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톨스토이
Anna Karenina
Leo Tolstoy
두 사람이 서로를 응시한다. 두 사람 남녀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너무나 지극해 아련하다 못해 안타깝다. 마주 잡은 두 손에는 서로를 놓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깊게 배어난다. 그저 바라보는 서로의 눈길에는 이미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모두 다 감지할 수 있다는 지극한 신뢰가 담겨 있다.
세계 문학의 가장 위대한 소설 중 하나인 <안나 카레니나>는 자신보다 훨씬 나이 많은 남자와 불행하게 결혼한 아름다운 젊은 여성의 이야기이다. 안나 카레니나, 그녀가 잘생긴 젊은 군인과의 지독한 사랑에 빠져들며 그녀 인생은 갑자기 더할 수 없이 멋진 듯 보인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을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있을까.......
'Possibly I have made a mistake,' Karenin added.
'No,' said Anna slowly, looking with despair into his cold face. 'You have not made a mistake. I am listening to you, but I am thinking of him. I love him and I am his mistress. I hate you, I am afraid of you...... You can do what you like with me.‘
'아마도 내가 실수했을 거야.' 카레닌이 덧붙였다.
'아니,' 안나가 천천히 말하며 절망에 찬 그의 차가운 얼굴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실수를 하지 않았어. 나는 당신의 말을 듣고 있지만, 나는 그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 나는 그를 사랑하고, 나는 그의 여주인이야. 나는 당신을 미워하고, 당신이 두려워...... 당신은 나에게 원하는 대로 당신은 할 수 있어.'
(번역 Michelle Lyu)
‘안나 카레니나’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로 아주 충만한 삶을 살고 있다. 그녀는 피터스버그(Petersburg) 사회의 보석이며 모두에게 존중받는 존재다. 그녀의 남편은 자신의 분야에서 대단히 존경받는 사람이나 그녀보다 아주 많이, 훨씬 더 나이가 많고 너무나 무미건조한 삶을 사는 공무원(government official)이다. 그의 아내, 안나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그녀 자신조차 결코 정확히 이유를 알 수 없는 허망함이 가져다주는 쓸쓸함으로 혼자만의 비밀을 갖고 산다. 그녀의 유일한 사랑은 오직 아들에 대한 사랑뿐이다. 그러나 이런 아들을 향한 사랑의 감정이 정말 그녀의 충만한 행복을 지키기에 아주 충분한 것이었을까?
어느 날 안나의 오빠가 그녀를 모스크바로 부른다. 안나의 오빠는 지금 자신의 결혼 생활이 아주 심각한 위기 상태에 처해 있다. 그래 그는 자신의 곁을 떠나고자 하는 아내를 설득하기 위해 긴급히 안나의 도움이 필요했다. 아주 꾸밈없는 천성과 편안한 매력을 풍기는 안나는 곧 오빠의 아내, 올케언니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모스크바에 있는 동안 안나는 브론스키라고 불리는 아주 잘생긴 젊은 남자를 만나게 된다. 브론스키와의 만남이 안나의 가슴속 깊은 곳에 드리워져 있던 짙은 그늘에 불을 지핀다. 그 불은 곧 흥분된 열정의 불꽃으로 타오르고 곧 그 불꽃이 깊이 그녀의 마음을 잠식해 간다. 안나는 그녀가 아들을 향한 깊은 사랑과 보른스키를 향해 질주하는 뜨거운 사랑 사이에서 절망스러운 고통으로 마음이 찢어질 듯하다. 곧 안나는 그녀의 주위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을 향한 열정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게 되고 그녀는 결국 남편에게 자신의 감정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이렇게 세계 문학사에 가장 위대한 사랑 이야기 중 최고의 자리에 있는 <안나 카레니나>는 가장 비극적인 결말의 접장을 접는다.
레오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Leo Nikolayevich Tolstoy, 1828-1910) 백작의 <안나 카레니나>는 모든 시대를 막론하고 세계 독자들에게 가장 위대한 소설로 자리 잡았다. <안나 카레니나>는 사랑, 미움, 절망, 분노, 연민, 슬픔 그리고 기쁨 등 무수한 감정을 아우르는 엄청난 범위와 심리적 깊이가 총망라되어 있다. 작품의 배경은 19세기 말 최고 사회를 극도로 배척하는 방향성을 향해 세팅되었다. 이 이야기를 쓰는데 톨스토이는 1873년부터 1877년까지 무려 4년이란 시간을 할애했다. 그리고 이 작품이 러시아 메신저(Russian Messenger)란 이름의 월간 잡지에 매달 한 부분씩 실린다. 그러나 마지막 부분은 잡지에 발행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편집자가 작가가 최종 장면에 표현된 작가의 관점에 관해 도저히 동의할 수 없어서였다. 따라서 소설 첫 완성본은 1878년에 등장한 형태 그대로가 원본이었다.
