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막 - 이번 생

9일 - 이번 생

by 이윤수

아파트 값이 계속 떨어진다.

코비드 때 8억을 넘어가던 아파트가 이제는 5억에도 잘 안 팔린다.

윤주가 사는 아파트 진입로 옆 상가에 있는 부동산 창문에는

'급급매!

4억 9천

안정 아파트 15동 25평

올 수리, 하시 입주 가능'

등등의 매물 안내가 경쟁이라도 하는 듯 다닥다닥 붙어있다.

출근길에 이 매물 리스트를 흘끗 쳐다보던 윤주는 학창 시절 자신을 괴롭히던 보기 싫은 동창이라도 마주친 듯 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렸다.

'씨발, 상투를 잡았어! 그때는 아파트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자고 나면 올라서 8억에라도 못 잡으면 다시는 기회가 안 올 줄 알고, 부모님 형제 친구 영혼 체면 다 팔아서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모으고 전세 빼고 신용 빚내고 담보 융자내고 마통 긁어서 겨우겨우 집을 샀는데 이제는 집을 팔아도 빚도 다 못 갚겠네! 씨발! 은행 이자는 또 왜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지 월급 타서 융자받은 거 이자 내고 나면 원금은 고사하고 생활비도 빠듯하니... 이래가지고서야 언제 여자를 만나서 결혼이라도 할 수 있겠나? 제길 뭔 희망이 보여야지 말이야... 예전에 IMF나 글로벌 경제위기 때는 이러다가 좀 지나면 다시 급등하기도 했다는데 이제는 아이들도 줄어서 집을 살 놈도 집을 살 돈도 없다니... 제기랄! 몇 년 사이에 분위기가 이렇게 달라질 줄 누가 알았겠어? 씨발 좆도! 조금만 더 참아볼걸... 아니면 아예 일찍 사던가... 기다리고 버티다가 결국 막차를 탄 거 아니야. 바보같이... 씨발 정부는 뭐 하고 있는 거야? 무슨 대책이라도 내놓아야 할 거 아니야!'

혼자 투덜거리며 터덜터덜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고 있는 데 전화가 왔다. 부동산이다.

"안녕하세요? 여기 세종부동산인데요. 죄송하지만 혹시 4억 5천에는 안 될까요?"

"4억 5천이요? 저 그거 7억 9천에 산 건데요?"

"예. 물론 알고 있어요. 그런데 요즘 워낙 시세가 안 좋고 수리도 안 되어 있고 층수도 좀 낮아서... 4억 5천이면 사겠다는 사람이 있길래, 사장님이 어머님 병원비 때문에 급하게 꼭 팔아야 한다고 해서 혹시나 하고 여쭤본 거예요. 언짢게 생각하지는 마세요!"

"혹시, 좀 기다려 보면 어떨까요?"

"글쎄요. 서울 강남이나 속초 등 일부 호재가 있는 지역을 제외하고는 전국적으로 장기 전망도 안 좋아요. 특히 인구소멸 지방도시와 우리처럼 코로나 때 값이 많이 올랐던 대도시 주변 위성도시 아파트가 타격이 커요."

"그럼 이 가격에라도 팔아야 한다는 말인가요?"

"제가 뭐라고 드릴 말씀은 없지만 아마 팔려고 내놓은 다른 집들에 연락을 해보면 불가능한 가격은 아닐 것 같아요."

"그럼 흥정을 좀 해 보실 수는 있나요?"

"얼마까지?..."

"글쎄, 한 4억 7천?

"예. 한 번 타진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잠시만이요. 만일 팔리면 전 어디서 살아야 할까요?"

"요즘 전세는 많아요. 사장님과 같은 동 같은 평수에 2억 5천에도 가능해요. 월세도 있고요..."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예. 연락드리겠습니다."

'씨발, 도로 전세야? 빚은 빚대로 남고? 아니지 어머니 병원비 내고 빚도 다 갚으려면 전세도 안되고 월세를 살아야 할 것 같은데, 병신같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까먹은 게 얼마야 도대체! 세금 같은 부대비용까지 합치면 순식간에 3-4억은 날린 거 아니야 이거!'

돈도 돈이지만 자신이 너무나 멍청한 짓을 한 것 같아서 더 부아가 치민다.

장거리 출근용 직통 버스를 탔다. 좌석 버스인데도 항상 승객이 많아서 오늘도 한 시간 이상을 서서 가야 한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부동산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이른 출근길이라 자리에 앉아서 부족한 잠을 보충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조심스럽게 낮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4억 6천까지 주시겠데요."

"예. 할 수 없지요. 그렇게 하지요."

시무룩하게 답하고 전화를 끊은 윤주는 혼자 중얼거린다.

'이번 생에는 다 틀렸다. 이제 내 생애에 다시는 기회가 없겠다. 마지막으로 한 번 내 운명을 시험해 봐야겠다.'

뭔가 결심을 한 윤주는 버스가 일터에 도달하기 전에 여의도 증권가 환승터미널에서 내렸다. 편의점 점장에게 전화를 건다.

"점장님, 저 오늘 병가 좀...

