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또 다른 시작을 응원합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by Michelle Lyu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시작이라고
또 다른 시작이라고

꽃다발 두 개가 식탁 위에 놓여있다
퇴직 송별회에서 받은 꽃다발이다
36년을 한결같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 때도 따스한 햇살을 받을 때도 멈춰본 적이 없다
감사패와 두 개의 꽃다발이 가지런히 놓인 식탁을 한참 바라
보았다
꽃다발에 리본이 달려있다

또 다른 시작을 응원합니다

이 문장이 꽤 오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두 세대를 지나 정년을 마감하고 나오는데 응원의 문구가
또 다른 시작을 응원합니다 이다
오래 일했다
한 세대를 지나 또 여러 해를
그럼에도 우리가 지나는 100세 시대는 뭔가를 해야 만한다고
묵시적으로 재촉한다

고생했어요 딸의 문자와
너무 오래 수고했다 당신 하는 문자와
침묵하는 아들의 무언에도 모두 깊은 의미가 담겼다

꽃다발의 잔가지를 잘라 화병에 옮겨 담았다
울컥
핑그르르
가슴에 무언가가 소리를 냈다
가늠할 수 없는 아픔으로

눈물을 훔치며
잡채를 덥히고
식탁 정리를 하고
우주를 위해 아끼던 딸이 소중히 내놓은 고구마를 하나하나 씻었다
개수대에 쌓여 있는 설거지를 하고
재활용품을 나가는 길에 버리려 정리해 한편에 놓았다
수업자료를 찾아 가방에 담고
미처 못 읽은 신문들도 챙겨 넣었다
수업 시간까지 뭐든 다 정리하고 나가자 했다

창문 너머 붉은 여명이 하늘을 뚫고 밝아오고 있었다

하늘에서 울리는 합창소리가 들렸다
새로이 시작이라고

또 다른 시작을 응원합니다

20191206_071403.jpg
20191206_071445.jpg
20191206_071539.jpg
20191206_071623.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영감을 준 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