톨스토이는 처음 <안나 카레니나>에 관한 제목을 구상하며 '두 쌍의 커플'<Two Couples> 또는 '두 번의 결혼'<Two Marriages>으로 하려고 생각했다. 독자들은 안나와 브론스키 두 사람의 관계가 멀어지는 것과 더불어, 또 한편으로 안나와 브론스키와는 다르게 키티와 레빈의 관계가 호전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키티와 레빈, 그들은 기본적으로 거대 도시의 높은 사회적인 틀 속에서 다채롭게 살아가야만 하는 의미 없는 삶보다 평화롭고 조용한 시골 생활을 더 선호하는 고요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사려 깊은 사람들이다.
<안나 카레니나>는 어떤 수준에서는 비극적 로맨스의 너무 찬란한 이야기를 훌륭하게 말해진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 점을 비난했다. 작품이 정확히 이런 이유를 의도해 처음 발행되었을 때, 어느 한 작가는 작품에 이러한 면을 상류층의 별로 중요하지 않은 로맨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 레빈을 톨스토이 자신이라고 생각해 볼 때, 독자들은 톨스토이가 작품을 통해 그 당시 러시아의 팽배했던 극도의 부유함과 러시아의 상위 계층이 보여주는 생각 없는 무심한 행동을 지독히 깊게 싫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품은 그런 사회에서 같은 모습으로, 그 사회에 살고 있었던 다른 사람들이 오로지 불성실한 삶으로 받아들일 때, 진실로 사람들이 정직하게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해 보다 더 깊은 수준을 나타낸다.
톨스토이가 처음 <안나 카레니나>를 시작했을 때, 그는 작품의 여주인공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도 마음에 내켜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작품이 진행되어 감에 따라 그녀를 향한 그의 태도는 극적으로 변했고 동정 섞인 찬미로 그녀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안나 카레니나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며 계속되는 감정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완벽한 성품의 소유자로 탄생 될 수 있었다. 안나는 완벽하게 정직하거나 완벽하게 거짓의 소유자일 수 없다. 문학사의 가장 흥미로운 창조 인물인 셰익스피어의 ‘햄릿’처럼 그녀를 탄생하게 한 것은 바로 이러한 혼동이었다.
<죄와 벌>을 쓴 위대한 러시아 작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Fyodor Dostoyevsky)가 당대 대부분의 어떤 다른 어떠한 해설자보다 <안나 카레니나> 작품에 대한 그의 판단은 아주 정확하다. 그는 예술로서 완벽한 작품으로 <안나 카레니나>를 묘사했다. <안나 카레니나>에 대해 또 다른 중요한 찬사를 보낸 작가가 있다. 그는 20세기 러시아 작가 발피미르 나보코프 (Valfimir Nabokov)다. 그는 '톨스토이 작법 스타일의 완벽한 마법'에 대해 극찬했다. 발피미르 나보코프는 톨스토이가 책 전체를 관통하며 점점 다가오는 비극적 상징으로써 사용한 훈련된 기술적 방법에 대해 최고의 찬미를 보냈다.
