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아기 오리>는 첫 시작은 이러하다. 미운 아기 오리가 세상을 향한 첫걸음을 떼며 시공간이 제시하는 의미를 보게 한다. 그가 태어나는 날, 생명의 색, 초록색이 공간의 배경을 가득 채운다. 시간은 여름이다. 경이로움과 경건을 주는 시골이란 공간의 장소에 생명을 상징하는 초록색이 시간의 계절, 여름의 시작점으로 등장한다.
안데르센은 <미운 아기 오리> 이야기 시작에서부터 시공간을 열며, 포괄적으로 상징하는 생명의 신비와 색의 향연으로 이어지는 황금 밀밭과 초원을 중심에 두며 열린 공간으로 넓은 호수를 이어간다.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생명의 탄생을 이미 시공간의 광활함과 아름다운 세계로 함축되어 나타내며 그 시공간에 한 존재, <미운 아기 오리>를 각인시킨다.
모든 생명은 탄생과 더불어 무수한 페르소나를 대면하며 자아, 자신이란 본연의 정체성을 초자아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시각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 있다. 우리는 모두 시시각각 자신에게 일어나는 사건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수많은 경험 중 몇 개의 사건만을 선택,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나의 관점, 나의 시선)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고 언어(매개체)를 활용하여 표현한다. 다양한 해석을 통해서 사건은 의미를 띠고 이야기가 된다.
제목에 제시된 두 개의 화두어가 주는 느낌은 이러하다.
페르소나(Persona)는 '소리를 통해(to sound through)'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per sonare'에서 비롯된 이탈리아어다. 고대 그리스의 극에서 배우가 연기하는 역할을 나타내는 가면에서 유래된 단어다.거기에 더해 ’ 정체성‘의 사전적 정의는, 정체(正體) 또는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이란 존재의 본질 또는 이를 규명하는 성질이다. 정체성은 상당 기간 동안 일관되게 유지되는 고유한 실체로서 자기에 대한 주관적 경험이라고 함의할 수 있다.
자신이 진정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고 태어난 ‘미운 아기 오리’는 ‘미운’이란 단어가 주는 의미, 즉 다른 관측자가 붙여준 부정의 말을 지니고 산다. 서로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관측자가 보여주는 시선인 타인의 시선은 묘한 압박을 준다. 이 무언의 압박감이 ‘자신의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을 찾아가게 하는 아주 굳건한 토대이자 바탕이 된다.
탄생으로 생명을 얻음과 동시에 미운 아기 오리는 생명의 색으로 대변되며 엄마가 보여주는 초록의 세상에 입문한다. 미운 아기 오리는 “세상 참 넓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다 가르쳐 줄 수 없는 엄마조차 미처 다 보지도 살아 보지도 못했던 넓은 세상을 향해 나오는데, 탄생하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을 소요하며 알에서 깨어난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미운 아기 오리가 진정한 자기와 다른 페르소나를 이상적 심상으로서 처음 맞닥뜨린 존재는 ‘칠면조’다. 자신의 기준이 아닌 타인으로 인해 전해지고 느껴지게 된, 곧 자신의 정체성을 준다고 믿는 부류와는 너무 다른 엄청나고 크고 못생긴, 다른 오리들과는 조금도 닮지 않은 커다랗고 못생긴 회색 오리가 바로자신이라고 미운 아기 오리는 믿는다.
본능으로 자신의 새끼들을 보호하는 엄마는 또 다른 사회적 정체감을 지닌 페르소나 ‘고양이’를 조심하라고 말한다. 다른 생명체의 먹이가 되어야 할 운명인 장어 대가리를 놓고 싸우며, 결국 강하고 날쌘 고양이가 장어 대가리를 낚아간다. 이러한 생태를 보고, 미운 아기 오리는 사람이나 짐승한테 특별한 관심을 끄는 부류에서 자라고 멋진 교육을 잘 받은 오리로 거듭나고자 한다. 바로 그때 같은 부류의 정체성이라고 믿었던 다른 오리가 미운 아기 오리, 회색 오리의 목을 문다.
“너무 크고 이상하잖아.” 이것 역시 결국 타인의 시선이다. 같음을 추구하고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병리적 생태에 직면한다. 상황이나 대상에 따라 취하는 특정 행동이나 태도로 그들은 미운 아기 오리의 사회 정체감을 박탈한다. 그러나 이미 미운 아기 오리는 다른 오리들보다 헤엄을 잘 치는 특별한 다른 특징을 드러내 보이기 시작한다.
또 다른 오리로 분류된 닭들에게 너무 크고, 뒤 발톱을 달고 태워 났다고 무시당하고, 그러한 이유로 쪼이고 밀리고 놀림을 당해도, 또 황제라는 수컷 칠면조에게 위협을 당하면서도 ‘어디에 서 있어야 할지, 어디로 걸어가야 할지’ <미운 아기 오리>는 모른다. 그는 자신이 못생겼다고 거리를 두는 형제자매에게도 부모에게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데 전혀 도움을 얻지 못한다.
미운 아기 오리가 바라는 것은 그저 물 한 모금 만을 마시게 해주었으면 하는 것인데, 암탉도 모이를 주는 소녀도 늪지에 사는 들오리도 모두 자신을 이방인으로 도외시한다. 타인의 시선을 가진 다른 부류로부터 오는 공간 땅의 온갖 위협은 험하고 고통스럽다. 허공을 가르는 총소리가 나고 사냥꾼과 사냥 중인 사냥개들이 등장한다. 사냥개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으나 미운 아기 오리는 자신들이 찾는 것이 아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건들지도 않는다.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은 심연을 아프게 한다.
