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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elle Lyu May 14. 2020

삶의 방향성을 알려주신 멘토 스승

교수님이 오신다

김포에서 위례까지는 2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5분 후 도착이라는 문자를 확인한다
교수님이 오신다
제자가 당연 찾아뵈어야 하는 것이 도리이고 예의이나 교수님께서 제자 얼굴도 볼 겸
위로도 할 겸
또 스승의 날을 뵙고 싶으나 마음이 그렇다는 제자를 보러 오신다
아주 먼길을

위례 주민세터 버스 정거장에서 서성인다
교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먼길 오신 교수님을 정거장에서 맞고자 하는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을 떼며 교수님을 찾는다
그러다 마스크를 쓰시고 벤치에 앉아 손을 흔들고 계신 교수님을 발견한다
먼길 오시게 해 죄송하다고 안부를 건네자
교수님은 오히려 위례 구경을 하게 해 줘서 감사하다고 말씀하신다
식당에 도착해 그제서야 마스크 벗은 교수님 얼굴을 뵐 수 있었다

교수님의 얼굴이 좀 붉게 타셨다
내천을 따라 늘 걸으셨단다
건강해 보이셨다
다행이었다
교수님이 아직도 건재하심이 다행이다 참으로
수십 년 나의 멘토시고 언제나 삶의 방향 감각을 일깨워 주신다
Korea Herald 목요 칼럼을 여전히 쓰고 계시고
요사이 번역한 작품에 대해 설명을 곁들여 내용 써머리를 해주셨다
책이 출간되는 대로 보내준다고 하셨다

교수님은 말을 많이 하시지 않으셨다
그저 제자가 하는 말을 한이 서려 묻는 말에 대답을 명확히 하셨다

슬퍼 말라고
다 지나가는 것이고
그게 또 삶이라고

제자가 준비한 스승의 날 선물을 받으시고는
수십 년을 고맙고 미안하다고 하셨다
제자는 그저 작은 마음의 표현이라고 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늘 Lyu군은 하고 해왔다고
눈을 크게 뜨시고 말씀하셨다
제자와 스승으로 만난 수십 년 전으로 돌아가
강의실에서 첫 만남을 했던 제자의 모습을
당시 입었던 옷차림 청바지와 재킷도 분명히 기억해내셨다

돌아간다
강의실에서 교수님을 처음 보았던 그 시간으로
명료한 발음으로 영시를 읽던 모습을 제자는 기억에서 불러낸다

소신 있게 칼럼을 쓰시는 정치 얘기
학계의 숨겨진 교수들 세계
책을 읽어야만 하는 중요한 철학을 지닌 마음과의 조우
가치 신념을 갖고 사는 한 개인으로서의 책무와 의무

그리곤
근간 제자가 책 소개 방송에서 언급할 책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를 들으시고는
엄마와 딸의 애증관계를 심리적인 관계로 얘기하셨다

마주 앉아 마시는 한 잔의 커피와 달달한 쿠키가 바닥이 날 때쯤
이제 가봐야겠다고 교수님은 일어서셨다
불과 세시간여가 순식간에 지났다
위례까지 10시 50분까지 시간을 맞추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서 오셨을 교수님을 생각한다

네 교수님 조심해서 가세요

회색 베레모를 쓰시고
주머니에는 원서 한 권이 들려 있고
손에는 제자가 선물한 H백화점 쇼핑백을 잡고 계신다
333번 버스가 오고
버스에 오르신다
버스에 오르시는 교수님 등을 보고 제자가 큰 소리로 말한다

다시 뵐 때까지 건강하세요
꼭요

대답 대신 빈자리를 찾아 앉아서 마스크를 쓴 얼굴로 교수님은 열심히 제자를 향해 손을 흔드신다

걱정 말라고

버스가 멀어져 간다

인연이라고 한다
순간의 만남도 숱한 시간 겁이라는 시간을 지나 만나는 인연이라고 한다
스승과 제자로 수십 년을 온 것은 얼마나 크고 진한 인연인가를 생각해 본다
가늠조차 어렵다
멀어지는 버스를 보며 구순이 다가오는 교수님을 보내는 마음이 편치 않다
눈가에 고이는 눈물은 안쓰러움이 아니라
세월의 안타까움이라고 가슴이 답을 한다

카드에 쓴 문장을 다시

교수도 건강하세요 오래오래
감사합니다

다시 입에 달막거린다

교수님이 93세까지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웃으며 답을 하셨던 그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먼 길 오던 길 돌아
두 시간여를 걸려 김포로 가실 교수님의 문자가 온다


고맙다


누구도 요사이는 교수님을 뵙지 찾지 않는다
처음에 동문들은 언제든 교수님 뵐 때 같이 만나자고 했다
허나 어느새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일로 바빠
약속 날이 되면 여러 이유 상황의 문자를 보냈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급한 일을 잊어서
급하게 지금 해야만 하는 일을 해서
시간 안에 닿을 수가 없어서 등
처음에는 이해를 동반하며 애써 괜찮다고 답을 했다
요사이는 누구에게도 연락을 안 한다

그저 혼자
교수님 계시는 동안 형편에 맞춰
밥도 차도 교수님과 나누며 시간 갈 것이다

가장 정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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