아뇨. 병원 갈 정도는 아니고 그냥 하루 쉬면 될 것 같아요.

예? 진단서요?

그럼 월차로...

예, 예.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윤주는 자기가 거래하던 증권회사에 들어갔다.

입구의 주가 현황판이 온통 붉은색 투성이다.

'씨발, 주식도 개판이네!'

아침부터 하릴없이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소파에 앉아서 점멸하는 현황판을 바라보고 있는 실업자임이 분명한 사람들을 지나쳐 창구로 갔다. 늘씬하고 예쁜 여직원이 상냥하고 밝은 미소로 반긴다. 잠시 세상살이에 희망을 가질 뻔했다.

"신용잔고가 있으면 현금 인출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원래 인출은 매도 후 2 영업일 후에나 가능하시고요!"

윤주가 내미는 현금 인출 청구서를 보며 예쁜 여직원은 한없이 안타까운 표정을 연출하며 부드럽게 거절한다.

"그럼. 지금 매도하면 신용잔고는 올라가니까 그걸로 코인을 신용매입할 수 있을까요?"

"우리 증권사가 직접 가상화폐 거래는 안 하기 때문에 아마 불가능할 것 같은데 혹시 코인거래소 연결계좌로 처리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직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뒤 쪽에 있는 상급자에게 가서 뭔가 의논을 한다. 잠시 후에 돌아와

"예.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저희와 협업을 하는 코인 거래소 계좌가 있어야 하니 먼저 그 계좌를 개설하시고 다시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직원은 생글생글 웃으며 친절하게 안내한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윤주는 인사를 하고 증권사를 나와서 같은 건물에 있는 코인 거래소에 가서 계좌를 열고 얼른 다시 증권사로 돌아왔다. 자신이 가진 주식 전부를 실시간 매도 주문을 넣고 체결이 되자 바로 코인계좌로 신용이체를 했다. 정산서를 보니 매입가 대비 5천만 원 정도를 손해 봤다. 이제 이 세상에게 윤주에게 남아 있는 돈은 탈탈 털어도 1억 도 안된다. 이마저도 빚을 다 청산하고 나면 오히려 마이너스다. 기가 막히다.

'그래, 이번 생에는 어차피 글러먹었다. 마지막 배팅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담담해진다. 가진 돈 전액을 변동성이 가장 심한 코인에 투자했다. 먹으면 크게 먹고 잃어도 크게 잃는 투전판에 칩을 던진 심정으로 요동치는 시세표를 지켜보았다. 역시 변동이 심했다. 심전도계가 따로 없었다. 코인의 등락을 나타내는 그래프가 윤주의 심장 박동수와 거의 일치했다. 계속 지켜보다간 심장마비가 올 것 같았다. 윤주는 밖으로 나가 스벅 커피숍으로 갔다. 커피 향은 여전히 고소했고 매장에 앉아있는 사람들이나 직원들이나 텀블러 컵을 들고나가는 사람들이나 모두 밝고 활기찼다. 아무도 윤주의 답답한 심정을 알지 못했다. 갑자기 외로워졌다.

커피를 받아 들고 자리에 앉아 다시 스마트폰 앱을 열고 시세를 확인했다. 조금 올랐다. 기분이 좋아졌다.

커피숍의 통창을 통해서 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잠시 지켜보았다.

다시 시세를 확인하다. 금세 하락새로 반전되었다. 주식은 오르고 내릴 때 관련 이슈라도 있는데 코인은 납득할만한 이유도 없이 그냥 오르고 또 내린다. 경제지표나 정치적 사건도 가볍게 무시할 때가 많기 때문에 예측을 할 수도 없고 이유를 알 수도 없다. 거의 99% 운이다.

윤주가 고른 코인은 갑자기 폭락을 거듭하다가 저녁 무렵에는 거래정지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시세표와 더불어 동고동락하며 하루를 무참하게 보낸 윤주는 근처에 있는 콘티넨탈 호텔 뷔페에 가서 생애 최고로 비싼 저녁을 근사하게 먹었다.

화려한 조명에 빛나는 세상은 멋지고 호텔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행복해 보였다.

윤주는 마음이 담담해졌다.

집에 돌아온 윤주는 목욕을 하고 다시 새 옷을 갈아입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순찰을 돌던 경비원이 아파트 뒤 정원 잔디밭에 누워있는 윤주를 발견했다. 피가 흐르는 그의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는 Louis Amstrong이 세상을 초월한 듯 허스키한 낮은 음색으로 부르는 'Wonderful World'가 반복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윤주의 고정된 표정은 가볍게 웃는 듯 잔잔해 보였다.

다음 생 같은 것은 없었다. 그것은 좌절하고 실패하고 희망을 잃은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는 심정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속임수에 불과했다.

사실 인생에는 지우개도, reset 버튼도, 다음 기회도 없다.

있다고 한들, 서로 연결이 되지 않으니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길지 않은 하나뿐인 인생을 하루하루 찰지게 꾸려나가는 길 밖에는…

그러나 윤주는 마지막에도 결국 뭔가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없는 잘못된 패를 잡고 곧 터질 희망풍선에 매달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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