또한 우리가 이미 본 것처럼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 이야기는 키티와 레빈 두 사람이 보여주는 사랑과는 너무나도 다른 사랑 이야기를 묘사한다. 레빈과 키티가 보여주는 기본적으로 즐겁고 정직하고 편안한 안정적인 관계는, 열정적이고 격정적이지만 격하게 어둡고 불안정한 모습이 드러나는 안나 씨와 브론스키의 관계와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레빈은 톨스토이 그 자신 자체로 나타난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인생 전반에 걸쳐 등장한 사건을 빌어서 스스로 개인의 생각과 이상을 레빈에게 재현한다. 레빈과 키티의 관계는 톨스토이와 그의 아내 소냐(Sonya)의 관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투영도다. 소냐는 한번은 작품 속 레빈에 관해 언급하며 톨스토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재능이 더해진 레빈과 같다. 레빈은 참을 수 없는 친구!'라며 남편 톨스토이에게 농담 어린 한 마디를 건넨다. 톨스토이는 그가 공적으로 형성한 자신의 사적 재산에 의지하여 15년 동안 13명의 아이를 양육하며 대단히 행복하게 살았던 사람으로 <안나 카레니나>의 레빈처럼 아내에게서 큰 위안을 얻는다.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를 자신의 첫 번째 실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그의 초창기 작품 <전쟁과 평화>(1865-69)는 자신의 실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유는 <전쟁과 평화>는 역사적인 사실에 픽션(Fiction)을 가미한 이야기로 작품에 나폴레옹과 같은 실제 인물이 등장한다. 1873년 5월 11일, 톨스토이는 새로운 소설을 쓰고 있다고 집필 중인 작품에 대해 친구 스트라호프(Strakhov)에게 말한다. 그 작품의 내용을 부연하며 '이 작품은 표트르 대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 소설은 내 인생의 첫 번째 소설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 소설은 나의 마음과 가장 가깝고, 나는 이 소설에 나의 감정을 완벽하게 포장해서 담았다'라고 자신의 마음 깊숙이 품은 생각을 친구에게 전달한다.
톨스토이는 '혼외 관계를 맺고 있는 아름다운 사회 여성'에 관한 아이디어로 소설을 쓰고자 하는 생각을 오랫동안 품고 있었다. 1872년 발생한 아주 특별한 사건이 그가 <안나 카레니나>를 쓰는데 주원인이 된다. 그 사건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버려지고, 스스로 그 지방 역 기차 밑으로 자신을 던져버린 한 젊은 여자에 관한 사건이었다. 톨스토이는 고통과 질투로 미쳐 버릴 것 같은, 사랑에 모든 것을 걸었던, 심지어 끝내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던졌던 이 여자의 시체를 보며 깊은 영향을 받았다.
1873년 3월 어느 날 오후, 아주 잠시 톨스토이는 푸쉬킨(Pushkin)이 쓴 어린이들을 위해 쓴 책 중에서 한 권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곧 소냐에게 큰소리로 책의 첫 줄을 읽어 주었다. '손님이 시골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아내를 향해 돌아보며 말했다. '이게 소설을 시작하는 방법이야.' 이 말은 즉, 행동으로 보여주며 중간적 내용을 설명하는 긴 묘사 없이 소설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날 저녁에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의 첫 줄을 썼다.
오늘날에도 <안나 카레니나>는 여전히 우리의 상상력을 붙잡는다. 이 작품이 여러 편의 영화로 만들어진 것은 물론이고, 티브이에서도 여러 번 방영하기도 했다. 여러 편의 영화 중 가장 유명한 영화는 아마도 안나 역을 '크레타 가르보'(Creta Garbo)에게 맡기며 클라렌스 브라운(Clarence Brown)이 감독했던 1935년 할리우드판이었을 것이다. 재미있게도 이 영화에서 안나와 보론스키 관계는 완전히 부도덕하고 잘못된 행동으로 보여주었으며, 그들의 모든 자녀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었다. 안나의 남편 카레닌의 성격은 매우 동정적으로 유약한 정신의 소유자로 묘사된다. 톨스토이는 도저히 이런 묘사를 인정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레오 톨스토이는 1828년 8월 28일에 태어났다. 다섯 명 중의 네 번째 아이였다. 아버지는 니콜라스 일리치 톨스토이 백작(Count Nicholas Ilich Tolstoy)이고 엄마는 니콜라예프나 볼콘스키 공주(Princess Nikolayevna Volkonsky)였다. 엄마는 5명의 자녀를 낳은 후, 1830년 세상을 떴다. 그녀는 너무나도 대단하게 창의적인 사람이었다. 아이들의 성장을 개발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에 대해 아주 열정적인 흥미를 갖고 있었고, 능력을 갖춘 한 사람으로 자녀들을 성장시키기를 원했다. 톨스토이는 카잔 대학교(Kazan University)에서 법률 공부와 동부 언어 (eastern languages)를 공부했다. 그러나 학위를 취득하지 못했고 대학의 교육적 질에 대해 늘 불만족했다. 1851년 엄청난 베팅의 결과로 거대한 빚을 지었고, 형 니콜라이(Nikolai)와 함께 군대에 들어갔다. 그는 그곳 군대에서 문학적 경력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인생에 관하여 쓴 <어린 시절>(Childhood 1852), <소년 시절>(Boyhood 1854) 그리고 <청년 시절> (Youth 1857) 세 권의 책이 발행되었다.
