 상혁이 다시 내려와서 금고 안으로 들어섰다.

금고 안에는 금괴와 현금, 채권 등이 선반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아니 이거 금괴 아니야? 은행에 돈이 있는 건 당연한데 웬 금덩어리가 다 있어?"

두 사람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실 1930년대 금 본위제가 폐지되기 전까지만 해도 영국과 미국의 중앙은행은 자국의 화폐 가치에 상응하는 금을 확보하여 보관하고 있었고 그 후에도 그 전통이 일부 남아서 각국 중앙은행은 화폐가치 보전을 위해서 금괴를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하고 있으며 한국은행도 보유 금괴를 본점 지하금고에 일부 보관하고 위험 분산을 위해 지방에도 분리 보관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 두 사람이 보고 있는 것이 그 금괴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실은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 금괴의 존재를 눈치챈 전재무 일당이 그 금을 남몰래 확보하려고 길 대위에게 특명을 내린 것이고 두 사람으로서는 이런 사실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지? 수습본부에 보고해야겠지?"

세영이 당황해서 말하자

"보고는 뭔 보고... 공수가 들이닥치기 전에 일단 꺼내서 옮겨 놓읍시다."

상혁이 금고 안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럴까? 그럼 어디로 옮기지?"

"현금과 금괴만 꺼내서 여기서 나갑시다. 아무래도 저 놈들도 이걸 노리고 온 것 같응께."

상혁은 세영의 대답도 듣지 않고 가방을 가지러 계단을 올라간다. 잠시 후 상혁이 빈 가방을 들고 내려오고 두 사람은 가방에 금괴와 현금을 각자 힘닿는 대로 양껏 담아서 지고 1층으로 올라왔다. 아직도 금고 안에는 상당한 금과 현금이 남아있었다. 상혁은 아쉬운 듯 뒤를 돌아보았지만 세영은 골돌 하게 생각에 잠겨 말이 없었다. 1층으로 올라온 두 사람은 옥상에 있던 영혜를 내려오게 한 다음 건물 뒤 쪽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와서 골목길을 따라 자동차 회사 건물 뒤에 몸을 숨기고 윤주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맞은편 방송국 건물에서도 공수대원들이 밤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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