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가져온 혼돈
머리를 꽝
“이러다 다 굶어 죽겠어!!!”
5년을 같은 기관에 강사로 있는 선생님의 말이다. 온라인 강의로 대체되며 전혀 무방비 상태에 있었고 또 온라인의 문외한인 모든 강사들이 겪는 고충을 한 마디로 언급한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침묵했다. 웃음도 침묵도 모두 같이 느끼는 공감의 언어였다.
배운다. 배워야 하고 알아야 한다. 모르면 억지로라도 넣어야 한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이 오고, 마스크를 썼기에 간간히 숨이 죄여 오는 느낌이다. 마스크를 벗을 수가 없다. 벗지 말라고 하는 말을 들어야 해서가 아니라 이미 각자 느끼는 긴장감과 위험이 몸을 도사리게 만든다.
물 한 모금을 먹으려 마스크를 벗었다. 잠시, 곧 다시 마스크를 쓴다. 사는 게 너무 재미없고, 강의하는 게 재미없다던 l교수의 말이 떠오른다. 숨이 차다. 산다는 게 너무나. 살아가야 한다는 게 너무나.
밤 12시 데드라인을 지키려 아이들의 활동과제가 메일로 즐비하게 들어온다. 한 아이가 말을 했다. <페스트> 너무 재밌어요. 힘을 얻는다. 온라인 송출 강의였고 정말 아이들이 잘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아이들도 최선을 다하고 있음이 보인다. 모든 것이 노력이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이 사실이 우리 모두가 범하는 일반화의 오류에서 탈피를 하게 한다.
확인에 확인을 하는 멤버들이 보내는 문자가 계속된다. 또다시 확인 문자가 계속 카톡방을 메운다. 시간 변경을 확인하는 문자다. 정작 내용을 전하는 본인은 아주 정확히 올렸으나 모든 사람은 본인이 올린 것은 무시하고 서류화된 자료를 보고 다시 확인 문자를 한다.
본인은 이미 시간을 확인했고, 변경 시간을 올렸는데도 이처럼 모든 일에 오류가 발생한다. 듣는 입장과 말하는 입장이 다른 시각으로 보고 듣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문서화의 오류 또 듣고 보기의 오류다. 매일 숱한 오류들을 경험하며 산다.
강의도, 수업도, 다 마찬가지다. 수업하는 사람과 수업을 받는 사람의 마음이 생각이 다른 탓이다. 온라인 수업을 하며 수강자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오류에 대해 거듭 잡아준다. 한 번, 두 번 다시 한번, 두 번 시간은 가고 겨우 이해에 달할 때쯤 강의 시간이 종료된다. 이 모든 오류가 일반화의 오류란 것으로 영역으로 버젓이 작동한다. 그 속에서 가장 일반화가 아닌 자신 자아의 생각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 최소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시작은 조용했다. 까뮈의 <페스트>의 배경인 오랑 시에 잠잠히 길거리에 널브러진 쥐가 옮긴 균처럼, 세상의 변화에 대응하라는 요구의 모습이 조금씩 검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림자 속에 한 개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k대에서 강의가 연기된다는 소식이 왔다. 처음 온 연락은 개강을 2주 미룬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또 이주 뒤, 다시 한 달 또다시 두 달 지연이 계속되었고 급기야 강의는 폐강되었다. 같은 현상이 k대에서 온 것만이 아니다. 다른 기관도 마찬가지였고 한 기관에 속한 세 강의 중 두 수업은 아예 캔슬되었다. 그 소속 기관에서 오직 한 곳만 1 학기 마지막 두 주를 남기고 수업 시작을 요청하기도 했다.
허나 이미 수개월이 지난 상태고 한 기관에서 오로지 한 곳 수업을 해야 하는 것은 수업, 강의 준비로 수많은 시간과 마음을 들여야 하는데, 한 시간 수업을 위해 온 시간 마음을 쏱아내야 하는 것은 마음이 허락되지 않아 자진해서 취소했다.