톨스토이의 초창기 발행된 책들 중의 하나로 1852년에 발행된 <The Raid>는 그의 형이 참여했던 실제 군인 모험에 기초를 두고 있다. 톨스토이는 평생 전쟁에 대한 증오를 나타내었고 그 증오심은 이미 형이 참전했던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아름다운 지구에 모든 사람을 위한 공간이 없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라고 톨스토이는 고뇌의 글을 썼다. 50년 후 톨스토이는 1904년에 쓴 단편 소설 <Hadji Murad>와 함께 그의 생애는 바로 이 고뇌의 지점으로 돌아왔다. <Hadji Murad>는 여전히 체첸(Chechnya)와 함께 러시아의 현재 문제점들의 배경에 관한 극단적인 유용한 소개를 담고 있다.
크림 전쟁 당시 톨스토이는 야포 사령관(field gun commander)이었다. 1854년에서 55년 발생한 그 유명한 세바스토폴(Sebastopol) 마을 전투의 목격자였다. 1857년 유럽을 여행한 후, 그는 야스나야 폴랴나야(Yasnaya Polyana)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농부의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시작한다. 톨스토이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은 교육에 있다는 것을 굳게 믿었다. 그는 교육 이론에 관한 과목을 제시하는 교과서들과 잡지를 발행했다. 1862년, 소냐 안드레예브나 베르스(Sonya Andreyevna Behrs, 1844 –1919)와 결혼했다.
톨스토이의 소설은 그가 평상시 썼던 일기 원본을 발전시킨 것이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일기에 드러난 그의 감정과 행동을 지배하는 것들에 대해 이해하려 노력했다. <전쟁과 평화>는 톨스토이의 삶에 일어났던 모든 것이 거대한 우주적인 계획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는 톨스토이의 견해를 자연스레 반영했다. 허나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이 자유 의지를 가졌다는 근본적 믿음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고 톨스토이는 생각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또 다른 위대한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열정적인 사랑의 화신처럼 안나는 자유를 발견하기 위해서 투쟁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행한 행동의 결과로 오는 사건을 통제할 힘이 없고 그 열정적인 사랑은 결과적으로 그녀를 극악으로 파멸시킨다.
<안나 카레니나> 이후 톨스토이는 더욱 자신을 철학자나 예술가이기보다 도덕적 리더로서 보기 시작한다. 1880년대에 그는 <고백 그리고 내가 믿는 것>(A Confession and What I Believe) 같은 철학적인 작품을 썼다. 1884년 톨스토이는 그의 전 재산을 가족들에게 물려주었고 배회하는 농부로서 살고자 노력했다. 그는 1899년 아주 중요한 소설 <부활>(Resurrection)을 썼다. 그 후 그는 1910년 아주 심각한 질병으로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작은 철도역에서 죽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8년 후, 그의 아내는 톨스토이에 관해 “나는 48년 동안 레프 니콜라예비치와 함께 살았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라는 말을 남겼다.
톨스토이의 생각들과 가르침은 인도의 정신적인 리더 간디를 포함하여 20세기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톨스토이, 그의 이름은 항상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저자로서만 기억될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마지막은 결국 톨스토이의 마음이 빙의된 레빈의 마음 다짐으로 끝을 맺는다.
'The new feeling that I have now has not changed me; I shall still go on as before. But every minute of my life now, my whole life, is no longer meaningless as it was previously, but has a positive goodness of meaning which I have the power to give it.'
'내가 지금 알게 된 이 새로운 느낌은 결코 나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나는 그럼에도 여전히 전처럼 계속 정진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 삶의 매 순간, 내 전 생애는 더 이상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고, 내가 부여할 수 있는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번역 Michelle Lyu)
<안나 카레니나>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 가슴에 남는 묘한 아픔이 숨을 참게 한다. 톨스토이를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마음이 너무나도 미미한 것이 되어 마음을 마구 흔들어댄다.
모든 것이 그러하다. 마치 세상 사는 모든 것이 다 이처럼, 작은 인식만을 가지고 삶에 대처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에 직면한다. 어쩜 그런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 사실 스스로에게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나은 내일을 소망하게 하는 순간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손이 심하게 파르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