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막 2장 - 應報

by 이윤수

- 1달 전-


"여보세요? 거기 '생명의 전화'지요?

네네

상담 자원봉사요.

예.

경험은 없지만 학교 때 심리학 전공을 했고 상담교사 자격증도 있어요.

예 이력서 보내드릴게요.

면접이요?

예 언제라도 돼요. 상담시간도 자유로와요.

예. 지금은 전업주부예요.

예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선옥이 자살예방을 위한 단체의 자원봉사를 신청하는 소리를 엿들었다.

그리고 선옥이 상담을 하는 시간에 맞추어서 '생명의 전화'에 전화를 걸었다.

처음 두 번은 다른 상담자가 전화를 받았다. 말없이 끊었다. 세 번째에 선옥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생명의 전화입니다. 말씀하세요!"

"..."

"힘드신 일이 있으신가요?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집이요."

"무얼 하고 계셨어요?"

"그냥 창 밖을 보고 있어요."

"창 밖에 뭐가 보이세요? 전 하늘에 구름이 떠가는 게 보여요. 꼭 개가 달려가는 모습이네요."

"나도 개를 기른 적이 있었는데.."

"그래요? 개 이름이 무엇이었어요?"

"애니요! 죽었어요."

"아휴, 어쩌나.. 생각이 많이 나시겠어요."

"예. 처음에는요. 지금은 많이 잊었어요."

"그래요. 시간이 지나면 다 잊히고 그러더라고요. 저도 엄청 속상한 일이 있어도 나중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날 때가 많더라고요!"

"그런데 그 순간에는 너무 힘들어요!"

"그래요. 그래도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면 좀 도움이 되지 않나요?"

"예. 그런 것 같아요. 우울감이 좀 가시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맞아요. 사람들이 서로 마음을 나누면 기쁨은 배가되고 슬픔은 반감이 된데요! 신기하지요?"

"예. 그러네요. 그럼 다음에 또 전화를 드려도 되나요? 개인 전화로요! 다른 사람과 또 처음부터 이야기하는 것도 번거롭군요."

"그래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따로 만나지 말라는 말은 들었는데... 저도 첫 상담이라..."

"뭐 귀찮게는 안 할게요."

"예. 345-7782로 전화 주세요. 필요하시면..."

"예. 감사합니다."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15일 오후 현재-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정말 운이 좋았지요! 선옥 씨 아니 선옥선생님과 인연이 되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요즘은 정말 세상이 밝고 살 맛이 나요."

"아휴, 그렇담 다행인데 제가 뭐 한 일이 없어서 오히려 부끄럽네요. 아마 우리가 둘 다 운이 좋았나 보네요. 호호호!"

"고마워요! 선옥 씨 목소리가 하도 고와서 외모도 그만큼 예쁘실 것 같아서 한 번 뵙고 싶은데 안타깝네요."

"호호 고맙지만 상상으로 생각하시는 게 더 좋을 거예요. 보면 실망하실걸요!"

"뵐 수는 있어요?"

"안 돼요."

"그럼 사진이라도..."

"참 나.. 안된다니까 자꾸 조르시네요. 그럴 거면 전화 끊으세요!"

선옥이 짐짓 화를 낸다.

"아뇨 아뇨 알았어요. 안 조를게요. 전화만은 끊지 마세요."

"알았어요. 농담이에요. 걱정 마시고 언제라도 또 전화하세요. 오늘 산책 꼭 나가시고요!"

"예."

"약속?"

"예. 약속이요!"

"그래요. 안녕... 다음에 또 전화 주세요."

"예. 안녕히 계세요."

전화를 끊고 나서 윤주는 눈을 감고 다른 감각의 방해를 받지 않으면서 선옥과 함께 한 그 행복의 여운을 오랫동안 즐긴다.

선옥은 전화를 끊고 장을 보러 외출한다.

윤주는 아쉬움을 달래며 창 밖을 내다본다.

아파트 공터에서 아이들이 킥보드를 타면서 놀고 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솔이네 어린이집 버스가 들어온다. 평소보다는 좀 이른 시간이다. 버스에서 내린 솔이는 엄마가 보이지 않자 귀퉁이에 있는 작은 놀이터로 가서 벤치에 어린이집 가방을 내려놓고 그네를 탄다.

혼자 앞 뒤로 일렁일렁 흔들고 있으니 별로 재미가 없나 보다. 그때 지나가던 중년의 아줌마 하나가 솔이의 그네를 뒤에서 밀어준다. 솔이는 신이 나는지 한참 동안 그네를 탄다. 그러다가 여인은 솔이에게 뭐라고 속삭이더니 한 손으로 솔이의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 솔이의 가방을 들고 아파트 출구 쪽으로 간다.