2020년 3월부터 시작된 강의, 수업 캔슬의 기간이 사 개월, 오 개월을 지나가고 있었다. 학교는 발 빠르게 온라인으로 영상으로 동영상으로 랜선으로 수업이 전환되고 있었다. 허나 변화에 너무나 느린 나는 6월까지도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60대를 살고 있고, 얼마나 지금 이 변화에 적응해 배워야 할 것이 많은지 알게 되자 나약해지는 마음이 좌절과 절망과 별로 다르지 않은 비슷한 통감을 자아냈다.
코로나19가 지속되는 시간만큼 마음은 계속 가라앉았다. 약해졌다. 그리고 급기야 집콕이 주었던 무 운동의 생활 패턴이 건강 이상 신호를 울렸다. 119에 실려 아산병원으로 갔다. 별다른 증세 없는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한 이명, 이석, 전정관의 이상 증상이 있다고 했다.
어지러워서 계속 약을 먹었다. 그러고도 낫지를 않아 또 위례에 있는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아산에서 근 20, 이비인후과 첫 방문 때 20, 그리고 다시 방문 4 병원비가 한순간에 수십을 넘었다.
모든 게 긴장의 연속이었다. 건강도 또 병원비도 긴 수명이 주는 지난함도, 일부러라도 생활 운동을 해야 한다고 남편과 아이들이 채근을 했다. 큰 아이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 설득과 격려로 엄마의 손을 잡고 휴먼링을 돌았다. 너무나 무기력했다.
무기력에서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영어 글 책 강의였다. 가장 자신의 정체성이기도 한 영어 글 책 강의 그 모든 것을 거의 하지 못한 채 무의미한 시간 지남으로 반년, 6개월이 지났다.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후배가 영상으로 온라인으로 원격으로 수업하는 방법을 강의한다고 전해왔다. 원격 강의 방법을 듣는 하루 강사료가 어마어마했다. 하루에 십만 단위를 넘는 과한 수강료였다. 하루에 한 번에 모두 모아 온라인에 대한 모든 것을 강의한다고 했다. 그것이 강사를 위한 것인지, 수강생을 위한 것인지 애매모호했으나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후배는 아주 온라인 수업 강의 그 영역을 가장 잘하는 익숙한 삶 속에 있었고 익숙한 사람이었다.
강의 장소를 찾아가는 길이 초행길이라 무지 어려웠다. 전국에서 수강생이 왔다. 부산에서 강원도에서 부천에서 경상도에서 부산에서 울산에서 수강생 거의 모두가 교수이거나 교적을 떠난 강사였다. s대 교수와 부인 l대 교수도 왔다. 부부가 나란히 앉아 수업을 들었다. 나 자신이 수강생 중에 가장 나이가 많았다. 그 사실을 알자 마음이 둥당거렸다. 강의 수강을 권했던 후배는 아주 새 시대에 잘 적응한 단단한 모습으로 제1장 강의의 서두를 열었다.
오전 10시에서 1시, 오전 수업은 그대로 이해했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점심 후 2시에서 5시 머리가 하얘졌다. 백지상태였다. 하루에 그 많은 온라인 기능을 몰아서 듣고 이해한다는 것은 나의 머리는 역부족이었다. 이해조차 안 되는 새로운 용어들이 난무했다. 급기야 배가 부글거렸고 머리에서 식은땀이 났다. 등줄기에 땀이 차올라 왔다.
자신 본래에 특유의 성실함과 또 어마어마한 수강료가 무서워 부글부글 끓는 배를 움켜쥐고 그 자리에 끝까지 머물게 했으나 이미 머리는 텅 빈 상태였다. 배 속에서 굉장한 구라파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급기야 5시부터 시작하는 실습시간을 뒤로 물리고 가장 먼저 강의실을 집을 향해 나섰다.
남편에게 ‘데리러 오라’고 전화를 했다. 그리곤 그 후로 집에 어찌 왔는지 아무것도 기억 못 하는 암전 상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