결국 가축 오리에 도착하게 되고 그곳에서 주인 노파와 함께 살고 있는 못난 고양이 한 마리와 암탉 한 마리를 만난다. 그들은 살기 위해 온갖 주인 비위를 맞춘다. 고양이는 등을 말기도 하고 가르랑거리기도 하고, 알 잘 낳는 짧은 다리 꼬꼬는 알을 잘 낳기 때문에 무한 사랑을 받는다. 고양이와 암탉은 자기들이 세상의 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단연코 나머지 반보다 자시들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아기 오리에게 알을 낳던지 가르랑거리는 것을 배우라고 친구를 자청하며 길들이기를 강요한다. 허나 미운 아기 오리는 생존을 위해 누군가로부터 길들여지는 비루한 삶을 살고 싶지 않다고 느낀다.
“나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게 좋겠어.”
오리는 결단을 하고 길을 떠난다. 자신이 속해 있는 것과 같은 부류라고 믿는 부류든 다른 부류든 자신을 무시하고 도외시하며, 모두 단 하나의 관점을 가지고 외눈박이 시선으로 자신을 채근함을 직시하고 깨닫게 된다.
미운 아기 오리는 이 모든 어려움을 겪고 페르소나를 인식하는 동시에 자신의 내적 본성을 알아가는 또 다른 페르소나를 만난다.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아주 멋지고 커다란 새, 우아하고 긴 목을 하고 있으며, 새하얗게 빛나는 아름다운 새 그의 이름은 백조였다.
미운 아기 오리는 그 새들이 지나간 자리를 보며 목을 길게 빼고 기괴하고 야릇한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서 어디서 날아오고 무슨 새인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그들을 사랑했다. 동족 동류 속,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에 막다른 길에 만난 새들을 부러워서가 아니라 그냥 본능에 가까운 마음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어느덧 시공간이 바뀌어 겨울이 다가오고 모든 것이 움직이지도 못하게 꽁꽁 얼어붙고 말았다. 어려운 시간이 흐르고 다시 종달새가 지저귀고 봄이 왔다. 미운 아기 오리는 날개를 들어 올려보고 시간과 더불어 날개의 힘이 더 세진 것을 알게 되었다. 미운 오리 바로 앞에 있는 덤불 속에는 아름다운 하얀 백조 세 마리가 있었다. 그 고상한 동물들을 보자 야릇함 슬픔이 밀려왔다.
그때 아기 오리는 저 백조들에게 날아가서 그간 다른 부류들로부터 다르다고, 다른 부류라고, 오리들한테 물리고 암탉에게 쪼이고 닭장 소녀에게 발로 차이고 겨울에 죽도록 고생하는 것보다, 박해를 받는 것보다 저 백조들에게 죽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죽여요!”
가엾은 오리가 죽음을 기다리며 물 위로 고개를 숙인다. 그 순간 투명한 시냇물에 비친 미운 아기 오리가 본 자기의 모습은 더 이상 못생긴 잿빛 새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미운 아기 오리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미운 아기 오리는 무수한 고난과 역경을 거쳐 드디어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았다. 같은 부류 동족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아이들이 빵과 곡식을 던져주며, “여기 백조 한 마리가 새로 왔어.” 즐겁게 외친다. “새로운 백조가 제일 잘 생겼구나. 아주 젊고 예뻐.” 모두가 입을 모아 얘기하는 소리를 들으며, 미운 아기 오리는 그 모든 말들이 바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해주는 것임을 알게 된다.
‘젊고 예쁘다고’
귀결적인 이 한 문장이 함축해 보여주는 것은 많은 것을 독자에게 시사한다. 우린 모두 페르소나란 기능을 통해 무수히 많은 페르소나를 지나며 심상을 가시화하여 사회 정체감으로 자신을 대변하는 페르소나를 만들고, 익히고, 여러 종류의 페르소나를 번갈아 사용하면서 서툴고, 몹시 순수하거나 단순할 정도로 악의가 없는 사회생활을 영위하고 겪는다.
이처럼 미운 아기 오리도 무수한 페르소나를 지나 이제 자기가 바로 백조인 자신, 자기, 자아의 정체성과 마주한다. 페르소나로 자기, 자아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소홀했던 내적 세계(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는 곧 자아 정체성의 보상으로 활성화하게 된다. 따라서 페르소나를 인식하는 동시에 자신의 내적 본성을 알아야 하는 우리의 의식 속 특성을 조합하며 <미운 아기 오리>는 페르소나를 통해 굳고 분명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게 했다고 여겨진다.
우주를 바라보는 마음이 늘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우주가 진정한 자신, 페르소나를 구체화해 가기를 염원한다.
이 동화 <미운 아기 오리>가 시사하는 것처럼 가장 귀한 것을 놓치지 않고자 가슴에 담으며 항상 우주를 주시한다. 그런 사유를 위해 동화를 읽고 다시 읽고 또다시 읽곤 한다. 혹여, 조금이라도 우주를 케어하며 어떠한 오류나 오판도 남겨서는 안 된다고 곧게 굳게 다짐하면서......
매 순간 효손 우주를 지켜보며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그런 마음 깊이 곧게 굳게 담아 <우주의 공중그네>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