윤주가 당황해서 '어어어..' 하는 사이에 여인과 솔이는 아파트 입구에 주차된 차를 타고 사라진다.

윤주는 입으로 터치 펜을 물고 단축번호 2번을 누르려다가 잠시 멈칫한다.

'지금 전화를 하면 내가 여기에 산다는 것, 그동안 내가 거짓으로 우울증 환자 노릇을 하며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이 탄로가 날 텐데...

아니야. 저 사람이 정말 솔이와 친분이 있는 사람일 수도 있지 않나?

조금 기다리면서 상황을 보자!"

윤주는 터치펜을 꽂이 구멍에 다시 내려놓고 초조하게 밖을 내다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선옥이 장 본 식료품을 들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면서

"솔이야! 집에 왔니?"라고 부른다. 대답이 없자 짐을 주방 옆 식탁 위에 내려놓고 전화기를 든다. 신호가 가는 동안에 혼잣말로

'얘가 오늘 늦나? 그런 말이 없었는데.. 어린이집 버스도 아직 안 왔고 놀이터에도 없고...'라고 중얼거리다가 전화 신호가 떨어지자

"여보세요! 어린이집이지요?

예 저 솔이엄만데요

네네 안녕하세요?

솔이가 오늘 늦나요?

예? 벌써 끝났어요?

예. 하원지도 선생님께 여쭤봐주세요.

....

네. 네. 뭐라고요? 내려줬다고요?

없던데... 집에도 없고요..

확실해요?

이상하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아니요 저는 제시간에 마중을 나갔지요.

빨리 오게 되면 미리 연락을 주셨어야....

알았어요. 좀 더 찾아볼게요. 어디서 친구랑 놀고 있는지..."

전화를 끊고 선옥은 황급하게 이리저리 전화를 건다. 성과가 없다. 윤주는 다시 고민에 빠진다.

'이런 경우에는 시간이 생명이라는데... 지체하면 할수록 살아있을 확률은 낮아지고 몸값을 준다고 해도 납치범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아이를 살해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망설이던 윤주는 마침내 결심을 하고 터치펜을 물고 2번 단축키를 누른다. 신호가 가자 바로 선옥이 받는다.

"윤주 씨 죄송하지만 지금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 나중에 전화드릴게요!"

"잠시만이요. 끊지 마세요. 솔이를 누가 데려갔는지 알아요!"

선옥이 깜짝 놀란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아까 봤어요. 솔이가 버스에서 내린 후 남색 상의와 자주색 바지를 입고 짧은 파마머리를 한 40대 아주머니가 솔이를 서울 다 2739 소렌토 승합차에 태워서 데리고 갔어요. "

"직접 보셨다고요? 윤주 씨가??"

"예. 얼른 경찰에 신고하세요. 지체하시면 안 됩니다."

믿기지가 않는 듯 선옥이 다시 묻는다.

"그런데 윤주 씨가 그걸 어떻게 다 봤어요?"

"사실은 제가 선옥 씨 바로 옆 집에 살아요."

"뭐라고요? 그럼... 그동안...

알겠어요. 일단 신고하고 다시 통화해요!"

갑자기 선옥의 목소리가 단호하고 쌀쌀맞아진다.

전화를 끊고 선옥은 윤주에게서 들은 내용을 경찰에 신고한다.

전화가 온다. 윤주가 통화 버턴을 누르자

"지금 경찰서로 가야 하니까 간단하게 말씀드릴게요.

솔이를 찾기 위해서 솔직하게 말씀해 주신 것은 고맙지만 그동안 윤주 씨가 한 말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게 너무나 실망스럽네요. 다시는 전화하지 마세요."

"그게 아니라 모두 거짓말은 아니고.."

"변명은 듣고 싶지 않아요. 이제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도 알 수가 없네요. 윤주 씨 말은 더 이상 믿을 수 없어요! 이만 전화 끊겠습니다."

"아니... 제발..."

"듣기 싫어요. 제가 지금 바쁘고 이런 전화할 경황이 없는 거 아시지요? 자꾸 이러면 수신차단하고 스토킹으로 신고하겠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선옥은 전화를 끊고 서둘러 밖으로 나간다.

'꽝!'하고 현관문 닫히는 소리와 이어지는 정적이 윤주에게는 자신이 절망의 지옥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로 들렸다.

하지만 부끄러운 후회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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